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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교회 목회 37년을 뒤로 하며 - 최삼경 목사 은퇴 논고 - 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교회와 신앙 편집인
  • 기사등록 2021-12-21 22: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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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삼경 목사


누구나 어렸을 때는 미래를 자주 말하고, 늙으면 주로 과거를 말한다. 그럴 필요도 있고 그럴 이유도 충분하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어린이라도 미래는 물론 과거도 생각하고 보아야 하고, 어른이라도 과거는 물론 미래도 생각하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 없는 미래는 없기 때문이고, 미래 없는 현재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37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목회를 하고, 싫든 좋든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 아쉬움 앞에서, 천일을 말해도 할 말이 많고, 천일을 반성해도 반성할 것도 많고, 천일을 감사해도 감사할 거리가 많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자랑, 승리, 감사는 물론 반대로 후회, 좌절, 원망, 배신 그 어떤 것도, 내일 거두어야 할 열매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목을 ‘37년을 돌아보며’라고 하지 않고 ‘37년을 뒤로 하며’라고 제목을 붙였다. 은퇴하면 <빛과소금 교회>와 한국교회를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담임 목사의 사명은 끝나지만, 이제부터 은퇴 목사로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말이다.
 

37년은 실수 많은 아쉬움의 시간이었다.


  
                      ▲행사장 전경

나는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반성은 깊고 철저하게 하는 편이다. 반성하지 않으면 회개 자체가 불가능하고 자연히 과거에 했던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되어, 결국 더 나은 미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항상 해야 할 일이 앞에 있고, 없으면 찾아서라도 천리 길이라도 기쁘게 달려가는 편이다.


그런데 반성을 하면 할수록 과거는 후회와 아쉬움을 남긴다. 이는 잘못 했어도 잘했어도, 성공했어도 실패했어도 동일하다. 충성했지만, 진실했지만, 사랑했지만, 참았지만, 지혜를 다 했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충성하지 못해서, 더 진실하지 못해서, 더 사랑하지 못해서, 더 잘 참지 못해서, 더 지혜롭지 못해서 내 가슴을 친다.


이 교회의 벽돌 한 장 한 장에 나의 눈물과 땀과 피가 묻어 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크다. 나를 쓰셔서, 나이기에 이 교회를 이만큼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또 나이기에 더 부흥되지 못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37년 동안 한 실수가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참으로 많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기억들 앞에서 혼자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예를 들기로 하면 너무나 많아서 들 수 없다.


참으로 충성된 사람은 자신의 불충성을 회개하지만, 충성되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충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참 효자라면 오히려 자신을 ‘불효자다’라고 하지만, 정작 불효자는 ‘나는 할만큼 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시험을 본 학생들의 경우, 몇 개만 겨우 맞은 학생은 무엇이 틀렸는지도 잘 몰라 어떤 반성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한두 개만 틀린 학생은 그것이 아쉬어 되 뇌이고 뇌이는 법이다. 나는 누가복음 17:10에서처럼 받은 명령을 다 행하지도 못하였지만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하지도 못한 죄인이다.
 

37년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었다.

하나님 외에 나를 가장 잘 아는 자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어야 한다. 성령은 성도를 속이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또 성숙한 자의 마땅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긴 과거에 대한 산더미 같은 미련, 아쉬움, 자랑, 성공, 후회, 배신 등등 모든 것은 다 내가 뿌린 것들이요, 내가 해야 할 내 회개 거리요, 또 내가 받아야 할 상급이다. 아픔도 내 몫이고, 책망도 내 몫이고, 회개도 내 몫이고, 배신도 내가 해결해야 할 내 몫이지만, 무엇보다 감사도 내 몫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가장 수고했다고 할 수 있는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전 15:10)고 고백했다. 나는 바울과 비교할 수 없는 자이지만, 이 고백은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라 나는 물론 성도라면 모두 해야 할 동일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내가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갔다면 바로 벼랑에 떨어져 죽고 말았을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당나귀와 심지어 원수까지 동원하여 나로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하게 붙들어 주셨다.


나타난 행위는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내 속의 뿌리 깊은 죄성을 드러낼 때가 아주 많다. 직선상에서 보면 나는 분명히 강도요, 살인자요, 도적이요, 간음자다. 삭개오처럼 회개를 해야 하고 회개하면 살 것인데도, 그렇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나의 위선이다. 그것이 부끄럽고 통탄스럽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가 없다.


  
▲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중인 최삼경 목사를 대신
해서 장경애 사모(오른쪽)와 사위 김강산 목사가대신
인사를 하고 있다.

둘째,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목사로서 누구보다 원수(?)가 많다. 밖에는 더 많지만, 안에도 있다. 성도라면 자주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 옆에 가룟 유다가 있음과 같은 원리라 믿어 위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반성한다. 하나는 내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게 던진 공은 반드시 세게 되돌아오는 법이다. 그리고 하나는 내가 이단 내지 이단 옹호자들과 싸워야 했고, 또한 교계의 부조리한 일들을(세습, 표절 등) 밝히는 점에 대하여 좌고우면하지 않고 폭로하고 힘 있는 자들과 피 터지게 싸운 결과일 것이다. 전자는 회개해야 할 일이고, 후자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처럼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시 23:5)을 많이 경험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셋째, 나를 실수하지 않게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실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 결코 아니다. 내가 원수들에게 송사를 당할 큰 실수나 결정적 죄를 짓지 않게 하셨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란 말이다. 정직한 양심의 소리로는 물론 은혜의 빛으로 나를 보면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그러나 은혜로 법리적, 교리적, 윤리적 죄를 짓지 않도록 특별히 붙들어주셨음을 안다. 특히 이단들과 이단옹호자들 그리고 원수들이 현미경으로 나의 약점과 실수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에게 잡힐 죄를 짓지 않게 하셨다. 아니 성경의 말로 하자면 ‘죄의 가리움’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은혜다.


인간에게 배신처럼 힘든 일은 없다. 나 버리고 간 사람 때문에 잠을 못 자고 고민하고 미워하다가 무서운 병에 걸리기도 하고,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자식 때문에 불행해진 부모들은 다 배신감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누가 나를 배신했든 나로 복수하지 못하도록 나를 매는 줄 하나가 있다. 그것은 원수들이 내게 한 큰 잘못보다, 내가 한 작은 실수나 잘못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벌써 나는 저들이 손에 든 그 돌덩이에 맞아 아간처럼 그 돌무더기 속에 누워 있을 것이다.


용서가 어려운 것은 너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다. 내 잘못 때문이다. 자기용서가 안 된 사람은 너의 적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자신을 용서한 사람은 너의 큰 잘못도 쉽게 용서한다. 비록 네가 나에게 큰 고통과 많은 피해를 주었다고 해도 용서의 문제는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아직도 만족한 용서를 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참아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이 은혜 중에 은혜다.


지난 37년 동안 <빛과소금교회>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하지만, 혹 실패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내 잘못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내 모범이 좋지 못해서, 내가 지도자로서 리더십이 부족하고, 그리고 넓고 바른 안목을 가지지 못해서 생긴 결과들이 분명하다. 37년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37년은 전적으로 감사의 기간이었다.

감사와 은혜는 떼려야 뗄 수 없이 하나다. 깨달은 만큼 감사하고, 감사한 만큼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다. 큰 죄라도 용서받았으면 흰 눈처럼 씻어 주기고 또 기억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털끝처럼 작은 죄라도 용서받지 못하고 정죄 받으면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죄인들로 그것을 알고 그것이 믿어질 때, 거기부터만 모든 선들이 다 나올 것이다. 죄인이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한 하나님의 손에서 쓰임 받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나도 우리 지역보다 더 나은 지역, 특히 경제적으로 더 좋은 환경, 세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목회를 하도록 인도하시지 않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작은 강남의 모 교회는 1주일 동안에 무려 30-40억의 헌금을 현찰로 해 버리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37년 동안 전 교인들이 한 건축 헌금이 10억이 못 된다. 우리 교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고 교인들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겸손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자기가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교회 빚을 불평까지 하는 분들을 보면 불쌍하기 한이 없다. 대신 은혜로 교회가 부흥되는 만큼 은행 돈을 빌려 21번 정도의 큰일을 하였지만 다 잘 되었다. 은혜 중에 은혜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114년 동안 은퇴 목사가 하나도 없는 교회, 원로 목사를 한 번도 만들지 못한 교회, 거기에다 전에는 물론 앞으로도 37년 목회한 목사를 두 번 만들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울 뿐이다. 성질도 좋지 못한 나로 끝까지 참아내게 하고 오늘의 교회를 이루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거기에다 나는 목회 하나만 한 것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이 어려운 이단연구까지 함께 했다. 거기다 이단 연구가 목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인터넷에 적게 5천여 건에서 많게는 무려 1만여 건의 나에 대한 비난 기사가 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을 해외에서 우리 교인들에게 문자로 보내곤 한다. 한 번은 연세중앙교회(윤석전) 이단들이 우리 교회에, 5백 명, 1천 명, 2천 명이 쳐들어왔고, 경찰이 55개 중대가 동원되어 막아내기도 하였다. 신옥주란 이단이 16주 무려 4개월 동안 매주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방해하였고, 그때마다 경찰차가 와서 이를 막아냈다. 얽힌 고소만 100여 건이 넘는다. 그런 중에도 지역 주민의 10여%가 우리 교인이란 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될 수 없다. 이를 이겨낸 교인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저절로 난다.


아무리 훌륭한 모세나 엘리야가 와서 직접 목회를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배신자 가룟 유다가 와서 목회를 해도 좋아할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까지 이기고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은 후임자 문제이다. 후임자 문제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전체의 일이라고 해야 맞다. 아무리 보아도 후임자이신 김한원 목사님은 나보다 영성도, 설교 능력도, 신선함도, 온유함도 앞선다. 이런 후임자를 뽑아주심은 감사할 일 중에 최고로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고 고백할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문제는 이후의 삶이다.

<빛과소금교회> 역사가 114년이다, 사실 내가 와서 예장합동 측과 나누어지기 이 전의 50년을 찾았지만, 그것을 다시 뺀다고 하여도, 64년이나 되고, 그냥 64년의 교회 역사라고 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짧은 역사가 아니다.


노년을 ‘실년’(實年)이라고도 한다. 여기 ‘실’자는 열매 ‘실’(實)자다. 즉 노년은 열매를 거두는 때란 말이다. 봄에 뿌린 씨가 여름에 저절로 생기거나 여름에 없던 과일이 가을에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잘 가꾸어야 하는 것이 열매다. 이것이 농사의 원리요 세상 원리이며 영적 원리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평생 뿌리고 가꾼 열매들을 거둘 가슴 벅찬 시기가 되었다.


나는 목회를 하며 이단 연구를 했고, 이단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목회를 했다. 성격상, 시간상,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고난 앞에서 나는 항상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나의 경험의 길이, 건강의 길이, 지혜의 길이, 물질의 길이 다 투자하여 한국교회 자생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겠습니다. 저를 돕고 사용해 주시옵소서’라고.


‘직분은 은퇴가 있어도 사명은 은퇴가 없다’는 말은 천 번 만 번 옳은 말이다. 이제부터 목회와 이단에 대하여 책을 써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앞으로 살날이 산 날보다 짧겠지만 그러나 살아온 날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도 나를 사랑하고 후원하고 기도해 준. 아내와 딸과 사위, 그리고 눈물겨운 성도들에게 뭐라고 다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기도해 주고 후원해 줄 것을 믿으며 감사와 기쁨으로 은퇴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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