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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매씨家 두 딸 ‘살아있는’ 한국 사랑 - 한국전쟁 터지자 부산행 배 올라 ‘귀향’… 병든 자들 곁으로
  • 기사등록 2016-12-03 06: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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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켄지家의 딸들’ 책 표지. 의사 매혜란(왼쪽)과 간호사 혜영 자매.맥켄지 선교사 부부는 슬하에 혜란(헬렌) 혜영(캐서린) 루시 쉴라 네 딸과 아들 짐을 두었다. 모두 부산 태생이다. 짐은 두 살 때 디프테리아로 사망했고, 현재 부산진교회 묘지에 묻혀 있다.

혜란은 1931년 평양외국인학교 졸업 후 호주 멜버른대학에 진학해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 혜영은 평양외국인학교를 다니다 로열멜버른간호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자매는 1945∼50년 중국 운난성 쿤밍에 들어가 의료선교사로 봉직했다.

자매는 늘 ‘고향’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터졌다. 자매는 1952년 2월 13일 천신만고 끝에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들의 한국행에 대해 어머니 메리는 이렇게 썼다. “너희가 주님을 위해 새로운 임무에 용감하고 씩씩하게 가는 것을 보고 기쁨과 평안이 된단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는 성경 말씀을 새겨라.”

자매는 부산진교회 유치원 한쪽에 천막병원 ‘일신부인병원’을 개원했다. ‘그리스도의 명령과 본을 따라 불우한 여성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육체적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박애정신을 구현한다’는 게 설립취지였다. 이 정신은 일신기독병원, 화명일신기독병원 등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부산 좌천역 옆 일신기독병원 내 맥켄지역사관에서 두 자매와 의료활동을 같이했던 전정희(74·의사·부산 크리스탈여성의원 원장) 전 화명일신기독병원장을 만났다. 서성숙 일신기독병원장과 김범한 한·호기독교선교회 법인사무국장도 함께였다. 전 원장은 이화여대 의대 출신으로 1971∼75년 이 병원 수련의였다. 그리고 1981∼2007년 근무했다.

“76년 닥터 헬렌(혜란), 78년 캐서린(혜영) 선생님이 각기 은퇴하고 호주로 돌아가셨어요. 두 분 다 딱 가방 한 개뿐이었죠. 일신부인병원이 당시 한국 최고의 부인과 전문병원이었음에도 그들의 은퇴는 그렇게 조촐했어요. 맥켄지 선교사님은 딸들이 그렇게 돌아올 걸 예상하고 생전 두 자매를 위한 집 한 채를 남겨 놓으셨대요.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분들이었죠. 훗날 한국 제자들이 호주에서 어렵게 생활하시는 게 안타까워 이것저것 보내드렸죠. 그런데 꼭 필요한 것만 쓰시고 나머지는 다 교회에 헌금하셨어요.”

1950∼70년대 한국은 가난했다. 가난 때문에 산모들은 병원비를 아끼려고 죽기 직전까지 버티다 병원을 찾았다.

“제가 수련의였을 때도 10분마다 수술이 진행됐죠. 연탄 트럭에 실려 멀리서 온 새카만 산모도 있었어요. 사경을 헤매는 환자와의 전쟁터였죠. 저는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닥터 헬렌은 분만을 유도하고 기도해요. 성자라고 할밖에요. 환자 10명 중 서너 명이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간호사 캐서린은 가난한 자들의 시름 속에서도 늘 밝게 병원 업무를 이끌었다. ‘니캉 내캉’ ‘와그라노’ ‘삐까번쩍’ 등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노처녀였다.

환자와의 전쟁이 끝나면 예배를 봤고, 예배가 끝나면 또 환자와의 전쟁을 치렀다. 이면지 아껴 쓰라고 직원을 혼냈지만, 수술비 안 내려고 환자를 응급실에 내려놓은 뒤 자신은 동네사람이라고 우기는 환자의 남편을 눈감아줄 줄 아는 자매였다. “어쩌겠니.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이지”라고 했다.

“일생을 편히 살 수 있었던 분들이었잖아요. 말년을 남루한 요양원에서 보내시게 한 게 마음 아파요. 신앙 없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분들의 유산인 일신기독병원이 미얀마 등 동남아의 가난한 이들에게 손 내밀고 있어요. 기도해주세요.” 전 전 원장의 말에서도 호주 매씨의 하나님 사랑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부산 일신기독병원 내 맥켄지역사관에 세워진 병원 설립자 매혜란·혜영 자매 흉상과 그들이 쓰던 오르간. 자매와 함께 근무했던 전정희(왼쪽) 전 화명일신기독병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성숙 일신기독병원장과 함께 병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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