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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행복은 하나님이 보여준 기적” - 라이프오브더칠드런 프로젝트 ‘그룹홈’으로 웃음 찾은 케냐의 세 여성
  • 기사등록 2018-12-08 05: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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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와 비앙카, 제인(왼쪽부터)이 지난달 2일 케냐 리무르의 아파트에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이들은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그룹홈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행복을 되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여기 세 명의 케냐 여성들은 가난과 학대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기댈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다.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가 통했을까. 한국의 국제구호 NGO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공동생활가정 프로젝트인 ‘그룹홈’이 희망이 됐다. 서로에게 가족이 되자 행복한 일상이 시작됐다. 지난달 2일 케냐 리무르 카운티 카란지 마을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이들은 “지금의 행복은 하나님이 보여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 비앙카 이야기



비앙카 무토니(17·사진)는 불우했다. 2001년 무랑아에서 태어났다. 첫 번째 아빠는 세 살배기 비앙카와 엄마를 버리고 사라졌다. 엄마는 곧 두 번째 남자를 만났다. 비앙카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 폴이 태어나자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쳤다. 먹고살기 힘드니 아빠들은 도망치기 일쑤였다.



엄마는 남매를 데리고 큰이모가 있는 리무르로 이사왔다. 비앙카는 인근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주로 집에서 지냈다. 삶은 형벌처럼 가혹했다. 엄마마저 남매를 버리고 도망치자 정신병을 앓던 큰이모의 학대가 이어졌다. 남매는 임시보호소에 격리됐다. 돌봐줄 부모는커녕 먹을 것도 옷도 없는 신세였다. 그래도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끊게 해달라고 두 손을 모을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케냐 감리교단이 운영하는 학교인 리무르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며 희망의 길이 열렸다. 비앙카의 사정을 듣고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이 그룹홈에서 지내도록 배려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삶이 놀랄 만큼 달라졌다. 우선 학교 성적이 쑥쑥 올랐다. 2016년 리무르에서 가장 유명한 엘리트 여자 기숙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처음엔 전교 127명 중에서 20~30등 하더니 지금은 반에서 1등, 전교 2등으로 치고 올라섰다.



비앙카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녀는 “주님의 보살핌으로 끔찍했던 고통이 행복의 열매를 맺었다”면서 “착한 의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 실비아 이야기



실비아 이바라사(17·사진)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아빠는 엄마가 임신하자 집을 나갔다. 엄마는 2001년 캅사벳에서 실비아를 낳다 난산 끝에 숨졌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2014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실비아는 리무르의 큰이모(60)네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도 큰이모부(65)의 시중만 들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학교 담장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소녀의 손을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이 잡아줬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은 실비아를 리무르 아카데미에 입학시켰고 이후 고등학교에도 보냈다.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학교에 다니게 됐지만 실비아는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큰이모부가 매일 밤 실비아를 건드리며 욕정을 채웠다. 실비아는 밤마다 “하나님 절 죽여주세요”라며 울부짖다 지쳐 잠이 들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현지 조력자인 이태권 선교사가 제인의 상황을 알게 됐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은 실비아와 비앙카처럼 어려움에 처한 여자 아이들을 돕는 그룹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모 역할은 리무르 아카데미 여성 교장 제인 은조구(43)에게 부탁했다. 그게 2016년 1월이었다.



말없이 사람을 피하던 실비아는 그룹홈에 살면서 밝고 장난기 많은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어느새 그룹홈 맏이가 돼 의젓하게 동생들을 챙기기도 한다. 실비아는 “엄마 제인과 사랑하는 동생들이 있는 그룹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기적처럼 행복이 찾아왔다”고 감사했다.



▒ 제인 이야기



제인 교장은 오뚝이 같은 사람이다. 인생의 굴곡마다 기도로 이겨냈다. 1975년 나쿠루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녀가 열 살 때 숨졌고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았다. 제인 등 여섯 남매는 보육원에서 살았다. 가난과 멸시가 그녀를 짓눌렀다. 그럴수록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기도가 나락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6년 학교보조교사로 일하며 제인은 교육자로서의 달란트를 확신했다. 이듬해부터 4년간 교대를 다녔다. 신앙심 깊은 그녀를 돕겠다는 기독교인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2001년 교사자격증을 따고 이듬해부터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헌신적인 노력 끝에 2012년 리무르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초빙됐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아픔도 있었다. 2010년 백혈병 의심 진단을 받자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도망쳤다. 뱃속에선 딸 조안이 자라고 있었다. 병세도 악화됐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았다. 60~100달러에 불과한 교사 월급으로 딸과 함께 생계를 유지하고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봤다. 제인의 삶은 2014년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만나면서 크게 변했다. 2016년부터는 그룹홈의 보모를 맡아 보다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됐다.



제인은 기자와 만난 날 아침 비앙카와 실비아 등 그룹홈 아이들을 데리고 미용실을 다녀왔다. 레게머리를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를 더 이상 모른척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제인은 “어려운 시절을 겪어서인지 아이들을 돕다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면서 “하나님이 맺어준 그룹홈이 오래 계속돼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은 현재 케냐와 키르기스스탄 네팔 미얀마 필리핀 등 해외 5개 지역에서 총 8개의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금은 순수 민간 모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조진행 팀장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아동들과 보모의 이전 이력이 잘 맞물리면서 기적 같은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며 “아이들이 계속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관심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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