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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칼럼] 104회 통합측 총회에 바란다

- ‘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곧 한국교회를 죽이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논리적 윤리적 모순이며 죄악 중에 죄악이다

편집국|201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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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 목사 / <교회와신앙> 상임이사 

서론: 이 글이 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가 세습에 대하여 총 32회 글을 썼다. 다른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본 글이 필자의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아니 마지막 글이 되기 바란다. 필자가 2018년에 25회의 글을 모아. <김삼환-김하나 목사 세습은 제2의 신사참배>라는 이름으로 세습을 비판한 책을 출판하였고, 본 글이 104회 총회를 앞에 두고 쓴 7번째 글로 마지막 글이다. 본 글이 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은 이 번 104회 총회에서 세습 문제가 잘 해결되기 바란다는 말이다.

2019년(104회) 총회는 세습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해가 될 것을 확신한다.

2013년에 그렇게 압도적 표차로 만들어진 세습금지법인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명성교회(김삼환-김하나)가 초대형교회의 막강한 힘을 이용하여 승복하지 않고 대항하고, 나아가 불법적으로 세습을 단행하고, 이제 이 법 자체를 무위로 돌리려는 상황에 처해 있다.

통합 교단은 자랑스런 세습금지법을 제정하고도, 명성교회 때문에 힘든 길을 걸어왔지만, 그러나 통합 교단이기에 공룡 같은 명성교회를 잘 견디어 오늘에 이르렀고 이제 승리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법리부서 2개(재판국과 규칙부)는 세습금지법을 지키고, 김삼환-김하나 목사의 세습이 잘못임을 선명하게 밝혔으며, 재판국의 판결은 헌법위원회의 세습옹호의 내용까지 포함한 포괄적 답을 제시하였다.

2018년에는 3개의 법리 부서(재판국, 헌법위원회, 규칙부) 모두 다 명성측 손을 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는 이 세 법리부서의 결정을 거부하는 다수의 의로운 총대들에 의하여 그것들이 다 뒤집혔고 재판국으로 결국 재심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2019년에는 180도 달라졌다. 비록 세 부서 중에 헌법위원회는 또 명성교회 측 손을 들었으나, 다행히 임원회가 그것이 103회기 총회 결의에 반한다는 이유로 홀딩하고 있는 사이에, 재판국은 명성교회 세습이 잘못임을 밝혔다.

먼저, 지난 8월 5일에 재판국은 만장일치로 김하나 세습이 위법임을 판결하여 기적적으로 교단과 한국교회 그리고 세상에 ‘한국교회가 살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법리 부서인 규칙부에서도 명성교회에 불리한 결정이 내려졌다. 2018년에 총회에서 거절된 문제를 임원회가 또 다시 규칙부로 넘기자, 규칙부 임원분과에서는 전년도와 유사한 결론을 내려 본 회의에 내 놓았지만, 규칙부 전체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하여 그 안을 부결시켰다.

“마) 서울동남노회 직전 노회장 고대근 목사가 제출한 ‘헌의위원회 임무 등에 대한 재 질의 건(2018.10.24.)’은 임원분과에서 해석한 해석(안)은 채택하지 않고 제103회 총회에서 처리된 사안이므로 반려하기로 하다.”

위 결의를 보면, 같은 문제를 또 다시 총회에서 취급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후로 서울동남노회는 물론 어떤 노회, 누구라도 이 사안에 대하여 다시 질의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그 중에도 더 감사한 점은, 재판국 판결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동안 명성교회 세습에 대하여 옹호하던 헌법위원회나 세습 옹호자들이 제기한 핵심적 문제들을 대부분 변증하였다는 점이다.


본론: 104회 총회는 교단과 한국교회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기회이다.

1. 세습금지법이 걸어온 험난한 길.

2013년 예장통합 총회 시(제99회, 명성교회) 교단과 한국교회와 나아가 세상까지 최대의 관심사는 ‘통합 교단이 과연 세습금지법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당시 세습방지법을 헌의한 노회의 숫자는 무려 7개 노회였다. 서울노회(정달영 장로), 경기노회(권영삼 목사), 대전노회(김기 목사), 순천노회(류보은 목사), 대구동남노회(박희종 목사), 경서노회(곽금배 목사), 평양노회(정대경 목사)였다.

당시 김삼환-김하나 목사는 세습을 안 한다고 약속하고, 또 당사자들은 원하지 않는 세습인 것처럼 하면서도 한 편으로 세습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가 시무하는 명성 교회에서 개최하는 총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상상하지 못할 870:81이라는 압도적 표수로 세습금지법이 통과되고 말았다.

그동안 사실 때문이었든, 오해 때문이었든, 모함 때문이었든, 말할 수 없는 조롱과 비난을 받아오던 한국교회가 세습금지법을 만들고 모처럼만에 일반 언론들로부터 넘치는 칭찬을 들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후 6년이 지났는데 세습금지법이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것은 김삼환 목사가 ‘나는 세습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세습을 위하여 노력하고, 결국 불법적으로 세습을 단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얽히고설킨 세습금지법이 지난 2019년 8월 5일에 총회 재판국은 만장일치로 김하나 목사의 세습은 불법이라고 판결하게 된 점이다. 이 판결로 인하여 교단은 물론 교계와 세상에까지 기독교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음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확신한다. 104회 총대들은 이제 이 번 총회는 이 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역사적 순간이란 점을 인지하고 참석해 주기 바란다.

2. 무엇이 김삼환 목사로 세습에 이토록 집착하여 한국교회를 어렵게 하는가?

세상에는 너는 손해가 되어도 나에게만 유익한 길이 있지만 나는 손해가 되어도 너만 유익하게 하는 길도 있다. 또한 나도 너도 다 해로운 길도 있고 반면에 나도 너도 다 유익한 길도 있다. 나와 너 모두 해로운 길이 최악의 길이라면 나와 너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길이 최선의 길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명성교회 김삼환-김하나 목사의 세습은 어디에 속할까? 물어볼 필요도 너와 나 모두를 다 해롭게 하는 최악의 길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로, 천 만의 하나로, 세습이 김삼환-김하나 목사에게 이롭다고 하여도 세습을 철회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세습은 한국교회를 해롭게 하고 세습하지 않으면 그것이 한국교회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법적인 세습을 단행하여 교단과 한국교회를 수렁에 빠지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과연 무엇 때문인지 알고 싶다. 명성교회 내부의 비자금 문제를 비롯하여 믿고 싶지 많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루머처럼 떠돌고 있지만, 실제로 필자가 모르는 무슨 숨은 이유가 김삼환 목사와 명성 교회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교단이 해롭게 된 결과는 나타났다. 지난 2년 동안에 통합측 교단 교인의 숫자가 17여만 명이나 줄었다는 통계가 그 하나라고 본다. 세습 지지파는 세습을 반대하여 생긴 결과라고 주장하고, 세습 반대파는 옹호자들과 김삼환 목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세습 문제도 전도의 문을 좁히는데 일조하였다고 보는 관점은 일치한다.

필자는 명성교회 세습은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서 큰 죄를 지은 것 외에도, 명성교회 성도와 김삼환-김하나 목사도 손해를 보고 있고 앞으로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는 교단과 한국교회의 전도의 문을 좁혔고, 한국교회의 윤리를 땅 바닥에 떨어트렸다. 어떤 이단이 주는 손해보다 더 큰 손해를 교단과 한국교회에 주었다. 아니 모든 것을 다 잃어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교단은 양분화 되고 있다. 명성교회는 엘리트와 청년들 중심으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말이 들리는데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삼환 목사를 무엇이 그렇게 완고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필자의 분석이 다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 편에서 분석하면 세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아부하는 측근들의 말만 들었을 가능성이다.

김삼환 목사님을 위하는 한 목사가 측근 목사에게 ‘김삼환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으면 좋겠는데, 말씀 좀 드려주세요’라고 하자, 그 분은 ‘아무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때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김삼환 목사 주변에 측근들이 있을 것이고 그 측근들의 말은 들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김삼환 목사 주변에는 세습을 옹호하고, 다 김삼환 목사가 옳다고 찬사를 보내는 분들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라 생각하였다.

필자를 포함하여 어떤 사람이라도 김삼환 목사의 위치에 있다고 할 때, 쓴 소리하는 충신을 가깝게 하기보다 단 소리하는 간신배를 더 가깝게 할 가능성이 크다. 웬만하여 쓴 소리하는 충신을 가까이 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를 가깝게 하고,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를 가깝게 하면 전술적 지혜라도 얻는 것처럼, 반대자도 가깝게 하면 유익할 터인데 김삼환 목사 주변에는 혹시 아부꾼들만 득실거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들에게 속았기에 이번에 재판국과 규칙부에서 참패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둘째, 그동안 김삼환 목사가 왕처럼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었던 과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자의 윤리 기준으로 가난한 자를 바르게 보기도 힘들고, 가난한 자의 윤리 기준으로 부자를 이해하고 바르게 평가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가난한 시절을 겪은 부자는 노력만하면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가난한 자가 부자를 이해하기는 더 어려울지 모른다.

김삼환 목사는 두 가지 주장을 다 하였다. 대형교회는 ‘십자가’의 길이라고도 하고 ‘왕과 같다’고도 하였다. 김삼환 목사는 친히 "엄청난 부와 권세를 가진 교회가 왕실처럼 대를 이어 가려는 데 문제가 있다."라고 하여 그의 입으로 세습을 왕의 대물림에 비유하였다. 십자가의 길이란 주장은 객관적으로도 옳은 말이 아니지만, 세습을 하기 위하여 급조한 임기응변이라고 볼 때, 대형교회 목사는 왕과 같다는 말이 가장 솔직한 주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왕 같은 김삼환 목사의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르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 그 머슴의 마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김삼환 목사는 이미 과거 목동 시절의 은혜를 잊고 실수한 다윗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누가 보아도 김삼환 목사는 머슴이 아니라 왕이다. 왕은 무엇이나 그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누가 왕의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아무도 꺾을 수 없다. 필자가 가끔 만난 사람들 중에 김삼환 목사를 “어르신”(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김삼환 목사의 고향인 안동 지방의 관습이라고 하지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의 돈의 힘은 가히 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김삼환 목사 앞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가 아닌가 염려스럽고, 왕 같은 그의 과거가 오늘 이렇게 세습 문제 앞에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 주된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왕의 자존심이 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것이 자신과 한국교회에 어떤 손해가 되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금전적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길로 가고, 자존심이 짓 밟혀도 그 자존심을 접고 말씀의 길로 가는지를 보아야 알 수 있다.

실제로 가장 값없는 것이 가장 값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존심이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고, 교회를 망가지게도 하고, 심지어 전쟁도 하고, 하나님의 사람이요,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을 보면, 자존심 중심으로 사는 것보다 더 미련한 길은 없을 것이다.

셋째, ‘교인이 떨어질까’ 염려하다가 이렇게 되었을 가능성이다.

누구나 돈 외에도 자식을 우상시 할 가능성이 제일로 크듯, 목사라면 교회와 교인들을 우상시할 가능성이 제일로 크다. 세습 문제가 생겼을 때, 세습하지 않는 것이 명성교회에도 이롭고, 김삼환 목사와 김하나 목사에게도 다 이롭다고 생각했다면 세습을 하였을까 하는 점이다. 온 한국교회가 “하라. 하라.”고 하여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습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계산과 확신을 가졌기에 세습을 단행하였고, 가진 어마어마한 힘으로 한국교회가 다 반대를 하여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김삼환-김하나 목사는 세습하는 것이 자신들은 물론 교인들을 보존하는데 최선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갈수록 내부와 외부의 저항은 심해졌고, 따라서 교인들은 더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왕 같은 김삼환 목사님의 자존심이 구겨졌고, 측근들은 김삼환 목사가 옳다고 하여 힘을 공급해주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세습 반대자들을 ‘빨갱이’, ‘동성연애자’, ‘아나니아와 삽비라’ 또는 ‘사탄’과 ‘이단’으로 몰아가는 또 다른 죄를 짓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라도 돌이키는 것이 김삼환 목사에게도 한국교회에도 이롭다고 본다. <하만>이 <모르드게>를 죽이려고 스스로 세운 그 장대를 오늘 치웠다면 내일 거기에 자기 목을 매지는 않았을 것임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3. 세습 옹호자들은 ‘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곧 한국교회를 죽이는 것’처럼 주장한다.

세습 옹호자들은 그동안 과거에 명성교회가 한 일과, 현재 하고 있고, 앞으로 하려고 하는 업적들을 열거하고, ‘명성교회가 무엇을 잘못하여서 이런 교회를 죽이려고 하느냐’고 호소하고 있으며, 명성교회를 죽이는 것은 곧 한국교회를 죽이는 것처럼 주장한다. 필자에게 직접 ‘왜 살리는 일을 하지 않고 죽이는 일을 하냐’고 따져 묻는 세습옹호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같은 의미의 말이라고 본다. 무엇이 진실인지 생각해 보고 비판해보겠다.

첫째, 이는 명성교회를 한국교회로 보는 혼돈에서 나온 주장이다.

우선 명성교회가 주장하는 대로 그 교인의 숫자가 10만 명이라고 인정해주자(거품이 너무 많은 숫자라고 보지만). 명성교회가 세계 장로교회 중에 가장 큰 교회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리는 힘과 비례한다’고 믿는 인간의 속성상 그 위상에 압도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통합 교단의 1만여 교회 중에(정확하게 9190개 교회) 하나의 교회다. 김삼환 목사는 또한 2만여 명의 목사 중에 한 명의 목사다. 교인의 수로 보아도 그렇다. 통합 교단의 교단 숫자는 2018년 말 기준으로 255여만 명으로 밝혀졌다. 명성교회는 그 중에 하나다. 명성교회는 교회 위의 교회가 아니다. 교회 위의 교회로 인정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교회 위의 교회로 군림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명성교회를 살려야 한국교회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살려야 명성교회도 사는 것이다. 세습 문제로 인하여 명성교회가 본 손해를 가지고 세습 반대자들을 죄인 취급하려고 한다면, 그보다 초대형 교회인 명성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가게 한 그 죄가 더 큰 죄가 아닌지 묻고 싶다.

필자는 명성교회 죽이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 살리기를 하고 있다. 필자는 그것이 결국 김삼환 목사까지 살리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필자를 비난하는 것은 도둑을 잡았더니 도둑을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이 들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을 감수하고 이단을 연구하여 한국교회를 지키고 있는 필자를 보고 이단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단옹호자들과 같다.

둘째, 이는 명성교회 우상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불법을 저지르고 세습을 단행한 명성교회를 살리는 것이 마치 교단과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처럼 하는 것은 교회론으로 봐도 큰 문제이지만, 이는 곧 ‘돈 우상화’이고, ‘김삼환 우상화’에서 나온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명성교회도 교회다. 물론 소중한 교회다. 단 교단 법을 누구보다 더 잘 지키고 대형교회답게 더 모범을 보였다면 소중하게 취급해야 할 교회가 분명하다. 필자는 그동안 명성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하여 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고, 그 순수성이 얼마나 높은 것이었는지 분석하고 싶지 않다. 남의 진실을 쉽게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면 역사 속에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온갖 꼼수로 세습을 하려고 하고, 결국 세습에 성공한(?) 그 하나만으로도 과거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다고 하여도 한국교회를 살리려는 교회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죽이려는 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은 이 민족에 이승만 대통령처럼 큰 공로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부정선거 등으로 표출된 마지막 실수 때문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세습옹호자들과 김삼환 목사 옹호자들은 “과거에 명성교회는 이러이러한 훌륭한 일들을 했다. 그러니 명성교회를 해롭게 하지 말고 세습을 인정해주자”라고 줄기차게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그들이 열거하는 일들이 명성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한 진정한 선들이었다면, 오히려 쉽게 세습을 취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선이라고 하는 그 선마저 수단적 선일 가능성이 커진다. 선이란 선이 목적일 때만 가치 있는 진짜 선이며, 수단적 선은 드러난 악보다 더 위험한 악일 수 있다. 김삼환 목사는 교단이 만든 세습금지법을 어기고, 가진 어마어마한 힘으로 세습을 단행하여, 그 하나의 악이 다른 수 백, 수 천의 선까지 의심 받게 하였고, 결국 맛있는 음식에 치명적 독극물을 한 방울을 떨어트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고 만 격이 되었다.

셋째, 이는 근시안적인 판단에서 나온 잘못된 주장이다.

좁은 사람은 무엇이나 좁게 본다. 그는 비록 선을 말하지만 좁게 보고 선을 주장하고 구한다. 그것이 분명히 선인데, 적극적으로 보면 때로 그것이 선이 아니라 악인 경우가 적지 않다.

비록 명성교회를 해롭게 하는 것은 한국교회를 해롭게 하는 것이란 주장이 주관적으로 진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명성교회 하나만 보고 한국교회를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하는 근시안적인 판단에서 나온 주장이다.

4. 104회 총회에서 세습 문제에 대하여 무엇을 경계해야 할까?

첫째, 세습금지법 자체를 폐지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제일 먼저 세습금지법을 완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 진주남노회(이성철)와, 서울 동북노회(김병식)가 그렇게 헌의하였다. 물론 다른 두 노회의 헌의는 다른 것이다. 존속 내지 수정을 헌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정의 필요가 있다고 하여도, 폐지하지 않으려는 교단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한 쪽을 쉽게 선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수정도 세습금지법이 정착된 후에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의 자들이 아무리 지혜를 잃었다고 하여도 폐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분위기를 위하여 헌의한 듯하다. 왜냐하면 2/3 찬성을 받아야 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습 옹호자들은 분명히 1년 연구하기로 하자고 하여 과반수 동의를 얻어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는 이것도 철저히 막아내야 세습금지법을 거스르려는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명성교회는 또 다시 1년의 시간을 벌게 되고, 연구 기관에 온갖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며, 다른 편으로는 재재심을 요청하여 이전보다 더 재판국을 압박하려는데 총력할 것이다. 그러면 명성교회가 걸어갈 공간이 다시 넓어질 것이며, 결국 총회는 더 혼란스러워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총대들은 이것을 철저히 경계해야만 한다.

둘째, 재판국 판결을 총회 현장에서 거부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2018년(103회) 총회에서 849:511 표결로 명성의 세습이 잘못되었음을 결의하였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재판국의 보고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를 결정한 가결이 아니었다. 헌법위원회의 보고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헌법위원회의 보고를 받으면 명성교회 세습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받지 않으면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것이 된다는 전제 아래 한 투표였음을 명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총대들은 재판국 판결을 849:511표로 거절하였다고 오해하고 있고, 세습옹호자들은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 오해를 근거로 자기들에게 이로운 대결을 하려고 할 것이다.

재판국 보고는 그대로 받는 것이 법이다. 그대로 받아야 하고 시행만 남게 된다. 단지 명성교회 측에서 할 수 있는 남은 길은 오직 하나 재재심을 요청하는 것뿐이다.

셋째, 세습 옹호자들의 재재심 요청을 경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어디를 보아도 재재심 요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총회에서 명성측이 1년을 더 연장하여 세습을 유지하고, 재재심에서 뒤집으려는 그 노력을 무위로 돌려야 한다. 그러면 총회는 또 세습 문제로 7년 째 또 다시 많은 힘을 소진해야 하고,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이 문제처럼 공격하기 좋은 타켓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 재재심을 막아야 한다. 교회를 공격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는 이단들과, 타종교와, 그리고 반교회 세력들로부터 공격의 빌미 자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 통합교단은 한국교회 최고의 희망이다.

필자는 ‘기독교가 윤리적 종교는 아니다’라는 말이 원칙적으로 옳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보수주의자들과 비윤리적인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비윤리적 행태를 피해 가는데 이 주장을 이용하는 점을 보면, 오히려 그 속에 더 큰 악이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윤리적인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윤리적이지도 못하면 그 기독교는 그 자체가 이미 죽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적 종교라고 하면서 윤리적이지도 못한 교회에 어떤 영성을 기대할 수가 없다.

‘수학은 덧셈만이 아니다’라고 할 때 그 말은 맞다. 곱셈도 해야 하고 2차 방정식 3차 방정식도 해야 하고 그 이상도 해야 한다. 그런데 덧셈도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에게 곱셈과 그 위의 수학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다.

지금이라도 교회가 세상이 놀랄 정도의 윤리성을 회복하면 한국교회는 살아난다. 한국교회를 살리기 원하는 것이 명성교회의 진심이요, 김삼환 목사의 진심이라면, 가난한 교회를 돕겠다고 쇼(?)를 하지 말고, 세습을 취소하고 기독교의 윤리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안 되면 총회가 나서서 세습옹호자들의 시도를 깔끔하게 처리하여 기독교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 교단과 함께 하신 것처럼 함께 하실 것을 믿고 감사한다.

그렇다면 통합측의 윤리적 수준은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하는가? 통합측도 갈수록 도덕성이 많이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의 300여 교단 중에 가장 의로운 교단이라고 인정한다.

이 세습 금지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감리교는 세습 금지법을 통합교단보다 먼저 만들었지만 대형교회들은 다 세습하여 한국교회에 실망감을 주었고, 합동측 교단은 세습금지법을 만든다고 하였지만 결국 즉시 취소하고 만 것을 보면 세습금지법을 만들 희망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통합교단은 세습도 가장 조금하였고, 세습한 교회들도 대부분 세습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것도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하였다. 그런데 이 세습금지법이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라는 거인을 만나 암초에 걸려 이렇게 시달리고 있지만, 올해는 세습금지법을 완결하는 최고의 해가 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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