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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선교신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의 마지막 경고

- [김영한 칼럼]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를 추모하며

편집국|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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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독일의 세계적 복음주의 선교신학자요 한국교회의 친구인 피터(페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 교수께서 지난 2020년 1월 19일 91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영원한 품 속으로 안기셨다.

그는 특히 독일신학자로는 독특하게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인본주의적 종교다원주의 선교운동에 대해 비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인격과 구원의 유일성에 기초한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제창하고 신학적으로 정립한 공적을 남겼다. 그분의 천국 입성을 환영하면서, 인간적으로 그의 유족과 독일의 동료들에게 애도(哀悼)의 뜻을 표한다.

바이어하우스는 1929년 독일 베를린 부근 호헨크래니히(Hohenkränig)에서 지크프리드 바이어하우스(Siegfried Beyerhaus) 목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독일에서 신학 수업을 시작했고, 9학기 신학 수업을 마치고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신학 수업을 계속하여 선교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57년 베를린 선교회의 파송선교사로 아프리카 남아공에 선교사로 가서, 1965년까지 우푸물로(Uphumulo (Natal))에 있는 루터교신학교 학장(Rektor des Lutherischen Theologischen College)으로 봉직하면서 현지인 선교를 하였다.

바이어하우스는 아프리카 현지 부족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의 애미니즘(animism) 등 마술 숭배를 발견하고 영적 전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65년 8년간의 아프리카 선교 사역을 끝내고 독일 튀빙엔 대 선교학과 에큐메니칼신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그는 1997년 은퇴하기까지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이 지배하는 독일 신학계 풍토에서, 성경에 근거한 선교를 정립하기 위해 WCC의 범종교주의,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선교의 비성경적 측면을 밝히는 복음주의 선교의 전사로서 그의 삶을 바쳤댜.

그가 주도하고 함께 기초한 1970년 프랑크푸르트 선언(Die ‘Frankfurter Erklärung’ von 1970)은 성경에 충실한 선교사역의 신학적 기초로서 평가받고 있다.

바이어하우스는 1970년 독일 남부 지역 비텐비르크 경건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창립한 알브레히트 벵겔 하우스의 원장(Rektor des Albrecht Bengel Haus)직을 1970년에서 1974년까지 수행하였다.

유럽에서 복음주의 선교를 위한 신앙의 투사요 선교학자였던 바이어하우스 교수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를 창설한 선교신학자요 역사신학지 김명혁 교수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한국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필자도 1971년에서 1977년 독일 첫 유학 시, 그리고 1983-1984년 독일 안식년 체류시 그 분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독일과 세계 각처에서 펼친 한결같은 복음주의적 신앙과 활동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복음주의 후예들에게 깊이 각인되고 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 한국신학회

바이어하우스는 교회를 위한 성경적 선교 개념을 선교학적으로 정초한 복음주의 사상가였다. 독일 추모자들은 바이어하우스가 ‘그리스도 중심적 에큐메니칼 고백(eine ‘christozentrische Bekenntnis-Ökumene’)에 헌신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바이어하우스는 2016년 그가 16차 방한한 가운데 영락교회에서 개최된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이제까지의 삶을 회상하는 고별강연을 했다. 그의 강연은 한국교회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더불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 때 필자는 그 분의 강연에 대한 논평을 맡아서 그 분의 시종일관 한결같은 복음주의적 활동에 경의(敬意)를 표하며, 하나님께서 노종(老從)의 생애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해주실 것을 치하하면서, 다음 세 가지 점을 논평한 바 있다.

1. ‘한국교회의 경이적 성장’ 전파: 독일 및 세계 교회에 한국교회 소개 공헌

필자(筆者)가 1970년대 독일 유학 시절, 바이어하우스 교수께서 하이델베르크대 신학부의 초청으로 튀빙엔에서 올라와서 행한 강연에서 들은 ‘한국교회의 경이적 성장’에 관한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그때 처음으로 그분의 선교학적 강연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장이 교회사적으로 유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에서 미처 알지 못한 한국교회의 성장과 교회사적 위상을 독일에서 알게 된 것이다.

당시 유신(維新) 독재 시절 독일 튀빙엔대 젊은 신학자인 몰트만 교수가 한신대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강연하고, 민중신학을 변호하였다. 당시 몰트만은 한국 군사 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해, 민주화와 인권을 주장한 민중신학을 대변한 것이었다. 당시 몰트만은 한국에서 혜성 같은 신학자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튀빙엔대 신학부 동료인 바이어하우스는 당시에는 전혀 한국교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실상 독일 교회에서 한국교회의 성장에 관해 선교학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자가 바로 바이어하우스 교수였던 것이다.

몰트만이 한국의 민중신학을 독일에 알린 것에 반해, 바이어하우스는 선교학적 관심에서 한국의 빌리그래함전도대회, 민족복음화대성회 등을 통한 한국교회의 경이적 성장에 관해 유럽에 알렸던 것이다. 바이어하우스의 한국교회에 대한 보고는 복음주의적 선교학적 관심에 의한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바이어하우스의 하이델베르크대 강연을 통해, 한국교회가 선교학적으로 유례 없는 중대한 발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아는 계기를 가졌다.

그래서 필자는 바이어하우스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강연 논평에 있어, 그가 ‘선교사(史)에 있어 유례 없는 한국교회의 발전상’을 선교학적으로 활용하면서, 복음주의 선교를 위하여 한 평생 애쓴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 공헌에 대하여 높게 평가하였다.

한복협 피터 바이어하우스

2. 한결같은 복음주의적 열정과 WCC 내 혼합주의적 요소를 지적한 공헌

독일 개신교회의 선교는 주로 교회의 날(Kirchentag)을 개최하는 에큐메니칼 진영이 주도권을 쥐고, 복음화와 전도보다는 인간화와 사회화, 제3국 선교활동도 주로 사회개발협력(Entwicklungshilfe)으로 진행됐다.

바이어하우스는 1968년 웁살라 총회 이후 WCC의 선교 방향이 타종교와 이데올로기와의 대화와 인종주의에 대한 투쟁(two controversial programs, the dialogue with non-Christian religions and ideologies and the fight against racism)으로 경도(傾倒)된 것을 지적하는데 예언자적 공헌을 했다.

바이어하우스는 권위주의 정권의 인종주의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 과격파들의 무력적인 투쟁을 반대하고, 종교간 대화에서 힌두교, 무슬림, 불교도에 대한 선교가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한선교 모라토리움을 비판했다.

그리고 1970년 ‘선교기반 위기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선언(Frankfurt’s statement about the foundation crisis of mission)’을 주도했다. 그는 1973년 방콕 WCC 대회에서 당시 총무 필립 포터(Philip A. Potter)의 과격한 사회화 선교 정책에 대항해, 복음적 선교정책을 천명하였다.

바이어하우스는 독일 내에서는 당시 발터 쿠네트(Walter Künneth) 등 엘랑엔의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공동체의 날(Gemeinde Tag)을 주도하였다.

국제적으로는 WCC의 인간화 편향적 선교활동의 대안으로, 영국의 복음주의 성공회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와 함께 1974년 ‘로잔 복음화 운동’을 창립하였다.

피터 바이어하우스 “아프간 피랍, 고난받을 때 하나님 임재”

바이어하우스는 2013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초청으로 한국 강변교회에서 행한 강연 ‘세계 기독교의 동향과 한국교회에 드리는 조언’에서, 오늘날 위기에 있는 세계교회의 영적 위기를 다음 세 가지로 지적하였다.

“서구교회와 특히 독일 교회의 가장 분명한 위험한 경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간단하게 서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신앙과 윤리의 성서적인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론과 구원론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왜곡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둘째로, 전통적인 주류 교회들과 선교 단체들이 복음화의 정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것은 우리 서구 나라들 안에서 무신론적 인본주의가 교회들을 도전하고 있고 반 기독교적인 이슬람 종교가 도시와 마을 마다 모스크를 세우면서 그들의 보루를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을 영적 교제와 대화의 동반자로 받아드리게 되면서 종교 혼합주의가 젊은 신자들의 마음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셋째로,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 제도와 가정 제도가 무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혼이 빈번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결혼이 적당히 교제하면서 함께 사는 잡동사니 가정으로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동성애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교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동성애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또 하나의 결혼 제도라고 선언합니다.”

바이어하우스가 강연에서 지적한 세 가지 선교적 위기란 다음 세가지다. 첫째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 권위 상실로 인한 신앙과 윤리의 성경적 기초의 흔들림 위기, 둘째로 종교 간의 대화와 종교혼합주의로 인한 선교 동력 상실의 위기, 셋째로 동성애로 인한 가정과 결혼의 위기다.

이 세 가지는 오늘날 현대교회가 직면한 위기요 복음주의 교회가 교회의 순수성을 지켜내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중대한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바이어하우스는 천명한 것이다.

바이어하우스 박사

3. 젠더 이데올로기를 제3의 인류문화학적 혁명이라고 경고한 공헌

바이어하우스는 21세기에 대두된 제3의 문화혁명인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에 대한 비판도 주도했다.

그는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에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탄적 흐름에 대항할 사명이 있음을 역설했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동성애 인권 운동과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으로 이미 영국과 미국 사회를 장악하여,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허용하고 동성애 금지 반대 발언과 운동을 금지하도록 하여 이들 사회를 이교도적 사회로 변질시키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매년 6월 퀴어축제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어하우스는 독일 교회가 이에 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그 대처 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2016년 6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초청으로 방문한 바이어하우스 교수는 필자가 섬기는 기독교학술원이 개최한 특별강연(2016년 6월 10일)에서 젠더 주류화 운동(Gender Mainstreaming)은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한 성 혁명 프로그램이라고 비판하였다.

바이어하우스가 지적한 것처럼, 젠더 주류화 운동은 두 번에 걸쳐 선행된 거대한 혁명들, 즉 정치적 신분제를 전복한 프랑스 대혁명(1789)과 경제적 계급제를 전복시킨 볼셰비키 혁명(1917) 이후, 1968년 세 번째 세계사적·문화인류학적 성 혁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하나님 주권에 대항하여 일어나고 있다.

WCC 개회 예배

바이어하우스는 젠더 주류화 운동에 대한 비판을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2절에 근거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사도 바울은 예언자적 기도와 묵상 가운데, 성령으로 주어진 계시를 통해 앞으로 도래할 규범 폐기의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이 구절이 가리키는 ‘불법한 자(anthroopos tees anomias)’란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의 지성소 위에 앉아 있는 자,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적그리스도다. 이 구절은 오늘날의 정신적·윤리적으로 무법 상황을 예시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젠더 주류화 운동(Gender Mainstreaming)은 하나의 성 문화 혁명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 이성애 문화를 제거하고 이를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이라는 동성애(同性愛) 문화로 바꾸고자 한다.

이 운동은 20세기 초중반기 있었던 이전의 다른 현대적 이데올로기 운동들, 즉 마르크스주의, 모택동주의, 스탈린주의, 파시즘, 나치주의와 군국주의 등 전체주의(totalitarianism), 그리고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에 의해 제안된 프로이드-마르크스주의와 같이 총체적으로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해 주고 있다.

젠더 주류화 운동이 갖는 적그리스도의 길이란 전통적 규범을 총체적으로 거부하고, 가치와 규범의 혼돈과 혼란을 초래하는 무규범(Anomie) 상태를 말한다.

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주도되는 젠더 주류화 운동이 적그리스도적 준동이라는 사실에 대한 위험성 지적은, 바이어하우스가 한국교회에 와서 마지막으로 해준 중대한 문화인류학적 경고였다.

바이어하우스 학회

맺음말

재작년인 2018년 10월 5일, 한국에서 바이어하우스학회가 조직됐다. 바이어하우스의 유일한 한국인 박사 학위 제자인 이동주 교수(아신대 은퇴)를 주축으로, 조종남, 김명혁, 깁상복, 김영한, 오성종, 이승구 박사와 이재훈 목사가 참여해 출범하였다.

이 학회를 중심으로 바이어하우스 아카데미(Beyerhaus Akademie)가 시작돼,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속에서 복음주의적 선교가 무엇인가를 계몽하는 뜻 깊은 1주간 집중 강의가 시작되었다.

돌이켜 보면, 재작년 바이어하우스 학회가 한국에서 창립된 것은 그 분의 별세에 대비한 것이 되었다.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뜻이 계신 것이었다.

마지막 때인 오늘날, WCC 등 각종 선교운동이나 신학운동에 나타나는 혼합주의와 세속주의 운동에 대한 바이어하우스의 예언자적 경고는, 그의 별세 이후 지구촌 세계 교회가 복음주의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깊이 명심하고 지켜야 할 교훈이다.

독일과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한국개혁신학회,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한국기독교학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등 그 분을 존경하고 그의 사상에 동의하는 후학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선교사들은 그 분이 남기신 복음주의적 성경적 선교 개념의 위대한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기를 소원해 본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한국개혁신학회·복음주의신학회 증경회장/ 숭실대 명예교수)

▲ 2007년 8월 한국을 방문해 강변교회에서 설교한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당시 78세였다. 

▲ 2016년 6월 한국신학회 초청 신학강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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