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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설교 표절 시비에 대한 소고

- 설교의 영역은 표절의 영역이 아닌 복음 설명이다.

편집국|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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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선 목사.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전아) 실천목회연구 교수, 개혁주의포럼 상임대표)
▲ 이흥선 목사. 

칼럼 설교표절, 죄인가 아닌가?
설교는 표절영역에 들어가 있지 않다
설교표절 시비는 세상의 잣대로 판단한 것

목회자의 주된 사역 중 하나가 설교이다. 목회자는 매주마다 여러 편의 설교를 하게 된다. 때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설교준비를 한다. 때로는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설교 표절 시비에 휘말릴 때도 있다.

‘표절’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표절(剽竊)이란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남의 작품이나 논문 등을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고 내 것인 양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설교는 과연 표절영역에 해당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교는 표절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설교는 새로운 작품이나 또는 논문과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작품이나 논문처럼 설교에서 새로운 원리가 제시된다면 이것은 이단에 해당된다.

성경은 완성본이다. 따라서 한절도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마 5:18 고후 4:6 갈 1:7 벧후 1:20 계 22:18,19). 설교란 하나님과 성령이 저자이신 성경 원판(딤후3:16)을 설명해 주는 행위이다. 성경을 작품이나 논문으로 비유한다면 성경은 완성된 작품이다.
따라서 설교에서는 새로운 작품이나 논문과 같은 이론이 나오면 절대 안 된다. 설교란 하나님께서 완성한 작품을 성도들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해석하거나 설명해 주는 일이다. 그래서 설교는 표절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목회자는 표절의 영역에 들어가 있지 않다.

설교에서 표절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가령,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내가 한 일인 양 말하거나, 또는 내가 신이 아닌데 하나님, 예수, 성령, 구원자 등으로 주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표절인 것이다. 표절을 넘어 신성 모독에 해당되는 사이비다.

사실은 성경 그대로 복사하여 전하는 것이 더 순수하고 성경적이다.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복음적이다. 때문에 설교는 반복이요 복사이다. 설교가 왜 필요한가? 연약한 성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목회자를 세워 성경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는 설교의 직임을 맡긴 것이다.

설교를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는 주목적은 오직 한 가지, 성도들의 구원과 신앙생활을 위함이다(요 5:39 딤후 3:15∼17). 설교를 위한 인용은 표절의 차원이 아니다.
‘설교표절’은 세상의 원리와 방식을 교회가 차용해 쓴 말이다. 세상에서는 새로운 작품이나 이론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이 완전치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하면 표절 죄에 해당된다.
설교 인용을 표절시비로 몰아가는 것은 세상의 원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를 막으려는 사단의 궤계이다. 교회는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설교는 작품이나 논문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 세상의 작품에서는 인용된 출처를 밝혀야 만이 표절이 안 되지만 설교에서는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다.

보편적으로 성경의 본 뜻은 한 두 가지이다. 설교자인 내가 부족하여 성경을 잘 설명하지 못한 말씀을 다른 설교자가 정확한 뜻을 깨달아 잘 설명하였다면 당연 그 설명을 차용하여 설교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효율성을 더 높여주는 것이다. 성경의 복음을 나보다 잘 설명해 놓은 것이 있다면 인용해 설교해도 무방한 일이다. 어느 설교자가 말했다고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 말이다.

일예를 들어보자. 바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가 자신보다 훌륭한 바울의 설교를 그대로 인용하여 전하였다고 가정하자. 이때 디모데가 설교하면서 “바울사도께서 말하기를” 라면서 출처를 밝힐 필요가 있겠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대로 내 것으로 전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설교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커피에 설탕을 타 주면서 “설탕은 달단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설탕이 달다는 지식을 아버지를 통하여 습득하였다. 그 지식이 내 것이 된 것이다. 설탕이 달다는 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원래 있었던 원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 아들은 자기 자녀에게 설탕에 대하여 가르쳐 주면서 “설탕은 단 것이란다”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표절이 안 되려면 “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설탕은 단 것이란다”라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유치한 예 같지만 설교도 이와 같다. 성경은 원리이고, 설교는 설명이기에 그렇다.

필자가 판단하건데 설교자의 99.9%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이 쓴 주석이나 강해 집, 예화, 또는 다른 목회자의 설교나 자료 등을 인용하지 않는 설교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교 하면서 출처를 모두 밝히면서 설교하는 목회자가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현재의 한국교회 인식처럼 세상의 잣대로 판단 한다면 모두 표절 죄에 해당되고, 모든 목회자가 설교하면서도 동시 죄를 짓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목회자의 설교 인용을 표절로 판단하여 비판하는 사람들은 목회자가 열심히 설교 준비하지 않고 남이 해 놓은 설교를 베낀다고 생각하여 비판할 수도 있다. 물론 목회자가 나태하여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지탄받을 만하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 목회자 자신이 부족하여 성경해석이나 설명이 어려울 때 설명을 잘해 놓은 다른 설교를 인용하는 것은 무방한 것이다.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인용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여러 목회자들의 좋은 설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은 노력이 수반된다.
오히려 내 방식대로 설교하면 더 편하고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설교자의 복음 설명 미흡으로 성도들이 은혜를 덜 받게 되는 것보다, 더 잘된 설명을 인용하여 성도들에게 많은 은혜를 끼칠 수 있다면 이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다.

만일 설교에서 표절을 피하려고 성경의 본 뜻을 각기 틀리게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비성경적이고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개 표절시비를 피하려고 여러 예화들을 인용하거나 세상의 것들로 진리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비복음적인 설교로 전락된다.

간혹 한국교회 내에는 설교 표절 시비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게 되는 목회자들을 종종 목격한다. 특히, 교회 내 분쟁이 생기게 되거나,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소위 추수꾼으로 위장해 들어와서 담임 목사의 단점을 트집 잡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설교 표절 시비이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설교 표절 문제에 대하여 신앙적, 성경적 바른 조명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다른 목회자의 설교 인용을 표절로 판단하여 죄악시 하는 비판들은 많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필자의 본고는 비판의 공격도 받겠지만, 설교표절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의 글은 설교표절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 측면으로 처음 공론화하는 글인 것 같다. 본고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으면 제기해 주기를 바란다. 또는 건전한 지면 논쟁이나 토론도 환영한다.

지면상 더 충분한 설명을 드리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아무쪼록 본고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다시한번 설교 표절 시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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