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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성시교회 박영환 목사의 이색 목회…
“목사님 역할, 간이역 역장 같은거죠”

서울에서 춘천까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경춘로를 달리다 보면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인근에 자그마한 폐(閉)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옛 경춘선 열차가 정차하던 금곡역으로 2010년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열차 운행이 멈췄다.

방치된 3년간 금곡역의 출입구는 합판으로 막혔고, 유리창은 모두 깨졌다. 인적이 끊긴 역사 마당과 주변에는 온통 잡풀이 무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역이름 위에 작은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로 변신했다. 깨끗하게 단장된 교회 건물은 지역주민들을 위해 개방돼 동네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다.

8년 전 남양주시의 한 상가에 성시교회를 개척한 박영환(58) 목사는 28일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언덕 위의 작은 교회 공동체를 꿈꿨다”며 “한때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 목회를 그만둘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곳으로 옮겨온 뒤 하나님께서 새로운 희망을 주셨다”고 말했다. 교회로 바뀐 옛 금곡역사는 실제 도로 옆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 있다.

증조부와 조부, 어머니에 이어 4대째 목회를 하고 있다는 박 목사는 평일 새벽 5시면 교회에 나와 새벽예배를 인도한다. 예배를 마치면 잠시 집에 들렀다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교회를 지키며 지역주민들을 맞는다. 지난해 11월 첫 예배를 드린 이후 매일 이어지는 박 목사의 일과다.

교회에는 지금도 열차를 타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경춘선 전철 개통 소식을 듣지 못한 어르신들이다. 박 목사는 옛 금곡역을 찾는 주민들에게 새 역사로 가는 길을 안내할 뿐 아니라,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며 말동무가 된다. 복음도 전하고, 교회가 따뜻한 이웃이라는 사실도 알리고 싶어서다. 지역주민과의 스킨십을 위해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노래로 배우는 영어교실도 진행한다.

저녁 무렵이면 박 목사는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형과 오빠가 된다. 역사가 방치됐던 시절, 이곳은 무리지어 다니는 청소년들의 아지트와 같은 곳이었다. 박 목사는 “처음 교회가 들어섰을 때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빼앗긴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교회이자 북카페인 이 공간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이들도 종종 들른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교회 인근에서 서성이면 교회로 불러 컵라면을 끓여주고, 음료수를 나눠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컵라면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매달 일곱 상자씩 청소년 선교를 하라며 보내준다고 한다.

99㎡(30평) 넓이의 예배당에는 긴의자 20개와 3개의 테이블이 있다. 출석 성도는 장년 30여명으로 여전히 작은 교회다. 깨끗하게 정리된 예배당 뒤편 철로는 자전거도로로 만들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자전거도로가 완공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지나게 될 것이다. 박 목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전거선교회도 만들 계획이다.

박 목사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간이역 역장 같은 목회자가 되고 싶다”면서 “성시교회가 지역주민과 소외 청소년들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이 전해지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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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1-29 08: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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