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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백스터. 특수 상황에 교회 모임 금한다면 따르는 게 의무

편집국|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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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백스터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 후 처음 맞는 23일 수도권 교회에서는 비대면 주일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경남도와 부산·광주광역시도 권역 내 교회들에 비대면 예배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경북·전북도, 세종시 등은 비대면 예배를 권고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교회들이 기존대로 현장 예배를 실시하겠다고 나오자, 일선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교회 역사 속 사례와 신학적 근거를 들어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쏟아내고 있다. 목회자들은 이번 정부의 방침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특수하고 한시적 상황에서 나온 조치이기에 교회 탄압이나 박해와는 거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정부 시책을 따르는 것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페이스북에서는 다수의 목회자들이 17세기 영국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가 말한 요리 문답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백스터는 목회자 중 목회자로 불렸으며, 대표작 ‘참 목자상’은 국내 주요 신학교 교재로도 사용 중이다. 문답 내용은 이렇다.

질문109 : 만약 위정자가 금한다면 교회는 주일에 모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가?

답변
1. 전염병이나 화재, 전쟁 등의 특별한 이유로 금하는 것과 상시적으로 혹은
불경스럽게 금하는 것은 경우가 다릅니다. 만약 위와 같은 특수상황에서 위정자가 더 큰 유익을 위해 교회의 모임을 금한다면,그에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의 일상적 의무는 더 큰 자연적 의무에 양보해야 합니다. 어느 한 주일이나 하나의 모임을 생략해서 더 많은 모임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김관성 행신침례교회 목사는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신실하게 목회하고 살았던 목회자의 분명하고 선명한 답을 우리의 네비게이션으로 삼으면 안 되는가. 제발 이웃을 생각합시다”라고 썼다. 해당 내용은 국내에서도 출판된 리처드 백스터의 ‘기독교 생활 지침4: 교회윤리’(부흥과개혁사, p452)에 나오는 구절이다. 완전한 내용은 이렇다.


질문109. 만일 통치자들이 교회가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교회는 주일에 모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가.

대답
1. 특별한 이유로(가령, 전염병이나 화재나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처럼)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정규적으로 또는 신성모독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2. 일시적으로 모이지 않는 것과 정규적으로 모이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3. 법에 대한 형식적인 순종으로 모이지 않는 것과, 신중하게 또는 필요해서 우리가 모일 수 없어서 모이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4. 모임과 모임의 상황과 관련된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1)만일 통치자가 공공의 안전 같은 더 큰 유익을 위해 전염병이 일어나거나 적의 공격이 있거나 화재가 났을 때,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그에게 순종하는 게 의무이다.
①적극적인 의무는 그 의무의 목적인 자연적인 의무에 자리를 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신과 자신의 제자들이 외적으로 안식일의 휴식 규정을 어기는 것을 정당화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②적극적인 의무가 언제나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며, 시기에 맞지 않는 의무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③한 번의 주의 날이나 모임보다, 그 한 번을 생략해 얻는 많은 주의 날이나 모임이 선호되어야 한다.
2)만일 왕들이 거룩한 모임과 공적인 예배를 고정적으로나 그리스도와 종교를 제거할 목적으로 신성모독적으로 금지한다면, 그들에게 형식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합법적이 아니다.
3)현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공적으로 모일 수 없어서 은밀하게 모이고, 많은 수가 모일 수가 없어서 적은 수로 모이며, 더 자주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신중하게 어떤 모임을 일시적으로 폐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것은 형식적이 아니라 오직 내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4)그러나 금지된 것이 모임이 아니라 모임의 상황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다음 질문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다.

이에 대해 한 사역자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는 말씀을 인용했다. 그는 “모임을 잠시 멈추고 흩어져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그 예배가 결코 진정성이 없는 예배는 아니며, 더 간절하게 다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중심은 예배를 못 드리는 경우가 아니라 모임이다. 모임과 예배가 동일한 맥락으로 압박을 받고 있으니 혼동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개교회들이 많아 더 타격을 받는 것 같다. 이럴 때 참된 예배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올바른 예배의 보기를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목회자들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참된 예배와 안식일 개념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예배와 안식일의 의미를 논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요한복음 4장과 마태복음 12장 본문들이 거론된다. 목회자들은 이 본문들과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어떻게 서로 관련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6~8)

일각에서는 ‘현장 예배 고수’가 지나치게 구약의 성전 환경에서 동물 제사를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약 이후 성전 개념은 교회로 부르신 모든 성도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이며 ‘성령의 전’(고전 6:19)으로 묘사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영성 상담 편지’에 나오는 ‘치명적 전염병에서 도망해야 하는가’ 일부 내용도 회자되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하신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보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너무 야단스럽지도 무모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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