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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낮아짐이 축복이다 - 모든 갈등과 분쟁의 원인은 모두가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 기사등록 2019-06-25 23: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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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세상은 어디를 가나 온통 갈등과 분쟁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의 소식이 들리고, 세계가 긴장 가운데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보아도 여전히 남북의 긴장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의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념의 대립으로 갈등의 골이 깊다. 가정들은 어떤가? 이혼율,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교회들은 어떤가? 갈등과 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모두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만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이다. 모든 죄의 출발점이 교만이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의 실패는 교만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교만을 조장하여, 스스로 높아지게 하려고 힘쓴다.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갈등이 일어났는가? 틀림없이 마음이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낮추고 내가 낮아지면 신기하게도 내 안의 갈등이 사라진다.



얼마나 낮아져야 하는가?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처럼 낮아지면 된다. 빌2:8-11절을 보라.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셨더니 죽기까지 복종하셨더니 하나님께서 높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높이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이셨다는 것이다. 얼마나 지극히 높이셨는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다.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앞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여기에 신앙의 위대한 역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저마다 높아지려는 출세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높아지려고 한다.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래서 분열과 다툼과 미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달라야 한다. 어디를 가나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그러면 그곳에 언제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초대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교회도 작았고 교인수도 적었다. 그렇지만 초대 한국교회는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있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웃을 끌어안고 열심히 섬겼다. 그 섬김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들의 거룩한 섬김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교회는 많이 커졌다. 교인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힘을 잃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섬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서로가 높아지기 위해서 아웅거리며 싸우고 있고, 편한 자리, 존귀한 자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가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는가? 좋지 못한 교회의 모습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상은 더 이상 교회와 교인들에게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웃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해 특권을 포기해 본적 있는가? 자신을 위한 씀씀이를 줄이고 나눔을 실천해 본적 있는가?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 본적 있는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믿음의 공동체는 절대로 아름답게 세워질 수 없다. 특권을 누리기에 급급한 사람들을 통해 믿음의 공동체는 절대로 건강하게 세워질 수 없다. 희생하지 않고,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내 삶을 보고, 이웃들이 절대로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낮아지면 내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낮아지면 사람들이 나를 더 무시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아니다. 마음 놓고 낮아지라. 하나님께서 낮추신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다. 높이고 낮추시는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가 낮아지는 순간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게 세워질 것이다.



유명한 에딘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은 마취제를 발명해서 온 인류와 의학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분이다. 이 분에게 한 제자가 질문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심프슨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네" 이 겸손이 심프슨을 위대하게 했다. '나는 잘났다. 나는 잘 한다. 나는 능력 있다. 나는 의롭다' 여기에서 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나는 죄인이다'라고 생각하고 십자가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뒤에는 어떻게 했는가? 자랑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을 주를 위해서 배설물처럼 여겼다. 주를 위해서 기꺼이 낮아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노예가 되었다. 그런 그를 주께서 높여주셨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아주셨다. 하늘 나라의 대사로 삼아주셨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교만하면 스트레스도 열 배나 더 받는다고 한다. 교만하면 병도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배운 척하고, 잘난 척하고, 있는 척하고, 아는 척하면, 이 세상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모든 인간은 교만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 예외가 없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낮아져야 한다. 목사도 낮아져야 하고, 성도도 낮아져야 하고, 젊었을때도 낮아져야 하고, 나이들어서도 낮아져야 한다. 낮아지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낮아짐이 축복이다. 낮아짐을 실천함으로 삶에 모든 갈등과 다툼이 사라지고, 높여주시는 축복 누리며 살자.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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