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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종파 초월한 연합, 민족의 독립 불 지피다

- 3.1운동 100주년 특집기획 ① - 역사와 의미

편집국|201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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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본지는 종파를 초월한 연합운동으로 민족 독립의 불을 지폈던 3·1운동의 의미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 이상규 고신대 명예교수ⓒ위클리굿뉴스  

삼일운동은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지 10년 만에 일어난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으로 우리 민족 근대사의 전환점이 됐다. 1919년 3월 시작돼 적극적으로 2개월, 광의적으로 1년 여에 걸쳐 전국적으로 그리고 거족적으로 전개된 항일 투쟁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한 거사였다.

이 항일투쟁에서 수만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1919년 한 해 동안 사망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구속자 4만 6,948명에 달했다. 파괴된 교회당 47동, 학교 2개교, 파괴된 민가 715호로 기록돼 있다. 정한경의 ‘조선 사정’에 의하면 그 피해는 박은식의 기록보다 많다.

이런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거사가 일어난 이유라면 항거해야 할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통치는 전 영역에 있어 무단 독제체제였다. 총독부는 최고 통치기관으로서 총독은 입법 사법 행정의 3권과 군사에 관한 전 권을 장악한황제였다. 총독은 자신의 명령을 제령(制令)이란 이름으로 발표해 법률을 대신하게 했다.

당시 각종 악법이 제정됐는데, 경찰서장의 즉결로서 조선인들에게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다는 '범죄즉결법', 조선인들에게만 적용되던 태형(笞刑)은 조선인의 인권을 유린한 무제한의 권력 행사였음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토지조사사업이란 이름으로 땅을 빼앗았고 회사령, 어업령, 공업령으로 민족자본을 수탈하고 경제적인 통제를 가했다.

특히 신교(信敎)의 자유를 유린하고 종교행사를 통제하고 감독했다. 성경이나 찬송 일부를 설교하거나 노래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기독교인들은 만세운동에 앞장섰고 기독교회는 만세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피해가 컸다.삼일운동 정신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2017년 3월 1일 타종기념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3·1 만세운동 연극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위클리굿뉴스
 

첫째는 저항정신이었다. 일제하에서의 굴욕과 수난, 폭력적 통제와 탄압, 신교의 자유마저 유린하는 처사에 대한 저항이었다.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현실적 고통이 거국적인 저항을 불러온 것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보다 앞서 현실적 압제가 저항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이유였다.

둘째는 독립정신이다. 일제의 조선 지배는 자유를 유린하는 정의롭지 못한 통치였다. 강한 자가 약자를 압제하는 것도 부정의이지만, 강한 나라가 약소국을 압제하고 자유를 유린하거나 통치하는 것 또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삼일운동은 부당한 침략과 포학한 식민지배에 대한 항거이자 자유와 해방의 요구였다. 독립정신이었다.

셋째, 애국정신이었다. 삼일만세운동은 애민 애족의 발로였다. 이런 점에서 삼일운동은 민족주의 운동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이 왜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성이 독립운동 저변의 정신이었고, 이것은 애국, 애민, 애족의 정신이었다.

넷째, 삼일운동은 연합정신이었다. 만세운동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유학생의 독립선언, 이보다 앞서 2월 1일 만주 길림에서의 '무오독립선언'이 있었고, 상해에서는 '신한청년당'이 조직되고 이들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송해 민족의 독립을 호소했다. 신한청년당의 선우혁은 국내로 들어와 기독교계 이승훈, 길선주, 양전백 등과 접촉하고 만세운동 세력과 교류했다.

기독교측 독립운동은 이승훈 중심의 평안도지방 장로교계와 서울의 감리교계 중심의 운동이 있었으나 상호 협력했으며, 하나 된 기독교계는 천도교측과 회합하고 만세운동에 협력했다. 2월 하순에는 학생 그룹과도 연합하게 된다. 그야말로 삼일운동은 종교적 신념을 달리하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가 연합한 운동이었다. 민족의 과제 앞에 종파를 초월한 연합운동이 삼일정신이었다.

오늘의 한국교회에도 불의와 부정의에 대한 항거, 자유와 정의의 추구, 북한 인민의 인권에대한 관심, 그리고 진정한 나라사랑,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연합하는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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