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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 행동으로 응답했다 - 일본군위안부 문제 세상에 드러낸 한국교회여성연합회
  • 기사등록 2018-08-12 21: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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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9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 집회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와 예일여고 역사동아리 아이비가 함께 진행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매주 수요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정기 수요시위가 진행된다. 1992년 1월 8일 첫 시위 이래로 참석자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 이행,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장기를 기록한 수요시위는 세계 여성의 인권 및 평화, 반전 운동으로 확산됐다. 매춘관광 반대운동을 전개하며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세상에 드러내고 여성인권 문제로 연결시킨 주역엔 기독여성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 사명이라 여겼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사명감 가져



진보적 여성단체가 없던 67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교여연·회장 민경자)가 창립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등 8개 교단 여성과 지역 및 해외교회 여성 등이 회원이다. 한교여연은 세계교회 여성과 연대해 인권과 여성, 평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한교여연은 65년 한일협정으로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일본인들이 매춘관광을 통해 한국 여성을 유린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매춘관광 반대운동을 전개한 한교여연은 매춘관광의 뿌리가 일본군위안부를 차출한 일제의 제국주의적 수탈에 있다고 진단했다. 87년 12월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회 공동대표였던 이효재 선생은 윤영애 전 한교여연 총무에게 이 문제를 본격 다뤄보자고 제안했다. 윤 전 총무는 85∼93년 한교여연 총무로 활동했고 지금은 러시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홀로 연구했던 이 공동대표의 친구인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규명해야 하고 이것이 여성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한교여연은 88년 2월 실행위원회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확인을 위한 일본 답사여행에 김혜원 전 실행위원과 김신실 전 교회와사회위원을 대표로 선정하고, 윤 교수를 교회와사회위원으로 위촉했다. 세 명의 위원은 2월 12∼21일 일본 오키나와, 오사카, 삿포로, 도쿄 등에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았다.



증언은 곳곳에서 나왔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채록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한스러웠는지 알 수 있었다. 윤 교수는 답사에서 돌아온 두 달 뒤 제주에서 열린 ‘여성과 관광문화 국제세미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윤 전 총무는 당시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모든 참석자들의 충격과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성적 노예로 강제 연행된 부녀자들, 현재 매춘관광으로 인해 성적 노리개로 당하는 여성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는 자책감 때문에 더 괴로웠다. 그중 일본 대표 아이코 가터(일본기독교여성위원)의 대성통곡하는 소리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의 절규로 들렸다.”(책 ‘한국교회여성연합회 50주년 하이라이트-씨가 자라 나무가 되듯이’ 중에서)



일본교회 여성들까지 포함된 120여명의 참가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매춘관광 반대운동과 함께 다루기로 했다. 한교여연은 88년 5월 16일 지속적인 정신대 문제 대책활동을 위해 교사위원회 산하에 ‘정신대 문제 연구위원회’를 설치하고 자료 수집과 추모비 제작 등을 추진했다.



‘여리고성 함락’에 착안한 퍼포먼스 진행



한교여연은 이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일 정부에 정신대 문제에 관심 가질 것을 촉구했다. 90년 6월 제118회 일본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모토오카 쇼지 참의원 의원이 일본 정부에 “일본이 한국에 조선인 강제 징용자 명단을 보낸다는데 위안부도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 정부는 정신대는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며 이에 대한 진상조사는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여성 단체들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교여연 정신대 문제 연구위원회는 그해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37개 여성 단체의 이름으로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망언에 유감을 표하고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연행 인정 및 사죄, 위령비 제작, 바른 역사교육 등 여섯 가지 항목을 요구했다. 11월 16일 37개 단체가 모여 ‘정의기억연대’를 정식으로 결성했다.



92년 1월 8일 정의기억연대의 첫 번째 수요시위는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을 구호로 외치면서 시작됐다. 윤 전 총무는 일본대사관 주위를 도는 퍼포먼스를 제안했다. 이스라엘인들이 여리고성을 함락하기 위해 성 주위를 돌았다는 구약성서의 내용에 착안해 일본의 오만과 거짓이 무너지길 기대하는 행위였다. 대사관 주변 돌기 퍼포먼스는 연로하신 할머니들에게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지금은 하지 않지만 정의기억연대 활동에 한교여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교여연은 정의기억연대의 탄생에 많은 기여를 했고, 이후엔 정의기억연대와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 활동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의 초기 10년 활동엔 한교여연 회장이 공동대표 중 1인으로 파송됐다.



한교여연 실행위원으로 활동한 김혜원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실행위원은 “한교여연은 재정과 조직력 등이 열악했지만 하나님의 창조물이 전쟁에서 희생된 성폭력 문제에 적극 뛰어들었다”며 “기독 여성들이 에큐메니컬 정신으로 가정과 교회 등 자기 울타리를 뛰어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진행했다. 이런 연결고리를 통해 다음세대에 민족의식과 여성 인권, 평화 문제를 교육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활동한 윤 교수와 이 선생, 한교여연 등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여성운동으로 체계화했고 한국사회를 변화시켰다”면서 “이들의 공통점은 기독여성이지만 종교를 뛰어넘어 동시대 여성으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활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윤 전 총무 등이 펼친 한교여연의 활동은 이 땅에 차별받고 역사의 상처를 가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기독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응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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