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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으로 빚은 우리 술, 세계를 향해 나아가다 - 농업회사법인(유) 화양 ‘풍정사계’
  • 기사등록 2021-08-24 07: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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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에는 고유의 질감과 맛이 있다. 한민족의 전통문화 곳곳에서는 자연의 숨결이 느껴진다. 정감어린 손길로 빚고, 엮고, 지어 낸 모든 것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다.  우리 방식으로 제대로 빚은 술 한 잔에도 이러한 멋이 가득하다. ‘풍정사계(楓井四季)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전통주의 명맥을 새로 써 내려가고 있는 충북 청주의 한 양조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익어가고 있는 술항아리의 풍미는 과연 특별했다. 


 

농업회사법인(유) 화양 ‘풍정사계’

“내 술은 내 누룩으로” 전통주를 지키는 집념

농업회사법인(유) 화양의 제1양조장은 충북 청주시 내수읍 풍정리에 위치한다. ‘풍정(楓井)’은 우리말로 ‘싣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 입구에 단풍 우물(싣우물)이 있어 풍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의 물은 약수 못지않은 맛을 자랑한다. 이를 통해 화양의 대표 제품인 ‘풍정사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는 원래 술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니 참 묘한 일이지요. 1990년대 중반부터 20여 년 간 청주 시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빠르게 디지털화 되어가는 것이 보였고, 변화는 필연적이었습니다. 이후로는 보다 나를 찾을 수 있는 길, 또 스러져 사라지지 않고 대물림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고 싶었어요. 교동법주를 맛보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세미나 차 방문했던 경주 보문단지에서였지요. 그 때의 향기로운 첫 잔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상온에 두고 천천히 마셔도 변함없는 맛을 보고는 문득 의욕이 생겼습니다. 양조장 사업이 만약 잘 되지 않아도 집에 제사를 지낼 제주(祭酒)는 남지 않겠나 싶었지요.”

화양에는 ‘조화롭게 섞어 빚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한상 대표는 정성과 마음을 다해 우리 전통주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빚어낸 전통주는 오로지 찹쌀과 누룩, 물만을 사용해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든다. 사람의 손길과 자연이 빚어내는 조화. 누룩을 직접 띄우는 것에서부터 숙성에 항아리 사용을 고수하는 것까지 전통 방식을 그대로 살렸다. 그 방식에는 종가의 전통과 자부심, 그리고 우리 민족의 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저희 술방 이름 ‘화양’은 1554년 어숙권이 만든 백과사전 <고사촬요>의 ‘내국향온법’에 나오는 ‘조화양지(調和釀之)’의 줄임말입니다. ‘찹쌀과 직접 디딘 누룩(향온곡)을 끓여 식힌 물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조화롭게 섞어 빚는다’는 뜻이지요. 술맛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향기롭고 조화로운 술이 빚어진다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에게 전통주 비법을 전수받았다. 한국전통주연구에서 전문가과정을 마친 이들은 양조장을 운영하거나 교육자로서 현업에 종사하는 한편 동호회 ‘술방사람들’ 모임을 통해 문헌에 기초한 술 빚기나 누룩 빚기 행사 등을 개최하고, 각자 개발한 술을 발표하는 모임을 가지는 등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06년에 전주 술 박물관에서 처음 술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육과정은 10주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지 않은 시간이 제게는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누룩도,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님도 이곳에서 처음 만났으니까요. 당시 강의 중에 들은 ‘술은 누룩놀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은 술 만드는 데는 누룩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고, 또 술 맛은 누룩이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전통주 기술을 배워가며 처음 굳힌 생각은 내 술을 만들려면 우선 내 누룩을 가져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누룩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는 꽤 오랫동안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 와중에 박 소장이 쓰신 책 <버선발로 디딘 누룩>을 읽게 되었고,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책에서 처음 ‘향온곡’에 대해 알게 되었고, 녹두에는 숙취해소와 알콜 해독 효능이 있어 이의 약리작용이 건강한 약주를 만드는 데 핵심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제 첫 누룩은 2006년 10월에 처음 만들었지만 이를 완성하는 데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농업회사법인(유) 화양 이한상 대표(사진=유미라기자)

내의원에서 만들었던 누룩, 향온곡으로 빚은 전통주

전통주의 주재료는 쌀과 누룩, 물이다. 이 중 발효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이 누룩이다. 누룩은 전분질 원료를 분해해서 당을 만들고, 효모가 그 당으로 알코올을 생성하는 것이 주된 원리다. 하지만 현재 전통주 제조업체 중 100% 누룩을 이용하는 곳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큰 양조장일수록 사용량이 떨어진다. 이른바 ‘누룩취’를 없애기 위해서 누룩의 양을 줄이고 대신 입국(일본식 개량 누룩)의 양을 늘린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발효가 잘 되지 않아 결국 다른 성분이나 효모를 첨가해야 하게 된다. 

“전통 누룩 향온곡은 녹두와 밀을 1:9의 비율로 섞어 만듭니다. 녹두를 넣어 누룩을 만들면 녹두의 기능인 해독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술 향기도 좋게 할 수 있어요. 누룩을 제대로 띄우면 향기로운 누룩향이 납니다. 또 누룩은 잘 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제도 중요합니다. 이는 쉽게 설명해서 누룩을 자외선으로 소독, 살균하는 과정입니다. 누룩의 나쁜 향을 없애기 위해 꼭 필요하죠. 우리 조상들은 낮에는 햇볕에 말리고, 밤에는 이슬을 맞혀 수분을 더하는 식으로 법제해 술이 잘 발효하도록 했습니다.”

풍정사계에 사용되는 누룩은 이한상 대표가 직접 빚는다. 초복과 중복 사이에 누룩을 디뎌 옥상 처마 밑에 걸어두고 띄운 후 잘게 빻아 꼼꼼하게 법제한다. 이를 사용해 만든 ‘풍정사계-춘’은 달지 않은 깊은 맛과 잔잔한 꽃향기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풍미로 오감을 깨운다. 황금빛이 도는 이 전통주는 시장에 나온 지 불과 1년 만에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2016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최한 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2등)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2017년에는 대한민국 주류 대상을, 2021 우리술품평회에서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17년 한미 정상회담과 2019년 한국-벨기에 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9년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재미동포와 인연이 되어 미국에 1,300병을 직접 수출했다. 이는 한화로 약 1만 5천 달러에 달하는 규모였다.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자 이 대표는 2019년 충북무역상담회에도 참석하는 등 해외시장으로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지속적인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풍정사계’는 ‘춘’과 약주를 증류한 소주 ‘동’, 약주를 걸러낸 탁주 ‘추’, 약주에 소주를 부어 숙성시킨 과하주 ‘하’를 포함해 총 네 가지 종류의 전통주로 공급한다. 손으로 빚어 숙성시키는 소량생산 방식이라 한정되어 있고, 한 달에 이틀만 정기적으로 판매한다. 매월 1, 3주 토요일 10시가 고객들과 약속한 시간이다. 주문은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우리 술이 보통 약주와 탁주, 소주 이렇게 세 가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조 방문을 보면 과하주라는 술이 한 가지 더 나옵니다. 이는 말 그대로 여름을 넘기는 술로 강화 약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약주를 제대로 만들면 탁주나 소주도 자연스레 잘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해서 첫 술로 약주를 빚었지요. 약주를 만들겠다고 술을 만든 지 10년 만에야 마음에 드는 ‘춘’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꽃피는 봄을 담은 약주 ‘춘’은 숙성기간이 100일 가량 걸립니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술이자 오늘의 풍정사계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술이지요.” 

 

(왼쪽부터)농업회사법인(유) 화양 이한상·이혜영 대표(사진=유미라기자)

새로운 도전, 더 큰 시장을 목표로 숙성 소주 출시

이 대표는 작년 초정약수터 인근에 제2양조장을 신축했다. 상압식 동 증류기로 올 5월 처음 생산된 술은 항아리에서 충분한 숙성기간을 거쳐 출시할 예정이다. 상압 증류방식을 채택한 것도 제대로 숙성된 맛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상압식 증류주는 1년 이상 숙성해야 합니다. 증류주는 처음에 독한 맛이 나다가 숙성시키면 이 맛이 사라집니다. 우리 술 시장에도 숙성 기간을 표시한 숙성 소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류주는 생산량의 10% 가량만 즉시 판매하고, 나머지는 숙성해 ‘00년산 숙성 증류주’ 형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증류주는 장기 보관해도 부패가 없고, 숙성하면 그 가치가 올라갑니다. 또 증류주는 덜 노동집약적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해 충분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품목이라고 봅니다.”

이 대표는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증류주 시장이 향후 보다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에 누룩으로 빚어진 전통주가 더 많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주가 더욱 발전하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보다 적극적인 산·학·관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비교적 참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감사히 여깁니다. 농촌진흥청 정석태 박사는 제가 속한 발효식품연구회 회원들이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오기 전까지는 2010년부터 약 10년 동안이나 동호인들과 두 달에 한 번씩 찾아가 기술자문을 구했는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그동안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조지아와 러시아 등지로 직접 함께 다니며 저희 부부가 발효식품과 전통주에 대한 소양을 쌓고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식품연구원 김재호 박사께도 이 지면을 통해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세청기술연구소백년사>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1924년 전국에는 2만 8,206개에 이르던 누룩 제조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면허 인원은 3만 7,759명, 이들이 만들어 낸 누룩의 양은 4만 5,103톤에 이른다. 당시 곡차 생산지역 조사결과를 정리한 조선주조사에는 전국 곳곳의 누룩 제조방법을 자세하게 적은 기록도 남아 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소규모 누룩 제조장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 누룩 제조장 수는 불과 10여 년 만인 1933년에 102곳으로 대폭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로도 누룩 대신 입국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며 전통주는 한동안 소멸의 길에 접어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변화가 가속화되고 새로운 가치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시대.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이에 관심을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화양에서 이뤄낸 성과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전통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뒷받침된다면 우리 전통주도 세계시장에서 김치와 장처럼 당당히 그 우수성을 인정받을 그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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