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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정권이 기독교 신앙과 예배에 반감 갖는 이유

- 박욱주 박사.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방역 책임과 예배 제재

편집국|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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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들의 주일 예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문재인 대통령. 

외신, 문재인 정부 성향 사회주의 명백 평가
사회주의적 미래상 위해 기독교 말살 주력
정부 부조리 뛰어넘어 사회적 책임 지키자

◈사회주의의 반종교성: 사회주의의 기원, 청년 헤겔주의의 적대적 종교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렸을 때, 후보자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정치적 노선이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 발언은 과거 그가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활동을 했던 이력과 맞물려, 세간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단지 조국 전 법무부 장관뿐 아니라 그에게 마음의 빚까지 느끼면서 그의 임명을 추진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노선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현 집권층 정치노선의 정체를 의심하는 것과는 달리, 해외에서는 전반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정치 성향이 명백히 좌익 성향의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례로 작년 7월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자 아시아 경제 담당 분석가 슐리 렌(Shuli Ren)이 쓴 기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진술이 확인된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였던 한국은 현재 ‘개집’에 틀어박힌 신세다. … 지난 2년간,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주의적 실험은 한때 활력이 넘쳤던 한국 경제의 ‘야성적 충동’을 죽여버렸다. (Once an Asian Tiger, South Korea is now in the doghouse… In the past two years, President Moon Jae-in's socialist experiments have sapped the animal spirits from this once-vibrant economy.)”

이처럼 문 대통령을 좌익 사회주의자로 규정하는 태도는 해외 주요 언론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문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뿐 아니라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좌익 계열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문 대통령과 현 집권층 최상부가 추종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사상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사회주의는 여러 정치사상 가운데서 가장 모호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체계이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자유주의 같은 체계도 광범위한 스펙트럼에 걸쳐 현실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이 모호한 개념이 가진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려면, 일단 그 기원을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다. 여러 모양새로 분화되기 전 발아기 시절, 사회주의의 원형(原形)은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을까?

사회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들이 존재하나, 통상적으로는 19세기 중반(1830년대 말-1840년대 초) 독일에서 일어난 청년 헤겔주의(die Junghegelianer)를 지목하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인정돼 왔다.

헤겔 좌파로도 불리는 청년 헤겔주의는 헤겔 사후 그의 변증법적 형이상학을 현실의 경제 및 정치 체제에 접목하고 적용하는 데 주력했던 학파이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스케치한 헤겔 좌파의 회합 장면. 

헤겔 좌파의 면면을 살펴보면, 헤겔 변증법을 이론적으로 재구성해서 헤겔 좌파를 창설하고 지도자로 활동했던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 바우어의 이론을 배워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역사적 예수 연구(historical Jesus)를 개시한 자유주의 신학자 다비드 스트라우스(David Strauß), 현대 무신론의 기틀을 다진 종교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그리고 사회주의의 직접적 기원이 된 마르크스주의 창도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헤겔 변증법의 지향점이자 그가 전망한 역사의 종착점이 절대지(絶對知), 즉 신적 정신으로 수렴되는 것에 반발했다.

헤겔의 변증법적 이상향이 기독교 종교철학 관점으로 조망된 사실에 대해, 헤겔 좌파 멤버들은 헤겔의 철학이 여전히 인류의 이성과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아 온 기독교 신앙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헤겔 좌파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철학적 작업은 우선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로부터 신적 권위를 제거하고 종교들이 순전히 허구적 미신에 불과하다는 자신들의 견해를 논증하는 것이었다. 즉 청년 헤겔주의의 출발점은 기독교 신앙을 주된 비판대상으로 삼는 반종교 사상이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 좌파의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바우어, 스트라우스, 포이어바흐 등이 1800년대 초반생인데 비해, 마르크스는 1818년생이었다. 그는 헤겔 좌파가 존속하고 있던 당시까지 특별히 어떤 사상적 조류를 창안하기보다, 선배들의 사상을 배우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 사회주의의 직접적 기원인 마르크스주의 창도자 칼 마르크스. 

자연스레 마르크스도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쇠퇴와 말살을 꿈꾸게 된다. 그는 특정 종교가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가진 종교성 자체가 문제라 생각했고, 미개한 전통에 얽매인 인간의 종교성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인류 진보의 최우선 조건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헤겔 좌파 멤버들이 이처럼 반종교, 반기독교 사상을 정립하는 데 주력했던 이유는 종말론적 미래를 예고하는 기독교 신앙이 당시 서구 대중의 미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 인류 진보의 미래상을 정당화하고 일반에 주입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기초한 기독교적 미래상을 폐지해야만 했다.

이처럼 헤겔 좌파는 유물론적인 동시에 형이상학적이었다. 당장 현실의 물질적 존재자들로 구성된 세계를 존재의 근원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이면에 이런 물질적 세계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정신적-역사적 원리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고, 헤겔 좌파가 내세우는 역사관이 바로 이런 원리를 온전하게 밝혀준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헤겔 좌파의 반종교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와 그로부터 파생된 각종 사회주의의 변형태 속에 태생적 유전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정치세력이 유독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애초 그 사상의 원류가 반종교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가 남긴 반종교적 교설,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다". 

따지고 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반종교적인 이유는 단지 유물론을 지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이 가르치는 인류의 미래상이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절대화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가 더 큰 원인이다.

헤겔 좌파의 반종교 사상은 인류의 보편적 진보를 지상명령 삼는 계몽주의적 인간관 및 역사관으로부터 파생된 터라 시작부터 교조적 독단성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런 교조적 성격은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강화되었다.

결국 사회주의는 여타 사상의 공존이나 양립을 불허한다. 특히 그것이 종교와 관련된 사상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회주의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침해할 수 없는 지고선(至高善)으로 떠받들려지기 때문에 그 이외의 모든 사상, 특히 구체적 미래상을 제시하는 종교 사상은 해체와 말살의 대상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의 비현실성: 현실 역사를 부정하는 허구적 이념성

사회주의가 갖는 이 교조적 독단성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권 수뇌부가 최근 예배 제재 시도를 감행하는 데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이 독단적인 정치적-사상적 편향성에 대한 교회와 신앙인들의 우려는 대부분 무시되거나 역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동아시아, 특히 한국 사회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사회주의의 원초적인 반감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문화적-사상적 배경을 갖는다는 데 주된 원인이 있다.

한국의 사회주의는 소비에트 혁명과 중국 공산혁명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어 북한 공산주의 정권 창립에 기여했고, 대한민국에서도 숱한 지식인 및 사회운동가들을 통해 그 명맥을 이어왔다.

▲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주의 실험을 비판하는 블룸버그 지의 논평. 

그러나 한국의 사회주의는 종교적 신앙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헤겔 좌파만큼 치열한 반성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은 애초 기독교 국가도 아니었고, 종교 문화라 해봤자 현세주의를 표방하는 유교와 무교(巫敎) 문화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민의 전통적인 심성은 사회주의와 잘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평등에 관한 인식 측면에서 그랬다. 집단주의와 계급주의를 지향하던 유교 문화 특성상, 사회 구성원 중 누구 하나가 특출나거나 주어진 틀을 벗어나는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면 지탄하고 제재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공통적인 태도였다.

이런 한국인에게 정치 권력과 경제적 재화의 평등 분배를 약속하는 사회주의가 얼마만큼 매력적으로 비춰졌을지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사회주의의 반종교적 기원을 잘 알지도 못하고 체감하지도 못할뿐더러, 애초부터 내세나 초월보다 현세의 복락에 몰두하는 기복성을 추구하는 데다, 하향평준화된 평등과 분배를 정당화하는 문화에 깊게 젖어 있는 한국 사회가 형평성에 어긋난 예배 제재를 당연시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 한국의 전통문화는 영혼이 영원하게 거할 내세라는 개념을 낯설게 여기며, 거기에 큰 가치를 둘 줄 모른다. 이는 현재 한국교회가 반드시 헤쳐나가야 할 중대한 난관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나라의 정권 지도부가 절대선으로 받드는 사회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애초부터 부조리한 사상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영국 런던 소재 경제문제연구소(The 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소속 정치경제학 수석 연구원 크리스티안 니미츠(Kristian Niemietz)는 지난 해 <사회주의: 결코 사멸하지 않는 실패한 이념>(Socialism: The Failed Idea That Never Dies>이라는 저서를 통해, 오늘날 다수의 지식인들과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사회주의의 허실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 사회주의의 역사적 허실을 비판하는 책 <사회주의: 결코 사멸하지 않는 실패한 이념>. 

니미츠가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이들 대다수는 첫째,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소련, 중국, 북한, 쿠바, 캄보디아, 베네수엘라 등)에서 시행하고 실패했던 사회주의 실험 사례들을 결코 '진정한' 사회주의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주의가 갖는 이념적 정당성을 옹호하려 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나 자본주의 등 현재 세계를 지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화된 이념들에 대한 ‘직관적 반감’에 기대어, 별다른 근거 없이 사회주의를 ‘보다 윤리적인’ 사상 체계로 간주한다.

니미츠의 첫 번째 비판점은 일전에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 떠돌던 일본 축구대표팀의 ‘전설의 1군’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축구대표팀이 상대에게 패하거나 졸전을 펼치는 경우 일본 언론과 축구팬들은 항상 1.5군 혹은 2군을 출전시켰을 뿐이라는 변명을 내놓곤 했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일본 축구대표팀 1군이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지구 최강의 팀이었을 뿐이다.

이와 동일한 행태가 사회주의자를 옹호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과거 시행된 비극적인 사회주의 실험들은 ‘진정한’ 사회주의라 할 수 없는 왜곡된 정치경제 체제에 불과했으며, ‘진정한’ 사회주의가 현실화되면 그 어떤 체계도 넘볼 수 없는 정의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만일 지금까지 온갖 파탄을 일으켜온 사회주의 실험들을 모두 ‘진정한’ 사회주의의 범주에서 제외해 버린다면, 사회주의는 그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획득할 수 없는 순수한 이념성만 지니게 될 뿐이며, 이로써 인류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증하게 된다.

▲ 중국 공산당 지도자 모택동이 주도한 사회주의 실험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과 함께 중국에 숱한 인명피해와 문명 파괴를 초래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니미츠의 두 번째 비판점은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근거 없는 독단성, 그리고 순수하게 이념적일 뿐인 우월성이다.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지배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간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완전한 정치적-경제적 체계가 아니다. 단지 여타의 체제보다는 낫다고 여겨, 차선책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 체계 안에 살아가는 이들은 불가피하게 고통과 부조리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통과 부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불만과 반감을 야기한다.

이 때 역사적인 실패를 부정하거나 위장한 사회주의는 그 현실성 여부와는 상관없는 이상적 평등과 정의를 앞세우는데,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현실에 직접적인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 더없이 윤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나 과거 실패했던 숱한 사회주의 실험들을 사회주의의 범주에 정직하게 포함시킨다면, 사회주의가 약속하는 윤리적 이상향이 현생 인류에게는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이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사회주의는 칸트와 헤겔 당시까지만 해도 포기되지 않았던 신의 계명과 은혜에 대한 의존성을 전적으로 포기하게 하고, 오직 인류 스스로 인간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자력개조의 미래상을 설파한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에서 유독 보편적 인간성과 가치를 파괴하는 사회적 실험이 많이 행해진 데는 이런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기술과 약물을 통한 신체 개조, 집단농장을 통한 전통적 경제질서와 가족구조 해체, 세뇌를 통한 사상 주입,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권 친위대화 작업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죄성이 어느 정도까지는 자력으로 다스려질 수 있다고 믿지만, “마음에까지 믿어 의에 이르는” 진정한 선의 실현은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 없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류가 스스로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상적이면서도 교만한 사고에 제동을 건다. 한없이 숭고하고 참된 권위와 질서의 부여 없이 인간이 선을 이룰 수 있다는 사고는 기독교 신앙의 입장으로 보면 헛된 자기 정당화, 자기신격화에 불과하다.

▲ 인간성의 자력 개조는 모든 사회주의 운동의 기초 신념이다. 북한에서는 이 신념이 '주체사상'으로 현실화됐다. 

사회주의는 변증법적 투쟁과 진보를 통한 인류의 자력개조, 자력갱생이라는 자신들의 핵심 교의에 대치되는 기독교적 인간관과 역사관에 상당한 수준의 반감을 갖는다. 결국 사회주의를 표방하거나 최소한 그 노선에 가까워지려 하는 집권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본능적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최근 정부의 예배 제재 시도에는 이런 사상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분투에 가까운 방역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정부는 정통 기독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신흥종교 신천지나 교회 내 일부 감염사례들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교회들이 중국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대단히 불합리한 것이다.

특히 정부가 중국을 비롯해 지금까지도 해외 여러 나라에서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대한 입국금지를 시행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애초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방역 지침을 시행하지 않은 정부가 그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의 책임을 교회들 측에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현 국면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역사적 대립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정권의 사회주의적 정치 성향이 왜 유독 교회들에게 비우호적인 제재 시도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신앙인들이 충분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과 대처를 시도해야 될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부조리함을 분명하게 인지하되, 그 부조리함을 뛰어넘어 최선을 다해 신앙과 사회적 책임을 지킴으로써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의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교회와 신앙인들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헤쳐나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 최선을 다해 방역에 힘쓰는 교회들에게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사회주의 정치노선을 지향하는 현 한국 정권의 부조리한 현실인식을 드러낸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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