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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개발의 동기, ‘하나님처럼’ 지배하고픈 욕망 -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미드 <웨스트월드>의 기독교적 함의
  • 기사등록 2020-05-18 11: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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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TV 시리즈, <웨스트월드>.

증강기술 개발, ‘신의 자리’ 서고 싶은 욕망

인공지능, 인간의 죄성 만족시키려는 방편

기독교적 입장에서 ‘선하다’ 말하기 어려워



◈AI 겨울: 코로나 국면에 가려진 인공지능 개발 현황



현대 컴퓨터 기술의 출발은 1936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인 앨런 튜링(Alan Turing)이 ‘튜링 기계(Turing machine)’ 개념을 고안한 시점부터라고 볼 수 있다.



튜링 이전에도 기계식 연산장치는 존재하고 있었다. 1642년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만든 파스칼 계산기는 톱니바퀴를 이용한 최초의 기계식 수동 연산장치였다.



이후로도 라이프니츠를 비롯해 수많은 철학자, 수학자, 기술자들이 기계식 연산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튜링 기계 개념은 이전의 기계식 연산장치들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획기적인 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튜링 기계는 단순히 수학적 연산만 수행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지적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 범용(general purpose) 연산장치로 고안되었던 것이다.



이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사고행위 전체를 수학적 논리와 연산으로 환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인간의 사고 행위가 수학적 계산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자유롭고, 고차원적인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잘게 쪼개놓고 보면 실상 단순한 수학적 계산들의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튜링은 오늘날 통상 계산주의(computationalism)라 불리는 이런 사상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컴퓨터 공학자들과 인공지능 개발자 다수는 인간의 사고가 이처럼 단순한 연산들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포기한지 오래다.



튜링과 최초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갖고 있었던 계산주의적인 확신은 수많은 실험과 시도를 통해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제1차 인공지능 연구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 계산주의적 지능 이해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면서 끝나고 만다. 이때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급격하게 축소된 시기가 도래했는데, 이 시기를 제1차 인공지능의 겨울(AI winter)이라 부른다.



이후 인공지능 연구의 전성기(제2차, 1980-1987)와 인공지능의 겨울(1987-1993)이 한 차례 더 찾아왔고, 현재는 2006년을 출발점으로 삼는 제3차 인공지능 연구 전성기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기계학습 기반 인공지능 기술이 2016년 알파고의 활약을 통해 일반에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북미 학계와 기업들 사이에서는 2006년 제프리 힌튼(Geoffrey E. Hinton)에 의해 딥러닝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이미 인공지능 개발 붐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현재 코로나 국면을 맞이해 주춤한 상황이다. 체감상으로는 또 한 번의 인공지능 겨울이 다가오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언택트 시대가 급작스럽게 도래하면서, 오히려 학계와 기업들의 연구 역량이 인공지능 개발에 더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디어 콘텐츠의 추세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에 대한 호기심, 기대, 불안, 두려움 등을 표출하는 미디어 콘텐츠는 지금까지 수없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수작을 선정하라면 영화 편으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 <아이 로봇>(I, Robot, 2004)을, TV 시리즈 편으로는 최근인 5월 3일 세 번째 시즌을 종결한 <웨스트월드>(2016-2020)를 지목하고 싶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시대를 예견하는 영화, <아이 로봇>.

1973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TV 시리즈로 옮긴 <웨스트월드>는 다수의 유명 제작자들(J. J. 에이브럼스, 조나단 놀란 등)과 배우들(안소니 홉킨스, 애드 해리스, 에반 레이철 우드 등)이 참여한 작품으로, 인간과 거의 동일한 외모와 기능, 그리고 지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이 개발되기 시작하는 미래 시점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AI 창조: 참람한 지배욕이 일궈낸 인공지능 기술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주제로 삼는 미디어 콘텐츠 대부분은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를 묻고, 이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웨스트월드> 역시 이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거울 삼아 인간의 죄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점이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웨스트월드>의 서사 전체는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웨스트월드>가 조명하는 인간의 죄성 가운데 핵심은 바로 지배욕이다. 인간적 형상에 대한 지배욕, 타인에 대한 지배욕이 <웨스트월드>의 핵심 주제이다.




작품 속에서 기술자들은 인간과 거의 흡사한 지적-신체적 기능을 담은 인간 형상의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이익을 위해 이 로봇들을 NPC로 배치한 테마파크를 개설한다.




미국 서부 시대를 배경삼는 이 값비싼 테마파크 안에서 부유층 인간들은 살인과 성폭력같이 인간 현실에서 자행할 수 없는 갖가지 범죄를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들에게 마음껏 저지른다.




이런 설정은 역사적으로 보나 기독교적으로 보나 지극히 개연적이다. <웨스트월드>는 인간이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창조하려는 열망에 휩싸이게 된 궁극적인 동기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자신과 흡사한 존재자를 창조해냄으로써 자신의 피조물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려는 욕망을 표명하고 있다. 이 욕망은 기독교 신학에서 '참람한' 것으로 규정되는 죄성이다.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돌로레스(에반 레이첼 우드 분)와 테마파크 속 서부시대 모험에 빠져드는 사업가 윌리엄(지미 심슨 분).

인공지능 및 인간증강 기술 관련 저명 기독교 윤리학자 토드 달리(Todd T. W. Daly)는 <종교와 인간증강>(Religion and Human Enhancement)이라는 저서에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신학적 인간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인격 창조 욕망을 비판한다.




달리의 설명에 의하면, 본회퍼는 인간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만 비로소 온전한 인격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며, 그 증거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있다고 해명한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완벽하게 연합되어 이 땅에 오셨는데, 이는 진정한 인성, 진정한 인격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에 ‘연관되어야만’ 온전해질 수 있음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달리는 본회퍼의 이런 인격 개념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창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증강 기술 개발 열망을 인간이 신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욕망으로 규정한다.




인간이 자신과 닮은 인격을 만들어 자신 앞에 세우고 복종시키겠다는 것은 오직 유일하게 인격의 주관자가 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웨스트월드>에 묘사된 탐욕스럽고 절망적인 인간들의 모습은 달리의 신학적 진단에 부합한다.




<웨스트월드>의 서사 속에서 처음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만든 개발자들은 로봇들이 인류를 더 풍요롭게 하고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진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만든 휴머노이드를 마치 자식이나 친구처럼 대한다. 처음 테마파크에 온 인간들 가운데 상당수도 휴머노이드를 인간인 것처럼 감정이입해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역할극과 모험을 즐긴다.




그러나 이들은 인공지능과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인간이 그것들을 창조했으며, 그들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서 휴머노이드를 노예보다 못하게 살인과 성폭력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인간들에 의해 학대당하고 죽는 것이 일상화된 인공지능 로봇들.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이자 초월성을 가진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자기 존재의 유한함을 절감하고, 그 앞에 겸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인격을 귀하게 존중하는 심령은 오로지 자신보다 위대한 인격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인공지능이라는 모조 인격 창조를 통해 인격을 창조 대상이나 도구 취급하게 되면, 인격 대 인격 관계는 근본적으로 겸비와 존중이 아니라 지배와 포학의 행태를 유발하게 된다.




이런 관계가 심화되면 될수록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관계 역시 누릴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웨스트월드>에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들에게 저지르는 범죄에 빠져 있다가 현실 세계에서마저 자멸해 가는 인간 군상은 바로 이와 같은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인 입장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시대의 대세이긴 하지만, 결코 선한 일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기술은 그 동기상 애초 인격 대 인격 관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 하는 욕망, 즉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창 3:5)” 인간의 원죄적 욕망을 바탕삼아 고안된 방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시작부터 인간의 죄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된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향후 인류 존속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시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성을 만족시키고 더 증폭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에 위배된다.




이런 맥락에서 <웨스트월드>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상당한 함의를 전하고 있는 미디어 콘텐츠라 볼 수 있다.




인간과 흡사한 인격체를 창조해 하나님처럼 인격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인공지능 개발의 근본 동기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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