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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문제의 핵심은 ‘성경 해석’이다 - 성경 해석 능력을 키우는 4가지 방법
  • 기사등록 2021-01-23 20: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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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동영상 강의를 함께 열었다.

이단 문제의 핵심은 바로 ‘성경 해석’이다. 요즘 이단은 과거 이단과 달리 성경을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보다 훨씬 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며 암송도 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정통이 될까? 결코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문제는 ‘성경 해석’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하거나, 특정한 목적(교주 신격화)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올바른 성경 해석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오늘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성경 해석’이라는 말이 참 무겁게 들린다. 신학자들 또는 적어도 목회자들이나 하는 작업처럼 여겨진다.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렇다고 평신도들이 성경 해석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성경 해석의 능력을 ‘훌쩍’ 키울 수 있다. 본 글이 진행하는 순서대로 무작정 따라하기만 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성경 해석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4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1. 관주 사용하기

2.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4. 참고서 활용하기



위 4가지 방법은 이미 우리가 많이 들었던 것들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한 자리에 정리해 보았다. 위 4가지 방법은 결코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누구나 실행할 수 있다. 이 4가지 방법을 통해 성경 해석 능력을 키우면 다음과 같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이단들의 주장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나 자신은 물론, 우리 가족과 이웃 그리고 교회를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정통 교회 목회자의 설교에 더욱 ‘찐-한’ 감동을 얻게 된다.



필자는 위 4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그동안 많은 신천지, 구원파 등 다양한 이단 교리 분석의 글을 써왔다. 이단들이 자주 사용하는 성경 구절들을 분석하여 책으로 출간 한 바도 있다.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 이야기>(장운철, 부흥과개혁사, 2013)가 그것이다. 신천지가 교과서처럼 사용하고 있는 교리서를 분석한 책 <신천지 요한계시록 실상 대해부>(장운철, 기독교포털뉴스, 2019)도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제 4가지 방법의 각각의 개요를 설명해 보겠다. 개요 설명이 끝나면 곧바로 ‘성경 해석 능력을 키우기’ 실전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성경해석 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4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1. 관주 사용하기



성경 해석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관주 사용하기’다. 과거에는 ‘관주 성경’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많은 성도들이 그 성경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서점에 가보면 상황이 달라졌다. 서점의 성경 판매 코너에 가보자. 성경의 디자인과 형식은 너무도 다양해졌다. 어린이용, 큐티용 심지어 신혼부부용 성경도 있다. 한국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개역한글판 성경>은 진열장에서 이미 뒷자리로 옮겨졌다. 대부분 새로 출판된 <개역개정판 성경>이 대부분의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다. <쉬운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도 다수 눈에 들어온다. NIV 외의 다양한 영어성경과 일본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성경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신학교 서점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각종 주석이나 해설이 곁들여진 성경도 많다. 성경 구입 선택의 폭이 정말로 넓어졌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관주’라는 이름이 붙은 성경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관주 성경을 찾는 이가 없으니 출판사에서는 만드는 것을 소홀하게 여겼을 것이고, 또 관주 성경이 시중에 없다 보니 독자들도 찾지 않는 악순환의 상황으로 보인다. 그래도 관심을 갖고 찾으면 만날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관주란 무엇인가? 관주는 ‘꿸 관’(貫)과 ‘구슬 주’(珠)의 한자어다. 구슬을 꿴다는 말이다. 관주는 신구약을 오가며 관련된 구절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 끈’이다. 관련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또는 단어와 문장 등을 이어줄 뿐만 아니라 인용, 비교, 참고 등으로 그 연결해 놓은 이유까지 설명을 알려주고 있다. 성경 전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놓은 셈이다. 이미 오래 전에 우리네 신앙 선배들이 땀 흘려 만들어 놓은 ‘성경 해석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물론 관주 연결에 부족한 점,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주는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훌륭한 성경 연구 도구다. 성경 연구를 위해서는 물론 이단을 대처하는 것에 필요한 성경구절을 찾고 활용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이자 또 무기다. 다시 한 번 관주 사용하기를 적극 권한다. <관주 성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성경을 보는 ‘눈’이 ‘확~’ 열리게 됨을 맛보게 되리라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주 성경>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참고로 필자는 오랫동안 영어와 한글이 함께 있는 관주 성경을 사용해 오다가 몇 년 전부터 <관주 여백 성경전서>(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2004)를 사용하고 있다. 두 권 모두 관주가 있는 성경이다.



2.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관주 사용하기’의 진가는 <관주성경>을 평상시 늘 버릇처럼 사용할 때 나타난다.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들어가 보자. 성경 해석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다. 이런 수고를 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냥 참고서, 즉 주석서를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으리라 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견해, 주석서를 참고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한 성경 이해를 돕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을 스스로 조금씩 깊이 있게 연구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쁨이요, 또 은혜다. 마치 주어진 고기를 먹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기쁨이 더 큰 것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번에 제시되는 4가지 방법을 통해 자신이 찾은 결과를 가지고 주석서와 비교해서 그 내용이 동일하다면 그때 갖는 그 기쁨과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을 해 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일이다. 사실은 전문가들도 이와 같은 4가지 방법을 기초로 하여 연구하고 있다. 우리도 그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첫 번째 ‘관주 사용하기’와 두 번째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등은 자신 스스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전문가들처럼 말이다. 이 능력이 높아질수록 주석서를 참고하는 안목도 커진다. 어떤 주석서를 보아야 할지, 어떤 부분을 좀 더 참고해야 할지에 대해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긴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주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 기쁨의 말씀 연구 작업이다.



대부분 한국교회 성도들은 개역한글성경 또는 개역개정판성경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또는 공부하다가 종종 ‘이 구절은 무슨 뜻일까?’라는 궁금함이 들곤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그 구절의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를 함께 알고 싶은 것이다. 성경이 쓰여질 당시 백성들(1차 독자)은 어떻게 그 구절을 이해했으며, 오늘 우리(2차 독자)에게 그 구절은 어떠한 의미로 주어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 곧 성경 연구의 맥이다.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 말이다. 이단 대처를 위한 성경 연구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 뜻일까?’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를 함께 살펴봄으로 올바른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다. 지금 우리가 시도해 보려는 방법이다. 우리 모두가 성경 언어인 헬라어(신약)와 히브리어(구약)에 능통하면 참 좋을 일이다. 각 성경 구절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의 문화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성도들은 성경 언어(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운 바가 없다. 그래서 알 수 없다. 그러면 이 부분에서 성경 연구를 못한다는 말인가.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의존해야만 하는가. 이렇게 성경을 연구하기 힘드니 이단 대처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비록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모르지만, 그렇다고 성경 말씀의 참된 의미를 찾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양한 언어의 번역 성경이 주어졌다. 간접적이지만 우리는 이 다양한 번역 성경을 통해 당시의 의미와 오늘의 의미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헬라어 히브리어가 사용된 당시의 성경의 의미와 현대어를 사용하는 오늘의 의미를 동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를 통해서 말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성경 연구 방법을 외면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각 개인의 성경 연구는 물론이고 또 이단 대처를 위한 성경 연구도 이 방법을 통해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번역 성경은 주로 한국어로 된 것과 영어로 번역된 것들을 살펴볼 것이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영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주된 초점이다. 직접 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갈 것이다.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이제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가 보자. 이제껏 ‘관주 사용하기’와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를 살펴보았다. 성경 해석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 세 번째는 바로 ‘문맥 따라 성경읽기’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로 ‘문맥’, ‘문맥’, ‘문맥’을 따라 성경을 읽는 일이다. 성경은 법전이나 수학공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의 책이다. 이야기는 문맥, 글의 흐름을 따라 읽어야 한다. 한 단어나 한두 구절만 ‘툭’ 떼어놓고 해석하려고 하면 큰 오해를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느 한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앞뒤 ‘문장’을 함께 읽어야 제대로 된 뜻을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 폭을 좀더 넓혀서, 앞뒤 ‘문단’을 함께 읽어야 한다. 최소 여기까지는 해야 한다. 앞뒤 문단의 폭을 넓히면 넓힐수록 더욱 좋다. 또한 그 구절이 속한 책(예를 들어 요한복음)의 특징을 함께 생각하고 또한 성경 전체에서 그 책의 위치까지 염두에 둔다면 금상첨화다. 너무도 당연한 말 아닌가. 동화책을 읽을 때도 우리는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을 읽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참 많다. 한 단어 또는 한 구절만 떼어서 의미를 두곤 한다. 교회 강단의 설교에서조차도 그렇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문맥 따라 성경읽기’가 본 강의에서 ‘관주 사용하기’와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보다 더 앞에 언급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만큼 중요하면 기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잘 읽으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책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성경을 잘 읽기만 해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지,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등에 대해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오늘의 성경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성경의 해석은 성경을 잘 읽는 것에서 출발한다. 문맥을 따라 잘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앞으로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보겠다.



4. 참고서 활용하기



이제 마지막 단계다. 성경 해석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네 번째 방법은 바로 ‘참고서 활용하기’다. 지금까지 우리는 ‘관주 사용하기’, ‘다른 번역 성경 사용하기’ 그리고 ‘문맥 따라 성경읽기’를 살펴보았다. 여기까지 했으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때가 되었다. 참고서, 즉 주석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내용을 비교해 보는 시간이다. 위 세 가지 방법을 충실히 했다면 주석서가 눈에 보다 잘 들어오리라 본다. 내가 연구한 것과 주석서가 내용이 같으면 무릎을 치며 기쁨을 더 크게 얻게 될 것이다. 내가 연구한 것에 더욱 더 큰 만족감을 얻게 된다. 큰 기쁨이다.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무릎 칠 일이 점점 많아진다. 만약 내가 연구한 것과 주석서의 내용이 다르면 또 다른 큰 배움을 얻는 계기가 된다. 왜 틀렸는지 무엇이 다른 것인지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연구가 아니라 주석서의 내용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 때도 있다.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때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주석서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전집으로 된 것도 있고 단 권으로 된 것도 많다. 한 사람이 66권 전 성경에 대해 쓴 전집 주석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연구한 단 권 주석을 보라고 흔히 권한다. WBC 주석은 그런 점에서 성경 연구가들이 많이 찾는 주석서다. 전집으로 되어 있지만, 각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연구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좋은 책들이다.



각종 사전은 우리에게 또한 좋은 참고서의 역할을 한다. 자신의 책꽂이에서 가장 손이 쉽게 갈 수 있는 위치에 항상 <국어사전>, <영어사전>, <성구사전>, <성경사전>, <성경지도> 등이 배치되어 있으면 좋다. 여기에 <성경 배경 사전>, <신학 사전> 등이 들어가면 더욱 좋다. 경우에 따라서는 <헬라어 사전>, <히브리어 사전> 등도 필요하다. 이 영역은 평신도가 접근하기에는 조금 한계가 있으리라 본다.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헬라어 사전은 ‘바우어 긴그리치’(Baur-Arndt-Gingrich) 사전이고, 히브리어 사전은 ‘BDB’라 불리는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Brown-Driner-Briggs) 사전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다양한 종류의 사전도 시중 서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자료가 인터넷만 잘 활용해도 상당수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종이책이 유용할 때도 많다. 성경 원어 사전을 활용해야 하는 일이 가끔 나타난다. 특히 이단 대처를 위해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원어 단어를 운운하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일들’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 능력을 키우는 4가지 방법’의 개요를 위와 같이 정리했다. 자, 이제 직접 실행해 보자. 첫 번째 방법인 ‘관주 사용하기’부터 시작해 보자.



출애굽기 2:2절 ‘그 준수함’에 관주 표시 b가 보인다. 성경에 따라 그 표시가 다를 수 있다

모세 이야기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관주 성경이 있는 분은 직접 성경을 펼쳐서 함께 따라와 주시기 바란다.



출애굽기를 펼쳐보자. 출2:1-2절이다. 아래와 같다.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2;1-2)



청년부 초기 때 한 유명한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큰 은혜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이 본문에 대한 설교였다. ‘어쩌면 저렇게 성경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성경이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구나’ 그리고 ‘설교자 목사님은 성경을 정말 잘 알고 있구나’ 등의 생각이 들었다. 설교의 감동은 물론이고 설교자가 너무도 멋있게 보였다. 그때의 설교 내용도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갓난아기입니다. 그때 히브리 민족은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새로운 왕이 세워졌는데 그는 히브리 민족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두려워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갈수록 그 숫자가 많아지고 또 그들은 건강하고 강인해서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 아주 끔찍합니다. 태어난 히브리인의 아기 중 남자 아기는 모두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왕의 명령입니다. 거부할 경우에는 온 가족이 모두 큰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세상살이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모세가 이때 태어났습니다. 남자 아기입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죽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님은 그를 숨겼습니다. 자신의 아기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어떤 부모라도 동일한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모세 부모는 석 달을 숨겼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도 커지고 또 움직임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급기야 나일강에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갈대로 아기 바구니를 만들고, 모세를 그 위에 놓인 후 강에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슬프지만, 괴롭지만 다른 가족들도 생각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날 마침 애굽 왕 바로의 딸이 강가로 왔습니다. 그때 강물 따라 흘러가는 아기 바구니를 발견하게 됩니다. 건져서 뚜껑을 열어보니 갓난아기가 들어있었습니다. 히브리인의 아기였습니다. 이때 그 아기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바로의 딸은 그 아기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합니다. 모성애가 자극된 듯합니다. 그래서 왕궁으로 데려갑니다. 자신의 아들로 삼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 이제 생각해 봅시다. 모세의 부모님은 왜 갓난아기 모세를 숨겨 놓았을까요? 이는 왕의 명령을 어기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온 식구 모두 멸망 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2:2절에서는 갓난아기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잘 생겼다’고 말입니다. 갓난아기가 잘 생기면 어느 정도입니까? 아무리 잘 생겼다고 하더라도 온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걸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왜 모세의 부모님은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아기를 숨겼을까요?”



중저음의 목소리 톤과 함께 천천히 설명되는 성경이야기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었다. 청중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강사 목사의 인도에 따라 ‘정말 모세의 보모는 어떤 마음으로 아기를 숨기려 했을까’라는 궁금함에 빠지고 말았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그 강사는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21절을 보겠습니다”라며 성경 구절을 제시했다. ‘모세를 숨긴 이유가 신약성경에 나온다고?’라고 의아해하며 성도들은 성경을 찾아 펼쳤다.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우더니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행7:20-21)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태어난 아이였다. 그 부모가 목숨을 걸고 모세를 숨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설교를 들었던 이들은 모두 감탄을 했다.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성경을 잘 알고 있을까?’라며 존경의 눈으로 강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훗날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관주’의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시 위 본문, 출2:1-2절로 돌아가 보자. 레위 지파의 어떤 신혼 부부(?)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 부부는 아들을 낳았다. 성경을 계속 읽어 가면 그 아이는 ‘모세’임을 알 수 있다(출2:10). 그 부부는 모세의 부모를 말한다. 먼저 ‘모세의 부모는 누구일까’하는 궁금함이 일어난다. 이때도 역시 관주가 도움을 준다. 필자의 성경에는 위 성구 첫 단어인 ‘레위’에 ‘ㅠ’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성경에 따라 ㅠ가 아닌 다른 표시도 있다). 이것이 관주다. 이 글을 접하고 있는 독자의 관주 성경에도 관주 표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ㅠ’의 표시와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은 동일하다. 그 관주가 연결해 주고 있는 성경구절을 보니 ‘출 6:20’라고 해 놓았다. 과연 어떤 구절과 연결해 놓은 것일까? 그 성경 구절을 찾아보자. 아래와 같다.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출6:20)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아론과 모세는 형제라는 사실과 그 부모가 또한 누구인지 이름을 말해주고 있다. 그 부모는 ‘아므람’과 ‘요게벳’이다. 바로 이것이다. 위 레위 지파에 속한 신혼 부부가 바로 아므람과 요게벳이고 그들이 아론과 모세의 부모라는 말이다. 물론 관주를 사용하지 않고 출애굽기를 6장까지 계속 읽어 가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주가 출애굽기가 아닌 다른 성경과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관주는 그것을 바로 연결해 주고 있어 우리에게 보다 쉽게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 내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언급해 보자. 계속해서 관주 활용의 예를 살펴보고 있다. 계속해서 출2:2절이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따라가 보자.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2:2)



아기가 태어났다. 모세를 말한다. 그 어머니(요게벳)는 아기가 태어나자 그를 석 달 동안 숨겼다. 이는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다. 이는 큰 문제다. 그들은 지금 애굽에서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왕명을 어기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은 어머니는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태어난 남자 아기를 숨기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왜 그렇게 했을까? 모세가 성장하여 훗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베풀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부모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보기 힘들다. 그냥 갓난아기일 뿐이다. 그런데 왜?



출애굽기 2장 전체를 읽어봐도 그 이유를 찾기 힘들다. 다만 출2:2 중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라는 것밖에는 없다. 한 마디로 잘 생겼다는 게 이유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갓난아기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어머니는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을 벌이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가능한 일일까? 당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때 역시 관주가 도움을 준다. 필자의 성경엔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앞에 작은 글자 ‘으’라는 표시가 있다. 이것이 관주다. 그리고 그 관주는 사도행전 7:20절로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 그 구절을 따라 성경을 펼쳐보자. 아래와 같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우더니”(행7:20)



스데반의 설교 중 한 장면이다. 즉 스데반이 설교하면서 모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스데반은 모세의 부모가 죽음까지 무릎을 쓰고 갓난아기, 즉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겼던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모세의 부모는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존재를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았다고 스데반이 해설을 해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해 준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거꾸로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을 해설해 주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시간의 논리상 옳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 더 살펴보자. 점점 더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위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라는 성경구절의 관주 ‘으’ 표시 행7:20절 외에 성경구절이 하나가 더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엇인가. 바로 히브리서 11:23절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모세의 출생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이렇게 잘 연결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살펴보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히11:23)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부모의 목숨 건 행위를 ‘믿음’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며, 아기를 강물에 흘려보낸 것 역시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철저한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일을 결코 행할 수 없다는 의미다. 참으로 멋지다. 구약의 성도들의 멋진 결단을 신약성경(히브리서)이 믿음으로 해설해 주고 있다는 게 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참고서를 읽고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성경 하나만을 가지고 성경의 의미를 파악해 가고 있는 중이다. 바로 ‘관주’라는 작업을 통해서 말이다. 이것이 곧 성경을 해석(주해)해 가는 기초 작업이다. 스스로 성경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이며, 또한 이단들의 잘못된 성경 인용까지도 대처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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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1-23 20: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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