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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칼럼] 하나님 떠나고 말씀 버린 인본주의 신학과 WCC - [WCC와 마르크스주의] WCC의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신학
  • 기사등록 2022-08-11 00: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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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주 바이어하우스학회 회장


해방신학과 마르크스(맑스)주의는 함께 손잡고 반자본주의와 아울러 반복음주의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1970년대 페루 가톨릭 사제이며 해방신학의 상징적 인물인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rez)는 피압제자들을 사회·경제·정치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물질적 사회 해석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티에레스는 먼저 사회구조를 변혁하여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neue Gesellschaft)를 건설해야 하고,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문화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며,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하나님 나라의 자리에 대체시켰다.


그는 국제적 계급투쟁을 통해 이루어야 할 새로운 사회를 유토피아(Utopia)라고 하는데, 이 유토피아는 역사적인 ‘새로운 질서’이며, 문화혁명과 같은 ‘역사 속의 운동성’이고, 또한 이것은 하나의 인간 작품이라고 역설하였다. 해방은 오직 시민 국가의 파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노동자 계급의 집권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정치적 중립은 불의 현상을 조장한다고 비난하고, 교회가 투쟁해야 할 대상은 ‘거짓 신’인 자본주의의 사유재산, 자본, 식민적 민주주의, 시민적 자유, 소비 사회, 착취자를 숭배하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마르크스주의와 손잡은 남미의 해방신학은 다른 상황화 신학들과 산업선교, WCC의 혁명신학, 정치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제3세계신학, 바퀴의 신학(필리핀의 민중신학) 등 소유격-정치-경제학으로 세상의 유행 신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 해방신학은 1966년 WCC의 ‘교회와 사회 협의회’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WCC 내에 이러한 협의회가 창설되게 된 것이다.


우루과이(Uruguay)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에 있던 개신교 해방신학자들 모임인 ‘라틴아메리카  교회와 사회(Iglesia y Sociedad en America Latina = ISAL)’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이 ISAL은 마르크스주의와 가장 가까운 단체로,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동향 속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발견하려 하여, 무력 문제와 게릴라전과 마르크스주의 문제를 다루고, ‘기독교와 사회(Christianismo y Sociedad)’라는 잡지도 발간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교회와 사회 협의회는 점차 중남미 여러 곳에 확대됐다. WCC 내에도 이와 같은 ‘교회와 사회 협의회’가 세워졌고, ISAL 일원이었던 리차드 쇼올(Richard Shaull)이 이때 WCC 내부에 ‘혁명신학’을 주창한 것이다. Shaull은 20년 간 남미에 살았으나, 1962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Prinston)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좌익과 연결돼 있었다.


WCC의 교회와 사회 협의회 문서는 기독교인에게 혁명 계획을 위한 동역의 자유를 촉구하고, 기독교인들은 힘의 구조(Machtstruktur)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단언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데 있고,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그 역사에 참여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무력 사용에 대해 말하며, 방어 방법으로 비폭력적인 방법이 합당하지만, 문제는 수백 만을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불의한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불가시적인 무력에 있다고 하며, 무혈의 무력으로 온 백성을 영원히 절망시키기보다 차라리 유혈 혁명이 더 작은 악(ein geringeres Übel)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결국 비무력적 입장이 기독교인의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인이 절대 비폭력을 고집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게 되는데, 특수 상황에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유혈 혁명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1952년(제5차 에큐메니칼 세계선교협의회, IMC) 이래 교회를 세상과 분리하지 않고, 교회를 세상의 일부, 세상의 완성, 세상을 섬기는 자 등으로 정의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WCC는 이같이 마르크스주의와 손을 잡고, 세속적 방법으로 성경적 구원 개념인 ‘하나님 나라와 새 사회’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 개념을 혼합하여 이 땅 위에 인간 스스로 ‘하나의 왕국’을 건설하려 했다.


1980년 호주 멜버른(Melbourn) 대회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선교와 복음화대회(CWME)는 ‘나라가 임하옵시고’라는 제목으로 총체적 복음화론을 다루었다. 그 제1분과는 ‘선교’를 억압이 아니라 해방하려 노력하고, 착취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 노력하며, 가난이 아니라 충만이고, 노예가 아니라 자유이며, 질병이 아니라 건강이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세속적 범주로 정의하면서, ‘복음화’ 중심 요소를 정의사회를 위한 질서와 인권을 위한 투쟁 참여라고 했다.


그것은 1973년 WCC 방콕 세계선교위원회 제2분과에서 구원에 대해 설명한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는 구원이 ①착취에 항거한 경제적 정의를 위한 투쟁에 있고 ②억압에 항거한 인권을 위한 투쟁에 있으며 ③인간 사회의 소외에 항거한 단결을 위한 투쟁에 있고 ④절망에 항거한 희망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멜버른 대회는 그동안 교회가 불의에 저항해 빈자와 피압제자의 투쟁에 참여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음을 반성하며(제1분과 18항), 억압에 저항하는 빈자의 투쟁에 후원할 것을 다짐하고(제1분과 20항) 온 세계 불평등의 구조를 변혁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제2분과 20항).


그러므로 에큐메니칼(Ecumenical) 신학에서 말하는 ‘선교 및 복음화’란 의미는 더 나은 공동체를 설립할 구조적 변혁을 위한 투쟁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종족적 인종적 소수와 여성과 장애인, 난민 등을 돕는 투쟁에 참여함을 의미한다(제2분과 19항, 31항).


WCC적 선교방법은 교회가 이러한 사회적 투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냐 또는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는 당연한 것이고, 참여 수단이 폭력이냐 비폭력이냐가 문제라고 밝혔다. 멜버른 대회 제4분과는 무력 사용에 대해 언급했는데, 기독교인들은 무력 사용에 관한 판단 때문에 나눠지며, 이것은 피차 양보할 수 없는 해결되지 않는 에큐메니칼 논쟁이라고 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비폭력의 실천은 포기할 수 없는 기독교적 순종의 일부로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의 공동체가 무력 충돌에 엉킨 상황 속에서는 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압제자의 폭력에서 해방하기 위해 비기독교인들과 단결하고 무력 충돌에 엉킨 그들과의 단결을 구체적으로 표명한다(11항)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폭력에 대해, 폭력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인가, 그리고 폭력을 자기 교회나 기관을 위해 사용하는가 아니면 자기희생적 사용인가를 질문한다(13항). 즉 폭력 사용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어떤 때 폭력을 사용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그것은 일찍이 흑인 신학자 제임스 콘(James Cone)이 흑인혁명을 위한 폭력 사용 문제에 대해 폭력 사용 자체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백인의 폭력에 대한 것인가 흑인의 폭력에 대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 바른 질문이며, 우리가 어떠한 폭력 사용을 지지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역설한 것과 병행되는 질문이다.


과테말라의 J. 에스퀴벨(Julia Esquivel) 여인은 이 멜보른 대회에서 “내가 죽임을 당해도 살바도르 민중 가운데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외친 로메로(Romero) 주교의 말을 인용하며, “부활의 놀라운 경험은 니카라과 민중의 승리와 함께 시작됐고, 길거리에서 땀을 흘리는 하나님, 자유를 원하는 민중을 통해 소리치는 하나님(니카라과 찬송)과 함께 교회가 민중 편에 서서 혁명투쟁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반면 에스퀴벨은 복음주의적 전통은 개인적이고, 내세적(미래적)이며, 기회주의적(정치적으로)이라고 비난했다.


멜버른에서 ‘하나님 나라’ 또는 구원은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신학적 유토피아로 이해하는 측면 외에, 달리 성경적·복음주의적 고백이 제3분과 첫째 그룹에서 나타난다.


이곳에 복음주의자들 소수가 참석했는데, 그로 인해 이 보고서에서 전체적 분위기와 상응하지 않는 복음주의적 진술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는 이 땅에서 나그네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과 신앙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다고 했다 (10항). 선교란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음을 전파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신앙에 초청하는 것이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4항).


이들은 회심을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이며 또한 타인과 새로운 관계’라 하고, ‘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수직적이고 수평적이며, 신앙과 행위(약 2;18-20)’라고 함으로써, 총체적 변화를 설명할 때 진보적 입장과 달리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위 공산주의적 혁명신학과는 달리, 복음은 본래 가난과 비참과 억압의 원인은 인간의 타락에서 기원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므로 먼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근거로 한 인간의 회심과 하나님의 용서 사건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고후 5:7) 먼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형성돼야 비로소 이웃과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과의 우선적인 관계 개선 없이, 스스로 무력혁명을 통해 현재 시민사회와 그 구조를 파괴하여 구조악을 없앨 수 있다는 낙관적 입장을 취한다. 그 행동의 결과는 구소련의 디스토피아적 파멸과 재앙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 없다. 타락하고 피 흘린 손으로 세워서 성공한 유토피아는 없다.


혁명신학과 같은 인본주의 신학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말씀을 버린 죄악을 범하고 있다. 이러한 범법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한다면, 무신론적 공산주의 행동에다 하나님을 배신한 죄까지 더하여 더 커다란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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