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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출신 명예도민 1호와 선한 사마리아인들

편집국|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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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 출신으로 명예경기도민 1호가 된 데지레 두와뭉구(왼쪽 두번째)와 가족들 
▲ 지난 21일 경기도 안산이주민센터를 방문해 박천응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산이주민센터 제공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 난민이 명예 경기도민증을 받았다. 경기도 안산에서 부인과 네 아이와 살고 있는 데지레 두와뭉구(41)가 주인공이다. 그가 난민 출신 명예도민 1호가 되기까지 목숨을 건 고국 탈출과 2년여에 걸친 가족 이산의 아픔이 있었다. 또 이 아픔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단계마다 극복하도록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들도 있었다.

데지레는 지난 18일 제 1회 ‘경기도민의 날’ 기념식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로부터 명예 도민증을 수여했다. 노란 동판에는 “귀하께서 우리도의 발전에 기여하신 업적을 기리고, 우리도와 맺은 인연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하여 도민의 뜻을 모아 이 패를 드립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데지레는 한국 입국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난민으로 인정받았으나 아직 영주권이 없는 상태다. 비록 명예 도민증일지라도 그에겐 한국이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느낌 자체가 소중하다. 경기도는 부룬디 출신 국내 커뮤니티를 이끄는 데지레의 리더십과 그가 속한 아프리카 전통춤 공연단 ‘임보넨자 드러머스’의 문화교류 활동을 공로로 인정했다.

지난 24일 금속 코일 공장 근무를 마친 데지레를 안산 다문화거리에서 만나 소감을 물었다. 그는 “큰 영광(Big Honor)”이라고 답했다. 데지레는 성공회 목사였던 부친의 9남매 가운데 막내로 부룬디에서 태어났다. 부룬디는 다수파 후투족과 소수파 투치족의 갈등으로 1990년대 대량학살을 겪었다. 이후에도 군부 쿠데타와 정적 암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데지레는 그곳에서 학살에 저항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2016년 6월 살해 위협을 당한 뒤 맨몸으로 고국을 탈출해 에티오피아와 홍콩을 거쳐 한국에 왔다. 부인 휴게트(38)는 1993년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후투족 대학살 현장을 목격했다. 진상규명을 바라는 마음으로 2014년 이 학살 장면을 공공장소에서 증언했는데, 2016년 기류가 바뀌어 역시 살해 위협을 받고 르완다로 도피했다. 당시 한 살이던 사무엘라(3)를 비롯해 아비가일(6) 사라(9) 달린(16) 등 네 아이는 엄마 아빠와 생이별해 지인 손에 맡겨졌다.

데지레는 고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때 “관(Coffin)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뒤에 가족과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으로 향해야 했다”면서 “비행기에서 잠들 수 없었고 기내식도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국에 왔다”고 회고했다.

데지레가 한국에 정착하는 데는 안산이주민센터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안산이주민센터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서울서남노회가 설립한 기관이다. 30년째 이주 노동자들을 돌봐온 박천응 목사가 다문화교회와 함께 이 센터를 이끌고 있다.
센터는 데지레의 일자리부터 알아봤다. 맨몸으로 빠져나왔기에 푼돈이라도 벌지 않으면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센터는 또 지난 6월 부인과 네 아이를 한국으로 초청하는데 드는 항공료 500만원을 대출 형식으로 중개했다. 대출금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 입주한 비영리 소액금융 봉사단체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한국에 아무 연고가 없는 데지레에게 500만원의 목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없다. 그래서 박 목사와 센터 실무자인 김문정 목사가 보증인으로 나섰다. 이 돈이 있었기에 데지레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지 2년여 만인 지난 8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눈물의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데지레가 매달 15만원씩 3년 조건으로 상환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어를 못해 일단 중학교 예비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달린을 위해 대덕전자와 한국이주민건강협회가 장학금을 내놨다. 미취학 아동인 셋째 아비가일과 넷째 사무엘라는 센터의 보육시설인 ‘코시안의 집’에서 돌봄을 받는다. 엄마 휴게트가 매일 두 아이를 맡기러 오는데 버스비 역시 없다. 그래서 센터는 또 엄마에게 매달 5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왜 이렇게까지 도울까. 박 목사의 대답은 이랬다.

“예수님도 난민이었어요. 헤롯왕의 영아 살해를 피해 요셉 마리아와 함께 애굽으로 갔는데 그때 애굽에서 ‘너희 나라로 가’ 이랬으면 어땠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못하고 헤롯왕 손에 돌아가셨을 거에요. 모세도 죽을 위협에 있다가 애굽 왕실에서 강가의 바구니를 거둠으로써 난민을 도와준 거죠. 모세를 살림으로 인해 한 사람이 아닌 한 민족을 살린 거잖아요. 교회 전도를 생각해 보세요. 결국 생명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성경대로 난민을 돕는 겁니다.” [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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