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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목사. 나무 깎고 커피 내리며 ‘골목 목회’ - 바리스타 목수 작명가 1인 4역, 골목에서 예수를 만나다
  • 기사등록 2020-07-25 14: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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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목사가 지난 13일 경기도 고양의 ‘커피마을’에서 골목에서 만난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9시, 경기도 고양 일산동구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들어서자 백열등이 켜진 카페가 가장 먼저 보였다. 카페 이름은 ‘커피마을’. 이곳에서 10년째 커피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 안준호 목사가 반겼다. “어서 오세요. 마침 커피를 내렸는데 한잔합시다.” 실내에서는 커피 향이 진하게 풍겼다. 앞치마를 두른 안 목사가 커피가 담긴 잔을 건넸다.



카페는 안 목사의 첫 사업이다. 이곳에서 만난 인연이 쌓여 교회까지 시작했으니 사업이라기보다는 카페 목회에 가깝다. 물론 처음부터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안 목사의 직업은 한두 개가 아니다. 이중직 목회를 넘어 다중직 목회를 하고 있다.



카페 사장이면서도 목수인 그는 몇 년 전부터 이동식 카페인 ‘커피 트럭’도 운영하고 있다. 물론 본업은 참포도나무교회 담임목사다.



“원래부터 손재주가 있었어요. 부지런했죠. 목사가 되면서부터 건물 중심의 교회보다 사역 중심의 공동체를 꿈꿨습니다. 이 골목에서 그 꿈을 실현하고 있어요. 주민과 어울리면서 목회하고, 목사이면서도 마을의 일원으로 살고 있죠.”



안 목사는 카페 사장으로는 낙제점이다. 늘 적자인 카페지만 사람을 낚는 어장으로서는 최고의 공간이다.



“카페는 고민 많은 이들을 길어 올리는 우물과도 같은 곳이에요. 손님들 이야기 들어주는 게 취미다 보니 돈벌이가 될 리 없죠. 잘 들어주는 게 최고의 상담입니다. 이렇게 만난 분 중에는 교인이 된 분도 계십니다.”



커피 트럭이 지난달 경기도 오산에서 열린 한 행사장을 찾은 모습. 커피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참포도나무교회 제공

카페가 목회를 위한 길을 열어줬다면 커피 트럭은 ‘캐시 카우’(수익 창출원)다. 커피 트럭 3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조만간 2대를 더 늘릴 예정이다. 트럭은 지역 행사나 대학 축제 현장을 찾는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교회와 카페, 목공소의 운영비를 댄다.



2013년 설립한 참포도나무교회는 카페 지하에 있다. 119㎡(36평) 넓이의 예배당은 공연장처럼 꾸며져 있다. 이 공간은 예배당이면서 청년들의 사랑방이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지만, 주중에는 청년들이 모여 찬양 연습을 한다. 아담한 예배당에는 드럼과 기타, 건반 등 찬양 연습에 필요한 악기들이 마련돼 있다.



안 목사가 일상을 보내는 곳은 이 골목이다. 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이야기가 담겨 있죠. 지식으로는 알아도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골목에 앉아 나무 깎고 커피 내리면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사렛 골목에 사셨던 예수님의 삶도 이러지 않았을까요. 저를 목사로 만들어 준 곳이 이 골목입니다. 한없이 낮아졌고 겸손해진 곳이기도 하죠. 그래서 골목에 늘 감사합니다.”



목공소를 만든 것도 이웃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2016년에는 가구제작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목공소에는 ‘마을공작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안준호 목사가 만든 목공소인 ‘마을공작소’의 전경. 참포도나무교회 제공

마을공작소에는 낡은 교회 장의자가 쌓여 있다. 서울 청파교회(김기석 목사)에서 40년 동안 사용하던 의자다.



“장의자는 나왕으로 만듭니다. 좋은 목재죠. 교회에서 사용하던 장의자에는 교회가 걸어온 세월이 녹아있습니다. 아이들의 낙서도 있고 누가 붙여놓은 건지 모를 껌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어요. 의자에 남은 흔적을 최대한 살려 목공 제품을 만듭니다. 우리 삶에도 여러 흔적이 있잖아요? 그걸 갈고 닦으며 신앙인이 돼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목공과 신앙생활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네요.”



안 목사는 최근 사용하지 않던 교회 근처 사무실을 다른 교회에 무상으로 빌려줬다. 교단도 다르고 친분도 없던 목회자가 사역하는 교회다. 우연히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가 이런 나눔을 가능하게 했다.



“이길주 목사님이 사역하는 길목교회에 공간을 빌려줬습니다. 이 목사님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건물 중심의 사역을 원치 않는 목회관이 저와 잘 맞았습니다. 마침 이 목사님이 카페와 같은 예배당을 꿈꾸고 계시길래 사용하지 않던 공간으로 모셨죠. 관리비만 이 목사님이 부담하고 계십니다.”



안 목사는 작명에도 소질이 있다. 사업을 시작하는 주민과 교인에게 상호를 지어주곤 한다.



피아노 학원을 하는 주민에게는 ‘고마워 피아노’라는 상호를 지어줬다. 간판집에는 ‘쿨 사인’을, 변호사인 교인의 법률사무소에는 ‘법무법인 더불어섬’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우리 집도 이 골목에 있어요. 골목에서 오래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 상호를 지어달라는 요청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상호 만들어 준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점집에서도 작명을 해주는데 교회도 당연히 해 줘야죠. 그 가게가 잘되길 바라고 기도하며 이름 짓습니다.”



그의 바람은 하나다. 예수님처럼 상처받은 이웃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늘 예루살렘 성 밖에서 사람을 만났고 버림받은 사마리아 땅을 걸어 다니셨습니다. 이 골목에서 주민과 어울려 살고 싶습니다. 살며 목회하고 기도하는 일상이 소중하니까요.”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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