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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칼럼] 칼보다 펜이 강하다

편집국|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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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페이스북 이윤근 목사, 쓴소리 칼럼에서 "권력을 지닌 자들이 칼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되지만, 언론도 펜을 잘못 사용하면 나라와 기업, 경제까지 망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

▲ 이윤근 목사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영국 BBC방송은 이 말의 출처를 추적했고 19세기의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리튼(1803-1893)이 원조라고 밝혔다. 불워-리튼이 1839년 발표한 역사 희곡 "리슐리외 추기경'을 보면 주인공이 하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이 확인된다. 리슐리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재위 기간에 재상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 희곡에서 암살 음모를 적발했는데도 가톨릭 사제의 신분으로서 적들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를 수 없는 상황이었던 리슐리외는 시중을 드는 하인이 "그렇지만 주인님은 지금 다른 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펜은 칼보다 강하네. 칼을 치우게. 국가는 칼 없이도 구할 수 있네"라는 대사를 읊는 것으로 돼 있다.

쓴소리/ 칼보다 펜이 강하다

이스라엘이 로마군에게 국토를 빼앗겼을 때 이스라엘이 로마에 요청하기를 아주 작은 마을 하나를 돌려달라고 하였는데 그 마을은 경제성이 전혀 없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소중한 교육의 마을이었다. 로마는 아무 조건 없이 작은 마을을 내어 주었는데 이스라엘 원로들은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우리는 칼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우리는 펜으로 나라를 되찾는다.” 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교육열은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노벨상을 많이 받은 나라가 이스라엘이 아닌가? 펜은 나라를 되찾는 원동력도 되지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칼과 펜을 비교해보면 닮은 점이 있다. 끝이 뾰족하다는 점이 닮은 것이다. 칼은 덩치가 클 뿐이지 끝이 닮은 것은 같다. 칼을 쓰는 자들도 칼 쓰는 법을 익혀서 정신을 집중하지 아니하면 상대의 칼에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집중하지 아니하면 칼날이 무디면 사람을 벨 수 없는 것과 같이 펜이 무디면 사람의 심령을 꿰뚫을 수 없다. 펜의 힘은 무섭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총으로만은 한계가 있음을 알고 펜 끝으로 완성된 주체사상을 전 인민들에게 주입식으로 교육해서 공산주의자들을 만드는 힘이 있다. 공산국가만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도 주체사상을 뿌려 그 사상을 전파하여 공산주의를 신봉하게 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이다.

촌 절 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하는 말은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간단(簡單)한 경구(警句)나 단어(單語)로 사람을 감동(感動)시키고 또는 사물(事物)의 급소(急所)를 찌름의 비유다. 이는 한 치의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간단한 말로도 남을 감동하게 하거나 남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촌철'이란 손가락 한 개 폭 정도의 무기를 뜻한다. 남송에 나대 경(羅大經)이라는 학자(學者)가 있었다. 그가 밤에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나눈 담소를 기록(記錄)한 것이 “학 림 옥로”이다. 거기에 보면 중고선사(禪師)가 선(禪)에 대해 말한 대목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는 선(禪)의 본바탕을 파악한 말로, 여기에서 '살인'이란 물론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속된 생각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름을 의미(意味)한다.

번뇌(煩惱)를 없애고 정신을 집중하여 수양한 결과 나오는 아주 작은 것 하나가 사물(事物)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감동(感動)시킬 수가 있다. 단 한마디 말로 죽음에서 건지기도 하고 죽게도 하는 것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위력(威力)이다.

이번의 촛불시위에서도 보듯이 총칼로 그 많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 수 있는가?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문이 국정농단을 보도하니 국민의 분통과 함성이 봇물 터지듯 터져 화가 치밀어 집안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어린 자녀들까지 데리고 거리로 몰려나와 국민의 분통 함성이 청와대까지 들리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방송과 언론은 대포보다 힘이 강하다. 대포는 장거리 유도탄은 세계 어느 곳에라도 갈 수 있겠지만, 전달 매체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오늘의 언론은 초 단위에서 세계 어느 곳이라도 전달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문이나 각종 언론매체가 명심할 것은 펜을 올바로 사용하면 나라를 살리고 기업을 살리며 경제를 살릴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나라를 망치고 기업을 망치며 경제를 망칠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칼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펜도 신중하게 사용하여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 치의 혓바닥이 다섯 자의 몸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불이 전 산의 임야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고 말 한마디가 자신의 몸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칼이나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방향에 따라 화나 복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명언에 “말은 남을 웃길 수 있는 말을 하고 행동은 남이 입을 다물 수 있는 행동을 하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이나 그 글을 전달하는 매개체인 언론사의 사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고, 권력의 칼을 휘둘러 국민을 아프게 한다면 펜을 휘둘러 권력의 횡포를 막아야 할 사명이 펜을 다루는 사람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시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지혜와 처방하는 사리가 분명한 펜의 치료가 병행하여 건전한 국가와 사회를 이룩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권력의 칼 앞에 떠는 국민보다 펜의 해결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윤근 목사/ 의성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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