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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칼럼) 교과서형인 인간, 참고서형인 인간 - 장경애 사모 / 최삼경 목사
  • 기사등록 2021-08-05 23: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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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경애 수필가


내 딸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후,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대화하던 중 선생님은 내 딸에 대한 첫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맡은 교실에 들어와 막무가내로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열중쉬어’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교실에 들어온 그때와 똑같이 흐트러진 상태가 되었는데 그 속에서 갑자기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맨 뒤에 앉은 한 여자아이가 처음에 명령한 대로 ‘열중쉬어’의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전율이 느껴짐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마치 장학사가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융통성 없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다름 아닌 나의 딸이었다고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 눈에는 장학사로 생각될 만큼 선생님 말씀이라면 하나님 말씀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절대적인 아이가 바로 나의 딸이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을 교과서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반면에 학교 이외의 교육 기관이나 시설, 그리고 가정에서 공부할 때는 교과서보다는 참고서를 더 많이 활용한다. 그것은 참고서가 교과서의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하도록 설명되어 있어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참고서를 교과서보다 더 많이 보게 되고 활용도가 높다. 참고서는 글자 그대로 오직 참고에만 필요한 것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참고서도 교과서의 내용을 습득하기 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없으면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과서는 그 과목의 기초이기 때문에 교과서의 내용을 어느 정도 습득한 사람만이 참고서의 혜택을 백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참고서는 자신의 실력 수준과 기호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교과서는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이어서 누구나 그것만 착실히 공부하면 응용하는 것들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초과정을 습득하는 데에 불편함은 없다.


상급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사람들에게 공부 잘한 비결을 말하라고 하면 천편일률적으로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한다. 100%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교과서는 필수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알리는 것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교과서형인 인간이 있는가 하면 참고서형인 인간이 있다. 교과서형인 사람은 비교적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그 과목에 맞는 여러 교과서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듯이 삶의 모양도 그러하다. 그러나 참고서형인 사람은 융통성이 참으로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융통성이 많다. 그렇지만 참고서형인 사람 중엔 그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교과서의 내용을 습득한 후, 교과서의 내용을 보지 않고 참고서를 보면 헷갈리게 되고, 개념 파악을 잘못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교과서의 내용을 파악한 후에 참고서를 보아야 참고서의 내용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처럼, 참고서형인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아 폭넓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기초 없는 건물 같을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교과서 없는 참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과서형으로 사는 사람과 참고서형으로 사는 사람과의 차이는 어쩌면 소극적이고 원칙에 강한 형의 사람과 적극적이고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실수는 참고서형인 사람에게 더 많을 수 있다. 교과서형인 사람은 정해진 틀 안에서 행복해하지만, 참고서형인 사람은 그 틀을 답답해한다. 그래서 폭넓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지해야 할 틀을 모르기 때문에 삶의 안정감이 없고 떠도는 생각이 많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속옷을 입고 겉옷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절차에 순응하는 사람이 교과서형인 사람이라면 참고서형인 사람은 그 반대다.


대체로 계획대로 이치에 맞게 생활하려는 쪽이 교과서형인 사람이라면 자유분방하고 규칙이나 규범 혹은 평범한 질서 따위는 우습게 여기기 쉬운 사람이 참고서형인 사람이다. 다시 말해 규율이나 테두리를 벗어나 제도를 싫어하여 제 좋은 대로 사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참고서형인 사람의 생각에는 교과서형인 사람은 좁고 편협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또 실제로 좁고 편협할 수 있다. 참고서가 더 다양한 지식을 내포하고 있고, 한 과목에 여러 종류의 참고서가 있는 것처럼 참고서형인 사람의 눈에는 교과서형인 사람은 꿈도 없고 안주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교과서는 기본적이고 하나의 진리에 불과하므로 실제로 교과서형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땅은 교과서형인 사람과 참고서형인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데 비교적 교과서형인 사람은 소극적인 데 반해 참고서형인 사람은 그야말로 참고서처럼 산다. 우리 부부를 보면 정말 교과서형인 사람과 참고서형인 사람을 잘 설명해 주는 모델도 없어 보인다. 나는 늘 스스로 내가 교과서형의 인간이라고 말한다. 참고서형인 내 남편이 교과서형인 내가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참고서형인 내 남편을 이해하는 것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교과서를 제대로 습득한 사람이 참고서를 보면 더 유익한 것처럼 인생에서도 교과서형인 사람은 짜진 규격에 맞게 막힌 듯 살지 말고, 융통성 있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참고서형으로 살면 좋겠다. 반대로 참고서형인 사람들은 반드시 교과서를 우습게 여기지 말고 교과서의 과정을 습득한 후에 참고서형으로 산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내 딸은 지금까지 교과서형으로 살아왔기에 늘 모범생 소리를 들어왔다. 할 일 많은 이 세상에서 이제는 좀 참고서형이 가미된 삶을 살기를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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