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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곤 원로목사

원로목사로 추대되어 몸과 마음을 주님의 은혜로 휴식을 누리는 시간이 40여일이 되었습니다. 또한, 후임으로 오신 한은택 목사님의 목회 열정을 바라보면서 푸른 꿈을 꾸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감사한 시간 속 읽게 된 글 하나를 성도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려시대 의종(고려 18대, 1146년~1170년)왕이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길을 잘못 잡아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룻밤을 묵어가자고 청을 했지만 집주인 이규보(李奎報)는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거절하며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 대문(大門)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어서 내 인생의 한이다.



도대체 개구리가 없어서 한이다.



개구리가 무엇일까?



한나라의 임금으로써 얼마만큼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것을 여러모로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어가 국밥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면서 주모에게 이규보의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모는 이규보에 대해 과거(科擧)에 나가면 낙방(落榜)하고 이젠 마을에도 내려오지 않고 집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임금은 다시 그 이규보의 집에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끝내는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주인 이규보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오지 않고 해서 면담(面談)을 신청(申請)했다. 그리고 그렇게도 궁금했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듣게 되었다.





옛날에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르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꾀꼬리에게 까마귀가 찾아와서 내기를 하자고 청해왔다. 3일 후에 백로(白鷺)를 심판관으로 하여 노래 시합을 하자는 것이었다. 꾀꼬리는 ‘까마귀는 노래는커녕 목소리 자체도 듣기 거북한데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안하다니…’라고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거절하면 까마귀가 무슨 헛소문을 퍼트릴까 걱정되어 시합(試合)을 응(應)했다. 그리고 3일 동안 꾀꼬리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 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연습은 하지 않고, 자루 하나를 들고 나가서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에게 매일 갖다 주며 뇌물공세를 펴며 뒤를 부탁한 것이다. 약속한 3일이 된 후,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 한 곡씩을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고운 목소리로 연습할 때보다 더 잘한 것 같아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관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 시합에서 까마귀한테 패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서야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매일 잡아다주고 선심을 산 후 뒷배를 봐달라고 부탁한 까마귀의 작전 때문에 자신이 패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꾀꼬리는 크게 낙심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내 인생의 한이다”라는 글을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 시대가 불법(不法)으로 뇌물을 주고 선심을 살려하는 자는 과거에 급제하고, 청렴하게 살려는 자는 불이익을 당하고 사는 것을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 개구리와·이로울이·백로로)란 말이 생겼다.



이규보(李奎報)는 자신이 생각해도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서도 부족하지 않은데, 과거시험만 보면 꼭 낙방(落榜)하였다. 자신은 노래를 잘 부르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못하여 과거에 번번이 낙방(落榜)하고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의 품격(品格)이나 지식의 고상(高尙)함을 인지하고 자신(自身)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全國)을 떠도는 떠돌이 신세인데, 며칠 뒤에 임시과거(臨時科擧)가 있다기에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니 같이 가서 마지막 시험 한 번 보자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임금은 즉시 궁궐(宮闕)에 들어와 임시과거를 명(命)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과거시험이 열린 날, 이규보(李奎報)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시험관이 내놓은 시제(詩題)는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여덟 글자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고심하고 있을 때 이규보는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하여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냄으로써 과거시험에 응시한지 4수만에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게 되었다.



오늘 날의 목회 현장에서도 까마귀의 도전이 있습니다. 개구리를 잡아다가 선심을 쓰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 후에는 자기의 뜻대로 교회를 마음대로 휘젓고 그것을 제재하면 뒷말을 퍼트려 난처하게 만들고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하는 까마귀가 있음을 기억하며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좋은 사람을 얻기 위해 한 나라의 왕인 의종이 이틀 밤을 쉽지 않은 인내와 노력으로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 역시 교회의 일꾼을 찾아낼 때, 하나님의 일에 반응하는 사람을 찾을 때 교훈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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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6-04 01: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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