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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5주년, ‘성경 권위’ 사수에 진력해야” - 샬롬나비 논평 발표 - 성경의 권위가 교황의 거짓 권위 혁파한 주권적 사건 -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재발견하고 삶에서 실천해야
  • 기사등록 2022-11-28 0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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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가 95개 조항을 내걸었던 비텐베르크 성벽교회 출입문.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이해 “종교개혁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중세 교황의 거짓 권위를 혁파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사건”이라며 “점점 위험에 직면하는 ‘성경 권위’를 사수하는 데 진력(盡力)하자”고 촉구했다.


샬롬나비는 505주년 기념일인 31일 발표한 논평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스콜라 신학이 아닌 신약성경에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 정문에 로마 교황을 향해 95개조 반박문을 내건다. 이는 베드로를 첫 교황으로 간주하고 사도전승의 역사를 왜곡하여 천년 동안 교회를 더럽혔던 교황의 거짓 권위를 폭로한 시발점”이라고 했다.


이어 “루터가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은 향후 세계 교회사의 대전환점이 되며 신학 사상의 대격변, 나아가 유럽 전체를 정치적 대혼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개입 사건”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교황제의 허구를 폭로한 것은 분명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 자체의 권위였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을 거론할 때 무엇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를 강조한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계시 기록이 완성된 1세기말 이후 비로소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모든 성도에게도 반포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이 신적 권위를 지닌다는 말은 교황 등 인간의 종교회의가 이를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진리가 시대를 초월하여 신앙과 규범의 절대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개신교회는 지금까지 성경권위 훼손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수 세기 전부터 문서설과 역사비평학, 진화론과 무신론의 도전에 절대진리의 권위를 확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종교개혁 505주년에 즈음하여 점점 위험에 직면하는 ‘성경 권위’를 사수하는 데 진력(盡力)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샬롬나비는 ▲종교개혁은 교황권위의 허구와 교황제 옹호한 스콜라신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혁파한 사건 ▲성경 권위 확정으로 미완의 종교개혁을 한국 교회에서 완수해야 한다. ▲자유주의 문서설과 역사비평학이 제기한 성경권위 훼손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날 동성애와 젠더주의로 인한 유럽 교회 수천 개가 출석자 미달로 인한 폐쇄 사건은 한국 교회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드러난 한국교회 신자 감소의 근본 문제는 성도들의 진리 확신 부재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다시 한 번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재발견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논평 전문.


종교개혁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중세 교황의 거짓 권위를 혁파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사건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재발견하고 성경의 진리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2022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5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스콜라 신학이 아닌 신약성경에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 정문에 로마 교황을 향해 95개조 반박문을 내건다. 이는 베드로를 첫 교황으로 간주하고 사도전승의 역사를 왜곡하여 천년 동안 교회를 더럽혔던 교황의 거짓 권위를 폭로한 시발점이었다. 


루터가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은 향후 세계 교회사의 대전환점이 되며 신학 사상의 대격변, 나아가 유럽 전체를 정치적 대혼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개입 사건이었다!


  교황제의 허구를 폭로한 것은 분명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 자체의 권위였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을 거론할 때 무엇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를 강조한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계시 기록이 완성된 1세기말 이후 비로소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모든 성도에게도 반포되었다. 


성경이 신적 권위를 지닌다는 말은 교황 등 인간의 종교회의가 이를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진리가 시대를 초월하여 신앙과 규범의 절대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개신교회는 지금까지 성경권위 훼손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수 세기 전부터 문서설과 역사비평학, 진화론과 무신론의 도전에 절대진리의 권위를 확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샬롬나비는 종교개혁 505주년에 즈음하여 점점 위험에 직면하는 ‘성경 권위’를 사수하는 데 진력(盡力)할 것을 촉구하면서 다음같이 천명하는 바이다.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1. 종교개혁은 교황권위의 허구와 교황제 옹호한 스콜라신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혁파한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은 성경을 절대 권위로 입증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교황 독재의 중세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찬탈한 적그리스도 집단이었다. 중세를 천년의 암흑기로 규정하는 이유는 교황권위가 성경권위를 처참하게 유린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논리학이 성경 진리를 지배한 시대였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했지만, 실상은 신학이 철학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철학의 헛된 속임수(골 2:8)에 성경 진리와 바른 신학은 사장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스콜라 신학은 성경을 교권 옹호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철저히 도구화했다. 성경 해석의 권한은 오직 교황에게 있었고 성경 번역은 불법이었다. 교황 권력은 성경을 번역하고 가르치는 진리의 수호자들을 화형대에 매달았고 부관참시의 만행까지 저질렀다. 


하지만 많은 개혁자들은 진리를 위한 순교의 열매를 맺었으며 그 원동력이 바로 ‘성경 권위’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제 한국교회 내에서 이단들에 의해,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교회 정치꾼에 의해 그리고 기복적이고 무속적인 번영 신학에 의해 유린당하는 성경 권위의 회복은 505주년 종교개혁 기념일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2. 성경 권위 확정으로 미완의 종교개혁을 한국 교회에서 완수해야 한다.
95개조 반박문을 공개적으로 제시한 4년 후 1521년 4월 루터는 보름스(Worms) 의회에서 성경 권위에 바탕을 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재천명한다. 그 후 루터는 교황청에 의해 파문을 당해 이제 독일 어디에서도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바로 이 사건에서 비롯한다.


당시 비텐베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Elector Friedlich)를 하나님께서 성경 번역의 후원자로 준비해 놓았다. 그는 신복들을 보내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는 루터를 밤중 납치극을 벌여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Castle)으로 데려다 보호한다. 


루터는 그곳에서 오직 라틴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 연구에 몰두했다. 루터는 성탄절을 며칠 앞둔 1521년 12월 21일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로 결단해서 11주 만에 번역을 완성했다. 


시편 주석을 비롯해 여러 신학 저서들을 완성했으며 독일 종교개혁의 동력을 만들었다. 1521년 5월부터 약 10개월간 하나님께서는 그야말로 루터에게 ‘오직 성경만’ 절대권위라는 진리를 확증시켜 주었다. 


밀도 있는 성경연구로 성경권위를 확정하는 일이 교회는 물론 신학교에서도 희박해지는 한국교계 상황에서 하나님이 당시 루터의 생명을 살려주신 이유가 성경을 번역하고 연구에 몰두하고 성경권위를 확정하는 데 있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자유주의 문서설과 역사비평학이 제기한 성경권위 훼손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오직 성경의 권위 위에 바른 신학을 수립하고자 분투하던 개신 교회는 한 세기가 지나면서 영감설 부정과 문서설의 공격에 직면한다. 종교개혁 이전에 시작한 과학혁명은 성경의 진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성경을 과학의 기준에서 비평하기 시작한다. 


이후 17세기 합리주의와 18세기 계몽주의는 성경권위의 근간을 흔들기 시작했다. 성경 본문 자체에서 오류를 지적하고 성경 66권의 진리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텍스트 기원을 문제 삼는 역사비평학의 도전 앞에서 개신교 신학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완벽하게 변호하지 못한다. 진리의 요건인 논리적 일관성이나 구조적 통일성, 주제의 단일성을 제시하지 못한 개신 교회의 성경관은 문서설과 역사비평학에 성경권위를 결국 넘겨주게 되었다. 


성경권위가 사라진 서구 교회가 어떻게 몰락해 갔는지는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성경권위를 다시 확립하지 못할 때 우리가 겪을 몰락의 길을 미리 보여준다. 마치 악한들에게 유린당하는 가엾은 소녀 같은 처지가 교회 내에서 성경진리가 욕보이는 상황이다. 이에 다시 한 번 ‘원천으로(ad fontes!)’가 절실한 때며, 진리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성경진리의 절대성을 확정하는 것이 바로 한국 교회의 몫이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e)이라는 모토를 근본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선언을 통하여 부패한 로마 천주교의 반성경적 교조와 구습은 타파되어 종교개혁 이후에 비로소 교회가 초기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이제 한국교회가 개혁교회의 전통이 성경적 본질로 돌아가는 것임을 기억하고, 반성경적 기복신앙, 주술신앙, 배금신앙 등과 같은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중세 천주교가 면죄부를 판매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함으로써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은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오늘날 스스로 교회의 부 축적과 세상 명예추구 사슬에 스스로 매이는 답습을 해서는 안된다.


4. 오늘날 동성애와 젠더주의로 인한 유럽 교회 수 천 개가 출석자 미달로 인한 폐쇄 사건은 한국 교회에 대한 경고다. 지난 2022년 6월 미국 주요 일간지 ‘USA투데이’는 ‘유럽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살포했다. 


유럽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왜 그런지 오늘날 동성애와 젠더주의를 받아 들인 유럽 교회의 몰락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영국 성공회 1만 6천여 개 중 4분의 1은 교인 수가 20명 이하다. 종교의 자유가 일찍부터 허용되었고 칼빈주의를 확정하면서 개혁파 교회의 종주(宗主)였던 네덜란드는 10년 동안 약 7백여 개 교회가 철거되거나 매각되었다. 


1950년대 90% 교인 출석률은 현재 5% 이하다. 개혁의 선구자 순교자 얀 후스(Jan Hus, 1369-1415)의 나라 체코는 현재 20대 무신론자 비율이 유럽 평균 60%보다 훨씬 높은 92%로 압도적이다. 800년 역사를 자랑하던 교회가 파산하고 성매매 업체에게 팔리는 충격적 결말을 맞았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가 체코로 보인다. 


루터교가 절대다수인 스웨덴의 경우 기독교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무슬림 난민이 그 자리를 매운다. 스웨덴 최대 종교는 곧 이슬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동성애와 젠더주의 등 세속주의에 물들 경우 한국교회 몰락에 대한 경고다. 무신론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확정하는 것뿐이다.


5.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드러난 한국교회 신자 감소의 근본 문제는 성도들의 진리 확신 부재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한국 장로교 주요 교단을 보면 2021년 말 대략 40만 명의 수가 줄었다. 2022년 발표한 기감 교단과 기성 교단의 감소 수 대략 10만 명을 합하면 적어도 50만 명 이상 교인수가 줄었다. 


물론 교인수가 진리 확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교회 생활에 있다고 보면 감소는 진리의 말씀에 대한 기회가 사라진 심각한 상황이 된다. 그런데 교인수 급감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노출되었다. 비대면 신앙 생활에서 노출된 문제다. 


성도들이 그동안 맹목적으로 교회 출석만 했다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 과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성경진리에 대한 묵상을 혼자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다. 부모가 가정교회 예배를 인도하고 간단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출석과 헌금만 강조했지 개인 성도 혼자라도 흔들림 없는 신앙을 지닐 수 있도록 교회가 양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는 신앙의 바탕은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의식(儀式)과 예전(禮典) 중심에만 길들여진 성도들의 신앙은 처참했다. 교회 지도자들의 깊은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성경강론 중심의 성도 양육이 무엇보다 절실함을 깨달아야 한다.


6.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다시 한 번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창궐한 흑사병 한가운데서 자기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며 가족처럼 성도들을 돌보았다. 


비텐베르그의 종교개혁자 루터는 흑사병(黑死病, pest)으로 동생을 이미 잃었으나 비텐베르크에서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소책자를 발간하면서 감염되어 죽더라도 이웃이 자신을 필요로 하면 누구든 어떤 곳이든 달려갈 것이라고 하며 동역자들과 함께 소독하고 약을 짓고 물을 끓이고 시신을 격리 매장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의 경우 흑사병으로 어머니를 잃었으며 다섯 번이나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으로 제네바 인구 3분지 1이 죽는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며 성도들을 돌보았다.
취리히 종교개혁자 블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는 흑사병의 고통을 온몸으로 혹독하게 겪는다. 그의 아내, 큰 딸, 둘째 딸, 4일 된 아들 등 9명을 잃는다.


이 죽음의 현장에서 블링거는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해 성도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가르치며 성도들을 돌보았다. 그들의 본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대면과 비대면의 논쟁은 개혁자들에게는 사치였을 것이다. 벌 받아서 흑사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그들은 결코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방역 체계를 스스로 세웠던 개혁자들에게 그것이 신앙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말 역시 사치였을 것이다. 첫째 딸을 묻고 돌아와 그 다음날 다시 둘째 딸을 그리고 다시 4일 지난 핏덩이 아들을 묻어야 하는 아버지이자 목회자인 종교개혁자에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하는 식의 남의 탓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질병과 환란이 닥칠 때 교회가 무엇에 역점을 둬야 하는지 종교개혁자들의 흑사병 사투 역사에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


7. 오늘날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재발견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가 교회의 예배를 상업화하여 타락시켰을 때, 성경의 권위에 근거한 이신칭의의 구원의 진리를 회복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삶에서의 예배를 실천하였다. 


개혁된 교회들은 세상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진리의 등불의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처음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요 진리로 믿었던 성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살아나기 위해서는 성경을 진리로 믿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여 한국사회의 소망의 빛이 되어야 한다. 교회 갱신의 원리는 단순하며 심원하다. 성경 말씀이 진리로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종교개혁의 정신이 다시 실천되어 한국교회가 소생하고 건강하게 나아갈 것이다.


2022년 10월 3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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