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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본회퍼, 오해와 편견

- 디즈니-마블의 속 인식론과 본회퍼의 기독교 철학

편집국|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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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다비전>, 자신의 주관적, 자의적, 구성적 인식 체계에
갇혀버린 인간 삶의 방식에 대한 슈퍼히어로판 알레고리
자기만족 위해 타자 조종, 기이한 죄악된 행태 집중 조명
▲ 디즈니-마블의 TV 시리즈 <완다비전>. 

◈신학과 인식: <완다비전> 속의 자의적 인식 고발

OTT 서비스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후발주자로 서비스를 개시한 디즈니플러스의 TV 시리즈 <완다비전>이 미국 현지를 비롯, 디즈니플러스 콘텐츠가 시청 가능한 여러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디즈니플러스가 정식으로 서비스되고 있지 않기에, 이런저런 우회경로를 통해 시청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듯하다.

<완다비전>은 2019년 개봉된 마블의 흥행작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어벤져스의 일원이었던 스칼렛 위치 완다(엘리자베스 올슨 분)와 안드로이드 비전(폴 베타니 분)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시리즈의 설정 전반은 조작된 현실에 관한 영화 <트루먼 쇼>(1998)와 TV 속에 펼쳐지는 가상현실에 관한 영화 <13층>(1999), 그리고 인간의 정신 조작 및 세뇌에 관한 영화 <인셉션>(2010)을 적절히 뒤섞은 모양새를 보인다.

염동력과 정신조작 능력을 갖고 있는 완다는 엔드게임에서 타노스 세력의 전멸 이후 자신이 사랑했지만 타노스에게 죽어버린 안드로이드 비전의 시체를 탈취하고, 웨스트뷰라는 마을 사람들을 염동력과 정신조작으로 점령한다.

이미 죽은 비전마저 염동력과 세뇌로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완다는 스스로의 정신마저 조작하면서 비전과 함께 마을 일원으로서 자신이 꿈꾸던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곳곳에서 완다의 정신조작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런 일을 행하고 있는 완다조차 스스로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행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는지 모른 채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고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 실은 실재가 아니라 가상이자 허구라는 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사상사 가운데 여러 모양새로 존재해 왔다.

서구에서는 이데아의 세계와 물질적 세계를 철저히 구분하는 플라톤주의가 대표적이고, 동양에서는 무한하고 근원적 실재인 공(空)의 영역과 만상(萬象)이 끊임없이 생멸하는 색(色)의 영역을 구별하는 불교사상이 대표적이다.

서양의 경우에는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을 허상으로, 예지적이고 관념적인 형상을 실재로 보는 인식이 근대 계몽주의, 특히 칸트를 통해 역전되기 시작했다.

칸트는 관념으로든 이성 판단으로든 실재 자체를 인간이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간의 인식이란 각자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표상들의 종합체, 즉 구성적 판단의 산물이라고 단언했다.

이로써 칸트는 의식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 자체와 상당한 정도로 별리되어 있는 인간이 어떻게든 실재적인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마음 속에 자의적으로 구성한 인식 대상들의 세계가 인간이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는 세계의 전부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사고를 서양사상사에서는 선험론적 주관주의라고 부른다.

칸트의 인간 인식 비판은 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의 적정 한계를 보여주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훗날 본회퍼는 칸트의 업적이 인간 지성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나님의 계시의 절대적 필요성을 수긍하는 기독교적 계시론에 이바지할 요소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하였다.

본회퍼가 인간 죄성의 다양한 양상 중 가장 크게 경계한 것이 인간 의식의 자의적 대상화 및 판단에 기반한 인식이었는데, 이를 비판하는 데 칸트적 인간의 한계 반성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 초능력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과 세계를 창조해낸 완다. 

◈신학과 계시: 계시 가운데서만 찾을 수 있는 진리

<완다비전>의 주인공 완다의 이야기 전체는 자신의 주관적, 자의적, 구성적 인식 체계 가운데 갇혀버린 뭇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슈퍼히어로판 알레고리이다.

칸트가 비판한 인간 의식의 주관성은 그 한계를 중점적으로 주목하고 유념하는 경우 실재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알려줌으로써 인간 의식을 초월해 있는 것, 즉 하나님의 계시 행위로부터 오는 가르침을 겸손하게 수용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인간 의식의 주관성은 그 한계를 유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성해낸 인식 내용에 집착하고 안주해버리는 경우 실재를 아예 배제하고 인간 의식이 구성한 대상들의 세계 자체를 부당하게 실재로 취급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본회퍼는 실제 서양사상사 가운데, 칸트의 통찰이 긍정적 계기보다는 부정적 계기로 작동함으로써 인간 의식 혹은 정신이 구성해낸 대상들을 실재와 동일시하는 데 이르는 독일관념론과 신칸트주의의 탄생을 촉진했다고 진단한다.

<완다비전>에 펼쳐진 완다의 조작된 세계는 그녀의 욕망을 낱낱이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타노스에 의해 죽어버린 연인 비전, 그리고 울트론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오빠 퀵실버 피에트로가 살아서 완다와 함께하고, 완다에 의해 정신이 조작되고 지배된 이들이 완다와 비전의 행복한 삶의 배경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이들의 행복한 삶의 장면은 TV 주파수로 송출되어 시트콤 형식으로 방영되는데, 이는 완다가 생각한 이상적인 삶이 시트콤 속에 나오는 즐겁고 유쾌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완다가 창조해낸 완벽한 삶은 시트콤 형식으로 외부에 송출되고 있다. 이는 시트콤 속에 그려지는 즐겁고 유쾌한 삶이 완다가 생각하는 최고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고통받고 좌절한 이들이 자신이 펼쳐낸 환상의 세계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것, 이것은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신적 자기방어 기제라 할 수 있다.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모든 문학과 문화 콘텐츠는 이 이상적 환상에 대한 욕구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복제되고 소비된다.

그런데 이러한 대리만족은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대한 체험을 무시하고 희생시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의적으로 구성된 대상들의 세계는 기독교 신학의 비판을 받는다.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자의적인 인식과 환상에 갇힌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피조세계의 현실을 직시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피조세계의 현실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 대 세계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고통받고 죽어가는 인류의 운명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가혹한 운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단순히 괴로움과 좌절 속에서 허무에 압도되어 살아가게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힘입어 죄악의 현실, 고통과 죽음이 지배하는 현실을 극복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에 본회퍼는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을 자기만족을 위해 마음대로 지어내려 하는 자의성이 곧 인간의 자기신격화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완다비전>의 주제의식 가운데는 이러한 본회퍼의 통찰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발견된다. 타자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조종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고 죄악된 행태인지 집중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회퍼의 기독교 철학적 비판과 디즈니-마블의 문화적 비판의 방향은 궁극적으로는 상이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본회퍼의 자의적 인식 비판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자기를 온유하고 겸손하게 개방하도록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면, 디즈니-마블의 비판은 PC운동의 이념을 바탕으로 타자의 다름과 다양성 그 자체에 자기를 무한히 개방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이 차이점을 분별하는 한, <완다비전>은 인간의 죄성 혹은 비윤리성이 인간의 세계인식 방법과 태도를 결정하여 결국 진리가 사라져버리게 된 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알레고리로서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 <완다비전> 은 인간 인식의 자의성과 비윤리성을 폭로하고 비판하려는 주제의식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본회퍼의 기독교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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