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변두리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변화 -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 기사등록 2018-01-23 12:11:50
기사수정
정재영 교수한국교회의 모습



또 다시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새로운 시간들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된다.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충실하고 헌신하는 모습으로 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서 연말이 되면 올해도 역시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기 일쑤다. 이것은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의지가 약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세우는 계획이 대부분 아주 거창하거나 또는 아주 막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한해는 종교개혁 5백 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계획을 세웠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더 철저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마감되었다.



재작년 말에 발표된 인구센서스 결과에서 개신교가 신도 수 면에서 우리나라 1위 종교에 등극하여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지난 1년 간 교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1위 종교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급기야 연말에 있었던 한 대형교회의 세습 소식은 성탄절에조차 기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밑 교계 분위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종교개혁 5백 주년에 한국교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자괴적인 평가도 잇달았다.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변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올해는 보다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면 좋겠다. 막연하게 개혁이나 개선이라고 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개혁되어야 하고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정하는 새해 표어도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말씀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는 기도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힘쓸 수 있는 방법, 말씀을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웃 사랑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강구하고 1년 동안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세심한 계획을 짜면 좋을 것이다.



새해에 품어보는 소망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보다 공동체적인 모습을 회복하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개교회들이 스스로 공동체라고 강조하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개교회 수준을 벗어나서 보면 다른 교회들은 형제 교회, 가족 교회가 아니라 경쟁 상대가 되어 버린다. 어떠한 중앙집권적인 권력에도 의지하지 않고 각 교회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종교개혁의 전통은 개교회의 이기주의로 왜곡되어 버렸다. 다른 교회는 어떻게 되든 우리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인식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공동체라는 말은 개교회 안에서만 통용될 뿐 전체 한국 교회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른 종교 단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교회들이 있다. 교구제로 되어 있는 성당은 물론이고 전국의 사찰 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 교회들이 연합하고 협력을 한다면 이전 역사에서 한국 교회가 감당하였던 큰 일들을 행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개신교는 구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회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매우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교회들마다 서로 경쟁하며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교회의 성장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



사회학에서는 개인의 합리성이 집단의 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행위가 전체 집단에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재난 상황에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안전부터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무질서로 인해 결국 전체 집단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계에서도 각 교회들이 개교회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움직이게 되면 전체 한국교회는 지금보다도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들은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웃 교회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신학에서 말하는 공교회성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변화는 주변부에서



사회 운동의 측면에서 볼 때, 변혁의 움직임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회 구성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인 변방에서 일어나기 쉽다.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심부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에 둔감하고 문제의식도 약하기 때문에 변혁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교회를 갱신하기 위한 대안의 가능성은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교계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에게 있다. 제도권에서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제도권 밖의 움직임이 더 거세질 것이고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주도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은 곳에서부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 중세의 사막 교부나 수도원 운동과 같이 교권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갔던 것처럼 한국 교계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불확실한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요즘과 같은 탈현대적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중심부의 거창한 사명 선언이나 전략적 기획보다는 주변 지역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일어나는 실제적인 변화에 주목하면서 지도자와 구성원이 함께 자기들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해가는 ‘아래로부터’(bottom up)의 운동이 적실성을 가질 것이다. 풀뿌리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들만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한국교회의 개혁 주체로 서야 한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협력하고 연합해야 한다. 새해에는 이렇게 변두리의 밑뿌리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한국 교회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8-01-23 12:11:50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2024년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
하루 동안 이 창을 다시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