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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크리스천의 사명은 ‘문화번혁’이다

편집국|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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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상 목사. 

2016년, 15년 가까이 하던 사역을 그만뒀다. 3년 임기를 다섯 번 다 채운다는 것은 과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 사실 머리에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만두고 사무실을 연 것이 ‘근대문화진흥원’이다.

역사와 문화가 없는 교회처럼 이상한 것도 없다. ‘역사’와 ‘문화’가 없는 미래는 없다. 미래를 여는 빛이자 등불이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근대문화 자료를 3천여점 정리하여 데이터화하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는 지난 4년간 발표한 100편의 칼럼과 논문, 신문, 방송, 포럼, 잡지의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하여 심포지엄을 통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근·현대 역사에서 기독교 문화는 복음의 풍성함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일상과 시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야기와 증언이 주는 감동이 문화를 통해 전해진다.

2017년에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별이 된 시인 동주’ 전시회와 시낭송, 콘서트를 열었다. 창조와 하나님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교회가 무슨 세속 문화에 관심을 갖느냐는 일부 목회자들의 비협조적 태도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가 신학만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가? 문화적 대변혁기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를 사는 크리스천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특히 반기독교적 정서와 문화가 급속하게 밀려오고 있는 때,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 이효상 원장이 지난 2017년 11월 윤동주 탄생 1백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매년 10월 31일이 되면 유령이나 괴물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 축제이지만, 해마다 살인마 흉내를 내며 총기난사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할로윈(Halloween)축제가 그렇다.

‘총격’으로 얼룩진 미국산 축제를 국내에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타락한 이 세상의 문화는 반신적(反神的)이고, 심지어 사탄적 문화가 아닌가 할 정도로 막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는 흔히 문화와 문명 개념을 뛰어넘는, 고도한 문화 이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반(反)문화적이라는 이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그 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8절은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다. 이는 사람이 온 세상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잘 다스려서 그 피조계에 그 뜻을 잘 드러내도록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문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하나님 형상됨을 실현하고, 인간의 인간됨을 실현해 내는 매우 중요한 삶의 방식이다.

얼마전 가톨릭 신부님을 만났다. 그런데 명함을 받고 놀랐다. 가톨릭 본부에서 직접 가톨릭영화제를 담당하고 매년 진행하고 있어, 의외로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

문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도록 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의 생각과 힘을 다해 그 분의 의도에 부합하게 잘 개발하여 원하시는 문화(culture)를 드러내도록 함을 뜻한다.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온전한 문화’라면, 인간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피조계에 힘을 가해서 자신들의 뜻대로 변형시키는 것을 ‘잘못된 문화’라 말할 수 있다.

뉴에이지(New Age) 운동처럼, 종교성을 제거한다면서 인간성을 높인다는 미명 하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방식의 문화가 현저하게 나타남도 사실이다.

기존 사회·문화·종교에서 더 이상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여 영적 공허를 느낀 사람들이 신비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요소와 과학 ·심리 ·기술 ·정신분석 등을 혼합시킨 뉴에이지가 그렇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이 생성해 내는 문화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구속함을 받은 크리스천의 사명은 ‘문화 변혁’이다. 기존의 잘못된 형태의 문화나 정치를 방치하고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변혁해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변혁 사역을 해야 한다.

변혁 사역은 결국 거듭남의 열매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적(神國的)’이다. 거듭남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리 순수해도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적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이 있더라도 인간들의 단순한 흥미나 취미, 여흥을 위한 수단 정도라고 여긴다면,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런 문화 사역은 하나님 나라적인 것이 없고, 따라서 오래 갈 수 없다.

이런 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과 더불어 받은 소명에 따라, 각 문화 영역에서 전문가들이 되어야 한다. 문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들이 있어야 참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은 글 한편, 그림 한 장, 찬양 음반, 찬양 집회, 기독서적, 동영상, 문학의 밤, 기독교 유튜브, 기독 영화 한 편 등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더 깊은 신앙의 길로 이끌어준다.

교회는 이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의 활동을 넓게 지지해 나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되며, 지성인과 시민들에게까지 폭을 넓혀 나갈 수 있도록 층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런 지지기반이 없으면, 크리스천인 전문가가 아무리 능력을 지닌다 해도 한 사회속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전문가를 폭넓게 지지하는 교회의 관심과 지지가 있을 때, 진정한 문화 변혁이 이루어진다.

신실하게 이런 문화 변혁 활동을 하는 크리스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세력들도 크게 나타나 결국 세상은 끝까지 영적인 전쟁터일 수밖에 없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전쟁터에서 깨어 진정한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일에 피흘리며 묵묵히 감당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문화 변혁 사역을 하기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에 우리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이 일을 꾸준히 진행해 나가므로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해야 한다.

주님께서 ‘문화의 주님’로 임하셔서, 그런 노력을 의미 있게 보시며 인정하시고 위로하실 것이다. 우리의 본 무대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문화 활동은 하나님의 손으로만 온전함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 사역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첨병들이다. 학문과 문학, 문화 사역은 바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가 사역해야 할 장이며, 이는 우리의 삶이 주께 드려지는 합당한 산 제사이기 때문이다.

이효상 원장(근대문화진흥원, 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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