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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2017년 8월 11일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소위 ‘막말 폭탄’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때였다. 드레스덴의 프라우엔(자유)교회 앞 광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때 나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한 장면이 있었다. 광장 한 모퉁이에서 누군가 ‘노 워 인 코리아(No War in Korea, 한국에서 전쟁은 없어야 한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무심히 그 앞을 지나갔지만, 한국인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다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랄프라는 이름의 독일 언론인으로 프라우엔교회에 출석하는 크리스천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90% 이상 파괴됐던 드레스덴의 참상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접하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광장으로 나왔다고 했다. 낯선 누군가가 크리스천의 양심으로 한반도를 위해 광장에 선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드레스덴의 랄프’를 만난 지 한 달여 만에 나는 한국의 한 모임에서 또 다른 랄프를 만났다. 독일 드레스덴의 기독교 단체 대표인 랄프는 위기의 한반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강한 영적 부담감을 안고 2017년 9월에 한국에 왔다. 그는 드레스덴 출신으로 독일 통일의 전 과정을 지켜봤다면서 한국의 통일이 독일의 경우와 같이 전혀 예기치 않은 가운데 닥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독의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서독 사람들보다 더욱 통일을 갈구하며 기도를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한반도에서도 북한의 ‘숨겨진 복음의 사람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히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코 그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랄프는 내게 독일어책 한 권을 보여줬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까지 38일간의 기록을 일자별로 담은 ‘자유와 통일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요아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 등 독일 통일을 지켜본 80여명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까지 38일간의 여정을 일자별로 따라가 보면 한 가지 뚜렷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바로 ‘독일 통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낭만적인 영적 문구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史實)이었다. 80여명의 증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그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통일은 전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누구도 베를린장벽이 그렇게 무너지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하셨다. 독일 통일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디자인하고 진행하신 일이었다. 수많은 독일인이 하나님이 입안한 계획을 성실히 수행했다. 동서독 정치인들도, 고르바초프도, 생명을 걸고 거리에 나선 무명의 사람들도 모두 통독이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수행자들이었다.



이후 꽤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내가 섬기는 기록문화연구소에서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인 2019년 11월 9일 이전에 ‘독일 통일, 자유와 통일의 기적’이란 이름으로 한국어 번역 책을 내게 됐다. ‘독일 통일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야말로 이 책을 한 단어로 설명하는 문장이다. 한반도 통일도 독일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선물로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광장에 서고, 기도하며 행동했던 ‘두 랄프’로 인해 한국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현재 독일 전역에는 랄프처럼 한국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5000명 이상 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통일을 위해 촛불 기도를 드리며 거리를 행진했던,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통일의 기쁨을 누렸던 독일인들을 생각한다. 더불어 선물처럼 주어질 한반도 통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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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0-29 07: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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