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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단 규정 신중해야 한다

- 한창환: 기독교방송 발행인/대표. 사)한국신문방송협회 대표회장

편집국|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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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환 발행인/대표. 

올 9월에 개최된 각 교단 총회에서는 유독 이단결의가 많았다. 건전한 교리를 따르면서 신앙 생활하는 정통 교회 성도들의 신앙 보호를 위해서는 당연히 이단은 배격해야 옳은 일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이단이 득세하여 매우 혼탁한 상황에 놓여 있고 이로 인해 성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단자란 구원받지 못한(못하는) 자들로서 양의 탈을 쓰고 순진한 양들(성도)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한다. 이단자들은 애초부터 거짓 선지자들로서 이들은 창세전부터 구원이 예정되지 못한 자들이다. 물론 구원이 예정된 자들 중에서 잠시 미혹되어 이단에 빠질 수는 있다.그러나 이들은 나중에 회개하고 바른 정통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단이란 구원받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자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단 규정은 정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특히, 목사나 성도에게 있어서 이단 규정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단 규정을 받은 당사자가 목회를 못하거나,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정도가 아니라 인격적 살해를 당해 교계에서 매장당하는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물론 이단 규정을 받은 대상들 가운데는 카리스마(?)가 대단하여 오히려 교세를 크게 불리는 이들도 허다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소위 이단연구가들의 연구 결과물을 자신이 소속된 노회나 또는 다른 노회를 통해 총회에 헌의한다. 헌의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검증을 거치지만 자파의 교리적 잣대나 감정에 의해 이단성 또는 이단으로 낙인찍는 일이 많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9월 교단의 정기총회에서 총회 기간 중 총대들의 순간적 감정이나 순간적 판단에 의해 너무 쉽게 이단으로 규정해 버린다.

필자는 목회자가 아니지만 이단연구나 규정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이단연구가들이나 교단총회에서 이단을 연구하고 규정하기 전에 반드시 연구시비 대상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전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단 규정은 신앙적, 종교적 측면에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는 사람을 죽인 명백한 살인자라 할지라도 3심의 재판 기회를 통해 진술과 변론의 기회를 주고, 또는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법리적 판단을 청구할 수도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고 이를 국가가 수용해 준다. 때로는 살인자가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을 때는 국가의 예산으로 살인자에게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 주어 살인자의 반론권을 보장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목사 장로들로 집단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교단들의 총회나 또는 이단 연구가들은 이런 기회를 거의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든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이단시비 대상자들을 조사하고 연구할 때 선도나 교화(돌이킴)의 목적을 우선으로 하여 기회를 준 후 최종적으로 이단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일반 사회에서는 잘 알다시피 형이 최종 확정된 이후에도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에게 교화 목적으로 각종 소양 교육을 제공하고 때로는 사회 복귀와 적응에 필요한 각종 기술교육도 제공해 준다. 그런데 교회(교계)는 이런 노력이 거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단이라는 굴레를 씌워 인격적 살해를 한 후 영원히 매장시키려는데 급급하다.

교회는 이단시비 대상자들에게 건전한 교리를 갖도록 노력하고 지도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진짜 이단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이들이 거짓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이단의 정체를 정확히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위장(고후11:14)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양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쉽게 분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단으로 지목된 사람들이나 이단시비 대상자들을 정통 교회로 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 회개하겠다고 해도 막는다. 받아주지를 않는다. 대부분 이런 흐름이다. 물론 개종 사역을 열심히 하는 이단 연구가들도 더러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 지엽적인 문제 또는 신학적 해석이나 견해 차이를 가지고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삼위일체나 성령론, 구원론, 종말론에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세계 정통 교회는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인 위 내용들에 대하여 각 교파마다 약간의 해석과 견해 차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원론에 있어서 장로교와 감리교(알미니안) 와는 많은 해석차이기 있다. 또 구원론과 성령론에 있어서 장로교와 순복음 등 오순절 계열과 비교하면 많은 견해차이가 있다. 만약 이런 견해 차이를 무시하고 자신이 속한 교단의 교리적 잣대로 상대를 판단한다면 서로 이단이라는 결론이 된다. 우스운 일이다.

특히나 삼위일체에 대한 논란은 교회사적으로 끊임없는 논쟁들이 있어 왔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의 존재 방식이나 형태를 설명할 때 현재까지는 신학에서 삼위일체(우리나라는 한문적 용어 채택)라는 용어가 최상의 표현이지만, 이것 또한 완벽한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세계 교회사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의 논쟁이 가장 많았었다. 이 때문에 정통 교회들끼리 서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삼위일체 문제 (필리오케 논쟁:성령발출설) 때문에 하나였던 교회가 동서로 갈라져 둘이 되면서 교회 분열이 되었고 지금은 수없는 교파들로 분열되어 있기도 하다.

올 9월 들어 교단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대상자들 가운데 모 이단연구 단체와 그 단체에 소속된 000인사가 모 교단으로부터 이단 규정을 받았다. 이단 규정 받은 핵심 내용은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 논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감정 싸움의 촉발로 생겨난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래 이 이단연구 단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단을 연구하고 있는 한인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들로 감정싸움이 되어 해체 수순을 밟았다가 두 개의 단체로 쪼개졌다. 즉 이단연구가들끼리 갈라진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계시록, 삼위일체 문제 등을 빌미삼아 서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은 이번에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에서 상대 단체의 모 인사를 공격하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모 인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한 교단을 통하여 헌의하였고, 그 교단은 드디어 상대 단체와 000인사를 이번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은 누가 봐도 서로 감정싸움에서 비롯된 결과물 이라는 의혹이 짙다. 형식적으로는 신학적 논쟁의 해석상 빌미가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의 논란일 뿐이다. 삼위일체란 100% 완벽한 답은 신학적으로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최상의 표현이 삼위일체이다.

해석상 문제는 다수의 해석과 소수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무조건 다수의 견해라고 해서 정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모 이단연구단체의 이단 시비는 신학적 이해의 미흡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단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참여금지 정도로 판단한 후 잘 설득하고 가르친 후 그래도 수용하지 않으면 충분한 검토를 통해 규정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규정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단 보다는 이단성이나 참여 금지 등으로 규정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선도적 차원의 혜량도 필요해 보인다. 자파의 교단에 소속한 목회자를 공격하였다고 해서 이단의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몇년전 한국의 대표적 이단연구가인 모 목사가 모 연합단체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받은 일이 있다.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세계 교회사적으로 가장 사악한 이단”이라는 단서까지 달아 규정하였다. 진짜 이단을 안다면 이런 표현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속한 교단(대형)에서는 신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모 목사를 지금까지 보호해 주고 있다. 만일 진짜 교회적으로 가장 사악한 이단이라면 그런 사악한 이단을 감싸고 있는 그 교단도 사악한 이단이 된다는 말이 된다. 말이 안 된다. 그 교단이 사악한 이단인가 말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당시 모 연합단체의 대표회장과 이대위에 포진된 인사들은 이단으로 규정받은 이 인사와 척을 진 인사들로 구성되었었다. 이런 점에서 모 인사에 대한 당시의 이단 규정은 바른 이단 연구라고 말할 수 없다. 한국교회내 무분별한 이단 규정은 개혁주의 신학 사상에 반하기도 한다. 개혁주의사상 기반을 세운 종교개혁자는 칼빈이었다. 칼빈의 무조건적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등은 칼빈의 핵심 교리중 하나이다.

가령, 이단으로 규정받기 전 그가 구원을 받았다면 그가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중도에 잃어버릴 수 없다. 성도의 견인은 이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개혁주의의 핵심적 신학사상이다. 그런데 이미 구원받은 사람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다면 이런 얘기가 된다. 이미 예수를 믿었기에 받은 구원이 취소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는 큰 모순이고 개혁주의사상에 역행하는 사상이요 행위다. 따라서 이단 규정은 신중해야 한다 . 이단이란 구원 못 받고 지옥 가는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유명한 이단연구가로 활약했던 고인이 된 000인사는 “한국에는 구원받는 이단도 있다”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마도 전자에서 언급한 그런 이유 때문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 가 싶다.

구원은 어떻게 받는가? 쉽게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교리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인정하고 믿으면 된다. 초신자나 세상 지식이 부족한 장애인 또는 나이 많으신 노인 성도들이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해석을 하여 구원을 받으며, 유지되고 있는가?

이들 중 삼위일체를 정통적 신학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이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형태를 물어보면 대다수는 양태론 또는 삼신론 등으로 말하는 분들이 태반이다. 이들이 이렇게 이해하였다고 해서 이들이 이단이고 구원을 못 받는가? 편협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이제는 목회자들부터 성숙한 신앙적 인격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모순의 형태로 이뤄지는 연구나 결과는 없어야 한다. 저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감히 평신도로서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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