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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덕 목사)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자" - 사)한국신문방송협회 송년감사 예배시 설교말씀
  • 기사등록 2019-12-13 13: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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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덕 목사] 사)한국신문방송협회 상임회장. 기독교방송(cbntv.tv) 방송위원장.
유영덕 목사.



2019년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한 해, 격동의 한해를 보내면서,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이 한편의 찬미시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엡1:3-14)은 매절마다 '그리스도 안에서'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신 분이기에 천하만민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만민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영광을 찬송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결코 명예, 부귀, 건강 등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것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 구원, 죄사함, 영생 등 신령한 복이요, 영원한 복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인, 조그만한 일부의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할 이유와

감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난과 환란과 역경의 이유를 알고, 그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역설적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이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박국 선자자의 감사요, 바울 사도의 감사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선지자의 무엇이, 모든것이 없을지라도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사도가 산 소망이 끊어진 위기 상황 속에서도 감사 드릴 수 있었던 그것이 바로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복, 신령한 복, 구원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라고 고난에서 제외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가 언제나 물질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받은 복은 어떤 경우라고 빼앗거나, 포기되거나, 살아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령한 복, 생명의 복, 구원의 복입니다.

신령한 복이란 하늘에 속한 영적인 축복입니다. 이 복은 인위적이거나 일시적인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신 은혜로운 축복이며 영생을 약속한 복입니다.



2019년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우리 주변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등으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고 깊은 절망감에 빠진 분들이 있고 우리들에게도 때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합니다. 오늘 복음 중에 복음인 에베소서 1장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할 이유, 감사를 드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은 기복적인 복을 받을 때, 노래가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 말씀하고 있는 복, 노래, 감사,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차원을 초월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현실적입니다. 기복적입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은 현실을 초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복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업되는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찬송과 감사 드릴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는 찬송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진정한 노래가 있습니다. 이미 경험하였듯이 세상 노래는 부를수록 허무합니다. 세상 노래는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기보다 더욱 어둡게 만듭니다. 세상 노래는 인간을 갈망하고 인간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세상 노래를 부를수록 자기 연민에 빠지고, 서글퍼지고, 허무해 집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감격하여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영혼이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영적 새 힘을 얻고 활력을 얻게 됩니다.



세상 노래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서 우리 나오는 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고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줄 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삼위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우리의 영혼에 안식과 만족과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바로 우리 영혼의 노래이며 우리의 심령을 채우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찬양은 기억행위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 다만 두렵고 떨림으로 불러야할 그분의 거룩한 이름과 하나님이 자격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은택"을 기억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오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을 향하신 놀라운 사역과 놀라운 계획을 바라 볼 때, 찬송이 나오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찬양의 핵심은 우리를 창조한 목적이고 우리에게 이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신령한 복을 생각할 때, 우리가 기뻐하고 감격하고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신령한 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복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전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계획과 구원 계획에서 우리를 우주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과 계획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나니” 에서와 야곱 중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시듯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과 상태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자의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조건을 따진다면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흠없게 만드시려고 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본성대로 버려둔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인생, 욕된 인생, 허무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에서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그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으로 비참하게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지 않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만약 주님의 선택받지 못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이 얼마 추악하고 더럽고 허무하게 살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거져 주신 은혜, 그 택함을 받은 영광을 찬송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광 그 축복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찬송을 돌릴 뿐입니다. 그저 감사하고 그저 찬양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2019년 한 해를 뒤돌아 보내면서, 감사드릴 진정한 이유는 나같은 죄인이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녀로 삼으신 주님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협회 모든 회원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구원의 복을 감사하며 찬양하여야합니다. 선택의 복은 성부 하나님 아버지로(3-6절) 우리게 주신 복을 말합니다. 구속의 복은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7-12절) 말미암아 얻는 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풍성한 은혜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풍성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죄 사함 곧 구속의 은혜입니다. 구속은 값을 대신 지불하고 샀다는 의미입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자를 그 몸값을 지불하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노예 시장과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마치 노예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구속을 받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종은 시키는 대로 하는 자입니다. 종은 자신의 인격이나 자신의 자율권이 없는 자입니다. 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자는 사탄 마귀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둠의 영, 죄악의 영, 사탄의 지배를 받아 살았습니다 종이었습니다. 죄의 지배를 받고 살았습니다. 죄 속에, 영적 인신 매매단 사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결국 사망밖에 없습니다. 그 죄의 종으로부터 구속 곧 자유와 해방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 노릇하고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게 하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은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인간이 고안해 낸 최고의 고통스런 죽음입니다. 가장 치욕스런 죽음입니다. 가장 저주스런 죽음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예수님께서 외치실 만큼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끌려갔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과 질고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죄의 삯인 사망과 저주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은혜를 깊이 묵상하노라면, 나의 죄악된 모습, 나의 교만하고 나의 더럽고 나의 추악한 모습은 점점 드러나게 되고 나의 끔찍한 죄악이 들러 날수록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더욱 영롱하게 빛이 나고 그 주님의 보배로운 피가 얼마가 고귀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보배 피로 나의 지난 날 삶을 씻으시고 나의 흉악한 모습을 덮으시고 나의 죄악된 모습을 감추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감격은 현세적 복, 잠시 눈에 보이는 복, 이생의 자랑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이요, 감사요, 감격입니다.



셋째, 인침의 복을 주셨기에 감사하며 찬양하여야 합니다. “인침을 받았다”(1:13)는 것은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보호를 뜻합니다.



인침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인침은 곧 구원받았다. 죄용서 받았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바로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약속의 성령의 인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우리는 모두 성령 하나님의 도장의 찍힘을 받은 자입니다. 놀라운 특권이요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육신의 덩어리로 계산한다면 우리는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우리 가운데 주님께서 거하시고 성령의 거하시는 성전이 된 놀라운 존재 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업, 유업에 대한 보증이 되십니다. 기업이란 제비를 뽑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제비를 뽑아 기업을 분배 받아 그 기업으로 얻은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기업은 물질의 소유를 뜻으로, 소유, 소유지, 유업 등으로 구약초기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토지와 이에 부속된 가축, 노비등을 의미했는데(시105:11), 그후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기를 거치면서 영적인 의미가 강화되어, 이스라엘 기업은 하나님이라는 사상이 강조 되었습니다(시 73:36).



이런 사상은 신약으로 이어져 기업은 하나님 나라와 이에 부속된 복들을 가르킵니다. (마25:34, 갈 5:21). 이기업은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이(히 11:8, 밷전 1:4, 18)현재와 장래에 영원토록 누리게 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롬 8:17, 23, 고전 15:50) 따라서 기업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땅의 의미가 아닙니다.



기업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도록 보장된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은 자신들의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도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모두 빼앗기도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기업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기업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령으로 인을 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긍극적 구원의 보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중생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케 하시고



우리를 성화시켜 나가시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우리가 죄악을 고백하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가게 하시고 우리가 누릴 기업을 보증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십니다. 보증이라는 모든 대금을 지불하셨다는 뜻입니다.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안정성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1월 마지막날에 2020년 새해를 한 달 앞두고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그 은혜를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표현해 봅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도라면 누구나 예외 없는 가장 큰 감사와 찬송의 제목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자녀로 선택된 복입니다.

둘째, 죄사함 구속을 받은 구원의 복입니다.

셋째. 약속의 성령의 인치심으로 기업의 보증을 얻은 복입니다.



길게는 지나 온 우리 각자자신의 생애, 짧게는 2019년 한 해를 돌아보시며, 내 인생의 구속사를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 잃어 버렸지만 그 가운데 나에게 복음이 있고,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감사 중 감사입니다.



다 깨어진 유리컵을 들고 땅의 물은 마실 수 없지만 내 갈한 영혼을 적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내 영혼의 반석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이 땅에서 삶은 육은 죽고 영은 사는 삶 , 나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그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 속에 산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회복된 자요, 감사와 감격의 천상의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2019년 늦은 내 인생의 시간이지만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수없이 헤아릴 수 없는 만가지 복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이 은혜 받은 우리들은 오직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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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2-13 13: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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