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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 6.25전쟁 70주년 논평… 한미동맹 강조

- “공산화됐다면 종교인·지식인·기업인 모두 숙청 대상”

편집국|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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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 원장). 

“중국 종속(從屬), 조선말 패망 왕조의 친청(親淸) 사대주의로 복귀”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6.25 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를 받아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 전쟁이며 한미동맹은 자유대한민국 번영의 초석이 되었음을 분명히 했다.

샬롬나비는 23일 논평에서 “북한 김일성은 마오쩌둥(毛澤東) 중공군의 중국 본토 장악 등의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 팽창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호응하여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약속받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서 남한을 침략했다. 6.25전쟁은 바로 북한 김일성과 박헌영의 주도의 침략전쟁”이라고 했다.

이어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사전 승인 지원을 허락했다”며 반면, “유엔 16개국 연합군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자유 한국을 구한 결정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공의 6.25 참전으로 한국은 통일의 기회를 잃었다”며 “우리 대통령은 ‘한국은 중국과 운명 공동체’라는 시대착오적인 중국관을 표명하면서 중국 신(新)종속주의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휴전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아시아와 세계에서 경제건설, K팝, K의료 등에서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며 “이러한 발전에는 전쟁으로 폐허된 한국의 기술자, 학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선진기술을 익히게 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시장 경제를 배우게 한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한국 국민들은 만일 미국이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하지 아니했다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대한민국의 여권을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누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신분과 지위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북한은 김여정을 내세워 지나간 3년 동안의 남북관계를 냉전으로 되돌리고자 대한민국 대통령과 지도자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하면서 남한을 대적(對敵)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럴 때 북한에 대한 지나친 종북주의적 태도에서 탈피하여 외교적인 상호주의로 나아가 당당하게 북한에 대응하고 한미동맹을 든든히 하여 국가의 안보를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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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논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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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使嗾)받아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북한의 남침전쟁이었다.
한미동맹은 자유대한민국의 오늘의 번영의 초석이었고 미래 선진국이 되게 하는 길이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6.25전쟁 당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소련제 탱크로 밀고 내려온 기습적 남침으로 전혀 전쟁 준비가 안 된 국군은 북한 공산군에 의하여 밀려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낙동강까지 후퇴를 거듭하다 유엔군의 도움으로 반격을 하여 겨우 부산 함락을 면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어서 서울을 탈환하고 북한으로 진격하여 북한 압록강까지 점령하여 통일을 이룰뻔하였다. 이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은 작전상 후퇴하여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다 휴전에 들어가게 되었고 오늘날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가 되었다.

6.25전쟁 후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된 지구상 빈국(貧國)에서 미국의 원조로 다시 일어나 피땀을 흘려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10대 경제대국, 디지털 기술로는 세계 1위에 올라설 정도로 국가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경제 문화발전에 걸맞지 않아 21대 국회를 열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적폐청산과 좌파 편향의 역사 수정으로 국론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다시한번 6.25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역사의 진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6.25전쟁은 김일성, 박헌영이 일으킨 북한의 남침전쟁이었다.

김일성은 해방이 되자 일찍이 소련의 도움으로 북한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우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혁명을 실시하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군대를 양성하였다. 북한으로 넘어간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은 “남한에는 남로당이 건재하고 있어서, 소위 민족 해방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들(20만명)이 합세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김일성의 남침을 설득하였다. 당시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으로 인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여 한국군에게 무기를 제공하지 않고 소수의 군사고문단만 남겨둔채 남한에서 철수했다. 당시 남한은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북한 김일성은 마오쩌둥(毛澤東) 중공군의 중국 본토 장악 등의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 팽창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호응하여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약속받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서 남한을 침략한 것이다. 6.25전쟁은 바로 북한 김일성과 박헌영의 주도의 침략전쟁이었다.

2.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사전 승인 지원을 허락했다.

소련의 스탈린(Joseph Stalin)은 처음에는 남침을 반대했다가 1년 후 공산주의 팽창의 일환으로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고 무기까지 지원하였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진 소련 문서에 의해 드러났다. 소련 문서에 의하면 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침전쟁의 승인을 받기 위하여 1949년 봄, 1950년 봄 두 차례 모스코바를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1949년 3월 7일)시 김일성의 남침전쟁 허락 요청에 대하여 스탈린은 “미군 철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 상조”라고 남침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에 3월 17일에 조⸳소(朝⸳蘇)비밀군사원조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의하여 소련 특별군사고문단은 1949년 5월 북한에 도착하여 인민군 훈련을 담당했고, 소련의 최신무기 제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소(朝⸳蘇)비밀군사원조 협정을 체결한 다음날 3월 18일 모스코바에서 조⸳중(朝⸳中)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중국 공산당은 무기와 병력을 북한에 제공하고 타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중공이 개입하겠다는 협정이 김일성과 마오쩌둥 사이에 맺어졌다. 미국은 1950년 1월 대만과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소위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발표하였다. 1949년 6월 30일 미군을 태운 마지막 배가 한국에서 철수하자 김일성과 박헌영은 그 이듬해 1950년 봄 다시 모스코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남침전쟁 승인을 요청했는데 이번에는 스탈린의 허락을 받아 내었다(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이 작성한 문서, 1950년 3월 30일-4월 25일 김일성 소련방문 건). 소련은 남한에서 군대를 철수시킨 미국의 태도를 미국의 한국전 개입 반대로 이해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하였던 것이다.

3. 유엔 16개국 연합군과 맥아드의 인천상륙작전은 자유 한국을 구한 결정전이었다.

한국은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의 2차세계대전의 승리로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나라로서 세계에서 잘 알려지지 아니한 은둔의 나라였다. 그런데 미국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아시아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재빨리 개입하였다. 트루먼의 회고록에 의하면 중국이 공산정권에 넘어갔는데 한국까지 공산정권으로 넘어갈 경우 아시아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위상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미국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위상을 위하여 개입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유엔 16개국과 함께 참전하여 피(미국은 54,200 전사자를 내었다)를 흘리지 아니했다면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공산주의가 지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1950년 8월 13일-30일 10여 차례 고지를 뺏고 뺏기는 전투인 세계전사에서 보기드문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이 사단장으로 이끄는 1사단은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유엔군으로 참전한 맥아더 장군의 지원을 받아 밀려 오는 인민군에 융단 폭격을 강하여 인민군을 무력화 시키고 목숨을 걸고 낙동강을 사수하여 대구를 지켰다. 그는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으로 6.5전쟁의 전설이 되었다. 이미 낙동강 지역에까지 진격해 온 공산군에게 반격할 전략은 적의 허리를 잘라 수송물자와 군대 이동을 막는 것이었다. 이것이 유명한 인천 상륙작전이었고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사령관으로서 이 작전을 위험을 무릎쓰고 감행하여 성공한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6.25전쟁을 유엔군의 승리로 이끌고 북한으로 진격까지 하게된 전쟁 영웅이다.

4. 중공의 6.25 참전으로 한국은 통일의 기회를 잃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드(Douglas MacArthur) 사령관의 지휘 아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하여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유엔군은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 때 우리의 통일의 기회는 중공(공산주의 중국)군의 개입으로 좌절되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지게되자 전쟁이 확대되어 제3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하여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유엔군이 작전 상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유를 찾아 나선 북한 피난민들이 흥남 부두에 10만 명 이상이나 모여 인산 인해를 이룬 것은 유엔군이 얼마나 북한 동포의 환영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다. 흥남 철수가 시작되었고 12월 22일 마지막 남은 빅토리호는 정원이 60명이고 승무원은 48명이 타고 있었다. 화물을 다 내려놓아도 2500명 이상은 탈 수 없었다. 하지만 신앙과 생명을 중요시한 유엔군은 배의 무기 등 물자를 버리고 피난민을 1만4천명을 태워서 무사히 거제에 도착하였다. 이를 “그리스도마스 기적”이라고 부른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통일의 꿈은 좌절된 것이다. 이 꿈을 좌절시킨 당사자가 바로 중공의 마오쩌둥이었다. 이 중국은 1989년까지는 세계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가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으로 30년 후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대국(G2)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발전에 걸맞는 정치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공산당 1당 독재와 일대(一帶)일로(一路)(One belt, One road) 정책으로 주변 아시아국을 정치, 경제적 속국으로 만드는 제국주의 정책을 펴고 왔었다. 그리하여 중국은 아시아 나라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러한 중국이 오늘날 한국을 자신의 편에 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한국은 중국과 운명 공동체”라는 시대착오적인 중국관을 표명하면서 중국 신(新)종속주의에 갇혀있다.

5. 한미동맹은 휴전이후 근 70년 간 한국 재건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휴전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아시아와 세계에서 경제건설, K팝, K의료 등에서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발전에는 전쟁으로 폐허된 한국의 기술자, 학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선진기술을 익히게 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시장 경제를 배우게 한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지원이 있었다. 미국의 뒷받침 없이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친미 사대주의의 발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해양세력인 미국과의 동맹으로 인하여 우리는 1980년대에서 2010년대에 이르는 30년간 중국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을 추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대한 영토 야심이 있는 나라로 조심해야 하나,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자유민주주의 나라라 영토야심이 없기 때문에 편안한 나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종북 세력과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일부인사들은 한미동맹에서 탈피하고 중국 종속(從屬)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중국 사대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노선은 조선말 패망한 왕조가 가졌던 친청(親淸) 사대주의로의 복귀이다.

6. 6.25전쟁의 혈맹국 미국은 앞으로도 한국이 함께 나아가야 할 우리의 동맹국이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오늘날 한국 국민들은 만일 미국이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하지 아니했다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대한민국의 여권을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누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신분과 지위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 천년 동안 군신관계로 우리나라를 지배하려고 하였지 미국처럼 우리나라를 위하여 친구로서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다. 미국은 6.25전쟁시 5만4천2백명이 목숨을 버렸으나 중국은 항상 우리나라를 신하로 취급하였다. 중국은 우리의 이웃일뿐이지 진정한 친구는 못되나 미국은 혈맹이다. 한반도 통일의 걸림돌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는 이웃 나라로 그냥 친하게 지내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70여년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만일 대한민국이 오늘날 안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1975년 베트남처럼 공산화 되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세력들과 종교인들, 사회적인 지식인들, 기업인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숙청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북한은 김여정을 내세워 지나간 3년동안의 남북관계를 냉전으로 되돌리고자 대한민국 대통령과 지도자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하면서 남한을 대적(對敵)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럴 때 북한에 대한 지나친 종북주의적 태도에서 탈피하여 외교적인 상호주의로 나아가 당당하게 북한에 대응하고 한미동맹을 든든히 하여 국가의 안보를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주기를 바란다.

2020년 6월 23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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