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방송

HOME > 사설·칼럼 > 사설·칼럼

성전? 가정? 교회당? 어디서 드려야 진정한 예배인가

- 김충렬 칼럼 [5분만 읽는 설교 98] 알고 드리는 예배

편집국|2020-03-21
글자 크게글자 작게인쇄하기메일로 보내기스크랩
▲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지. ⓒ픽사베이 

주님께서 예배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에서 생수를 말하다, 이제 예배로까지 주제가 발전되었습니다. 메시야를 대망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큰 희망이었습니다. 메시아의 대망은 로마의 정치적인 압제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을 꿈꾸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야 대앙이 깔린 예배는 오실 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알고 드리는 예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0-21절)”.

오늘날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변형된 형태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에게 정성을 드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특정한 장소가 중요해지기도 했습니다.

제사와 마찬가지로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는 예배의 무질서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변질이 초래되기도 했습니다. 장소에 따라 거룩성이 더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특정한 장소로 한정하는 곳에서는 장소에 따른 미신이나 우상화의 특성이 작용하기 쉽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구약시대에서는 제사장 제도와 중앙의 성소 제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이 산에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말씀은 장소의 초월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를 드릴 때 “장소가 필요가 없다, 장소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릴 때 정해진 장소나 구별된 장소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장소에 반드시 국한되지 말고,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예배란 장소의 제한적인 범위를 탈피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하다

구약시대에 제사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드려졌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는 말씀은 예배의 더 중요한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경우를 상정하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편재성(偏在性)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예배란 장소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합니다. 임재(臨齋)란 ‘함께 존재하신다,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엄숙하고 장엄하게 형식적인 예를 갖추어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감격을 체험하는 내용적인 예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진정한 예배는 그 형태보다 하나님과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종교개혁자 칼빈(J. Calvin)은 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측면에서 생활에서도 예배가 가능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나님 앞에서’라는 라틴어의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성도들은 생활 자체가 예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예배의 실천을 강조한 대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성도의 생활이 모두 예배가 될 수 있다는 폭넓은 예배의 개념입니다.

3.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22절)”.

이 말씀은 사마리아인들의 예배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시는 부분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사마리아인들이 예배의 대상을 잘못 알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역사적인 배경을 알면 이해가 됩니다. B.C. 722년 앗수르 왕 사르곤 2세에 의해 성읍이 점령된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예배의 대상이 조금 변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만 경배하지 않고, 이방 신들을 영입한 혼합주의적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는 비교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섬겨 오던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만을 예배해 왔습니다. 이는 마치 중세의 수학자요, 물리학자요, 종교사상가로 유명한 파스칼(Blaiss Pascal)이 “나는 철학자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한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파스칼은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는 가죽조각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요즘 코로나19의 확산에 문제가 되는 신천지는 예수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주 이만희를 섬기는 종교사기 집단입니다.

이만희 교주는 죽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죽음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고 합니다. 이는 12년 동안이나 그의 배필이던 김남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만희는 자신이 ‘이긴 자’, ‘감람나무’, ‘보혜사’라고 하여 성경 위에 있는 ‘하나님’으로 둔갑되고 있지만, 곧 병들어 죽을 평범한 사람입니다.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 올바른 예배의 대상을 알아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므로 넘치는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예배는 장소를 초월함을 알게 하소서,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함을 알게 하소서, 더 나아가 예배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소서, 예배를 올바로 드리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bntv.tv/atc/view.asp?P_Index=5631
기자 프로필 사진

편집국 (ktv91@hanmail.net)

기독교방송 기자

[편집국   |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저작권자 © cbntv.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섹션메인으로인쇄하기메일로 보내기스크랩
페이스북으로 보내기트위터로 보내기요즘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