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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민 칼럼) 설교는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편집국|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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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영민(서현교회 목사) 

헤르만 바빙크의 설교론

서론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칭송받는 헤르만 바빙크(1854-1921)의 설교론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설교자들에게 큰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지금도 필자는 책을 덮고 그의 ‘웅변술’과 ‘설교와 예배’를 재독한 후 글을 쓰려고 앉았지만, 더 깊은 감동을 담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설교와 설교자에 대한 그의 글은 훌륭한 교과서이다. 그에게서 더 풍성하고 방대한 설교론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빙크를 그의 대작 <개혁교의학> 때문에 조직신학자로 인식하여, 설교와 무관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것이 설교의 선포와 설교의 명료함을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바빙크는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전달할 준비가 충분히 되었던 것이다.

실제 바빙크는 26세에 첫 설교를 하였고 그 이후 42년 동안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원고 없이 설교하는 그의 특징 때문에 현존하는 설교 원고는 단 하나만 있을 뿐이고(이 책은 그 원고를 포함하고 있다) 그 외에 설교와 관련된 글들을 집중적으로 저술하지 않아 그의 설교론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저자 제임스 에글린턴은 ‘바빙크 전기’와 그의 ‘웅변술’과 그의 ‘유일한 설교’, ‘설교와 예배’, 그리고 ‘미국의 설교에 관하여’라는 글을 묶어 『Herman Bavinck on Preaching & Preacher』로 출판하였고, 이것을 역자 신호섭 목사는 <헤르만 바빙크의 설교론>으로 번역하였다.

위대한 신학자이자 권위자로부터 듣는 설교와 설교자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필자의 설교와 설교자로서 모습을 돌아본다. 역자는 번역하는 내내 머리는 냉철해지고 가슴은 뜨거워졌다고 하는데, 필자 또한 그러한 감격과 감동이 있었다.

필자는 해마다 설교자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한두 권씩 꼭 설교에 대한 책을 읽는데, 바빙크의 책은 식어진 가슴을 뜨겁게 하고 혼탁해지는 이성을 선명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설교에 대한 책을 꼽으라면,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와 설교자>, 존 스토트의 <설교>, 그리고 김남준 목사의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김영봉 목사의 <설교자의 일주일>을 꼽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책들이 말하는 중요한 특징인 설교와 언어와 본질과 형식과 설교자에 대한 것이 이 작은 책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바빙크가 가진 설교와 신학을 뒤에 책들이 녹여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교의 생명

개인적으로 바빙크의 웅변술과 설교자에 대한 것을 보며, 김남준 목사와 연결되는 점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특징은 설교자는 가슴에 담긴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인데, 아는 만큼 말하고 경험한 만큼 전달하는 것이 설교자의 한계이다.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아첨하는 많은 강단꾼들이 있고 다양한 수사들이 거짓된 것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진리인데, 이 진리가 설교자의 가슴에 가득해야 한다.

설교자는 진리로 변화된 사람이고 진리를 전하는 자이며 진리를 지키는 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것을 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을 풍성하게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신학이라는 단어도 하나님에 대한 것을 말한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경험한 자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설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의 설교자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고 하나님의 지식을 사모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픽사베이 

말하기 위해서 사는 자가 있고,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자가 있다. 설교자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속한다. 전자는 밥벌이고 직업이고 의무와 형식이라면, 후자는 본질과 사명이고 소명이다.

마음에 감동된 것을 전해야 하고 내가 받아 깨닫고 변화되고 변화되길 원하는 것을 선포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가슴에 사무치는 것을 전하기 위한 불붙는 마음이 있었고, 아모스는 사자처럼 선포했고, 에스겔은 목숨의 위협마저 느꼈고, 바울은 생명을 걸고 전했다.

이렇듯 설교자는 자신에게 먼저 충격과 변화를 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소위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내가 누구이고 어떤 설교자인지 보여주는 것인데, 공허한 채로 전하는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감동없이 전하는 전달자도 되어서는 안 된다.

언어는 정신과 사상과 마음의 거울인데, 우리의 언어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설교자라면 내 언어가 무엇을 말하고 지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내 속에 무엇이 역사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의 타락

그리고 바빙크의 설교론을 보며, 로이드 존스가 언급했던 시대의 특징과 설교의 몰락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 다 시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을 원하는데, 교회 또한 그러한 세속의 물결을 받아들여 설교가 무능력해졌고 현대성을 띠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설교는 성도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세워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영혼의 각성을 일으키는 것이다. 루터의 표현대로, 영혼의 확성기로 사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이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설교가 허약해졌고, 30분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지루한 시간으로 전락했다. 어디서부터 설교의 능력을 상실하고 설교의 감화가 사라졌는지 정직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시대의 문화와 변화를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시대의 문화와 변화를 분별하고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설교인데, 설교의 위치가 역전되었다.

우리의 시대 또한 설교를 기대하지 않고 간절히 갈망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예배시간을 아까워하고 그 시간에 자기가 필요한 것을 따라 움직인다.

교인들도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설교자를 향한 존중과 감사도 사라졌다. 이러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설교자에게 있을 것이다.

설교의 권위와 영광과 설교자로서의 부여된 막중한 사명을 생각한다면, 다른 것으로 교회를 채우고 이끌기보다 설교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야 하는데, 그런 본질은 사라지고 비본질로 교회를 채우고 있다.

설교의 몰락은 강단의 몰락이고 교회의 몰락이다. 하나님은 설교라는 도구로 교회를 세우고 이끌어가길 원하시는데 다른 도구들로 교회를 섬기려는 생각은 교만이고 직무유기다. 강단이 우스워지고 경박해지며 선동하고 도덕윤리 수준으로 떨어지면, 교회는 질식하고 성도는 생명력을 잃으며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진다.

설교가 시대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설교가 시대의 눈높이를 조정해 주어야 한다. 인간이 전하고 싶은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고 싶은 설교가 되어야 하고, 인간이 듣기 원하는 설교가 아니라 인간이 들어야 할 설교가 되어야 한다.

▲ 헤르만 바빙크. 

성경을 설교하라

바빙크의 설교론을 읽으며, 존 스토트가 주장하는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주제와 연결되는 점을 보았다. 두 사람 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삼위 하나님의 계시이며 구속의 드라마라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보화가 담겨 있어 성도를 부요하게 하는 이 성경으로 설교하여 성경이 설교하게 해야한다.

성경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설교자는 성경으로 자신이 꿈꾸는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꿈꾸고 지향하는 교회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교회를 성경을 찾아 전하는 것은 성경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고, 내가 주권자와 주도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의 지배를 받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한 사람의 생각의 지배와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대교회는 점검해야 한다.

성도 또한 성경을 통하여 인생 성공 방법과 처세술과 대인관계와 인생상담을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성도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고, 성경이 말하는 바를 듣기 원한다.

성경은 우리의 욕망하는 바를 다 이루게 해주고 우리 외형의 변화를 주는 나의 비결이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비밀로서 나의 욕망을 제어하고, 나의 내면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성경이 비결이 아니라 비밀이라는 것은 성경에 다가가는 설교자의 접근을 다르게 한다.

오늘날 설교자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지런히 연구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담아내고 있는가? 교회는 성경에 절대적인 우위를 두고 모든 사역을 성경의 가치관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가?

성경을 보면 삼위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이 찬란하게 빛나는데, 우리의 설교는 그러한 성경의 사상을 따라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만 말하고 성경이 보여주는 것만 보여주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설교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자의 인격

바빙크의 설교론을 보며, 김영봉 목사에게 강조되었던 인격의 변화와 인격 형성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 다 설교자는 설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교하는 자가 온전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한다.

실제 설교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우고 연습하고 훈련하여 감당할 수 있다. 학습된 무당이 있는 것처럼, 이 또한 학습하여 훌륭한 설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떤 내용을 말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말하느냐는 더 교회의 생명과 설교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않고도 설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비밀이 아니라 세상의 비결을 선포할 수 있다.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섰다는 것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는 보장이 되지 않는다. 종교 사기꾼과 거짓 교사들은 자신이 강단에만 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님이 역사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설교자는 강단의 무게와 영광으로 인해, 혹시 자신 때문에 말씀이 막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봐 두려움으로 강단을 섬긴다.

설교자의 인격은 강단과 교회와 집과 이웃과 사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야 한다. 강단에 설 때와 강단 밖에서의 모습이 일치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기에, 설교자의 인격은 변함없이 그리스도에게 붙들려 있어야 한다.

설교 사역은 인간의 지식과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의 인격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듬어져야 한다.

설교자의 인격은 하나님 말씀을 받드는 그릇이다. 맛있는 밥과 음식이 있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 더럽고 오염되어 있다면 그것을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교자라는 것만으로 하나님 말씀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인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것이다.

오늘날 설교자의 인격이 어떠한지 점검해 본다. 나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 설교 행위를 하는지 설교 사역을 하는지 질문해 본다.

결론

설교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과 깊은 만남과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닌 자만이 할 수 있다.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고 다듬어 가시는 사람이다.

강단에 서는 것이 매력적이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위대해 보여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하나님의 노크와 소명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질 때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교회가 존재만으로도 존경을 받고 가치 있었던 시대는 설교의 영광과 권위가 살아있던 시대이다. 말씀과 설교 사역에 헌신하는 설교자를 통해 말씀을 사모하는 순전한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다.

설교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가득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따라가기를 결단하게 했으며,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했다.

오늘 우리의 설교는 어떠한가? 설교자가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 경영을 잘하고 예배 및 행사 사회를 잘 보고 조직의 시스템을 잘 구축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잘 기획하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획기적인 사업을 잘해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는 말씀과 설교에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께 받은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교회의 생기를 공급하고 교회의 불을 밝힐 때 설교자는 존경과 감사를 받게 된다.

이 시대에 인정과 존경받는 설교자는 누구인가? 교회에 대한 분명한 목회철학과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그리스도께 교회를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려 설교에 헌신된 자가 인정받는 자이다.

설교자부터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제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가슴에 사무치는 진리와 내가 믿고 있는 바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설교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이 위대한 사역에 날마다 회개하며 자신을 헌신하는 자들이 일어나길,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를 소망한다.

▲ 헤르만 바빙크의 설교론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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