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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덕 목사 칼럼] 선하고 아름다운 연합의 축복은

- 사)한국신문방송협회 7월 월례회시 설교문 발췌

편집국|201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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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덕 목사>
기독교방송 방송위원장.
사)한국신문방송협회 상임회장.
▲ 유영덕 목사. 

요즘 정치계나 교계나 가정이나 사회를 보면 거의 모든 것이 자중지란(같은 편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각자 혼자 똑똑한 체, 잘난 체 해봐야 아무 유익도 없고 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연약합니다. 또한 연합하지 않고 분열하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연합하면 삽니다. 분열하면 망합니다. 이것이 인간관계요 사회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무하고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힘이 될 선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넘어지거나 외로울 때, 어려움 속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주셔서 인생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세 겹으로 만든 줄은 손상을 입더라도 오래 견딥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무한 인생을 더불어 살아갈 동무가 필요합니다.
 
 남을 시기함에서 비롯된 수고와 기술은 또 다른 사람의 시기를 사며 결국 평온을 앗아갑니다. 아예 사는 것에 무관심하여 자멸하는 우매자도 있습니다. 둘 다 목적 잃은 인생입니다. 이런 삶에는 ‘함께함’이 없습니다. 연합함이 없습니다. 홀로 싸우는 이기적 투쟁이나 이웃을 철저히 배제하는 환멸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함께하는 여정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서로 돕는 ‘두 사람’,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서로의 온기로 역경을 이기며, 합력하여 도전을 이깁니다. 이 인생 여정에는 둘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동행도 만물의 시작부터 있어 왔습니다. 인생 여정은 ‘삼 겹줄’인 것입니다. 인생이 그 끊어지지 않을 줄에 묶여 진행될 때라야 “내가 누구를 위하여?”라는 질문에 목적 있는 답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홀로 힘겹게 사는 것보다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가족이나 신앙 공동체 없이 홀로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고독하게 살면서 끊임없이 일하고도 자신이 가진 데 만족하지 못하고 재물이나 명예에 집착해 하나님이 주신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매우 불행하고 허무한 인생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유익한 것은,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붙들어 주고 일으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넘어져도 돌봐 줄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하나가 되면 홀로 있을 때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는하나님이 인생에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문수현 시인은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노래합니다. 아름다움은 함께 연합하고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바위와 숲이 있기 때문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초목들이 바람과 어울려 새소리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산과 숲이 아름다운 것은 머리 위엔 하늘 발밑엔 바다 계절이 드나드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해와 달과 별들이 들러리 선 그 사이에 그리운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나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고백처럼 이 세상에는 “혼자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함께 연합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다시 말해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시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 그것은 바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품으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眞實)한 친구(親舊)가 되어주셨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우리와 끝까지 함께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순간에도 함께하며 힘을 주십니다. 다윗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수 없이 많은 백성들이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기이하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방법으로 나타나서 백성들로 화합하도록 하셨습니다. 즉 그 방법은 원수를 사랑으로 대하게 하여 백성들을 화합의 길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있어야 할 상호간의 화목을 유지하여 이 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증오심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질투심이 우리 속에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같이 우리는 피차간에 화목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겠습니다.

형제의 연합과 동거는 신약시대의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연합한 신자들의 관계를 예표 합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한 관계입니다. 시인은 형제가 연합하고 동거하는 삶의 축복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첫째, 기름 부음이 넘치는 축복으로 묘사합니다.
제사장에게의 머리에 붓는 기름은 거룩한 직분을 위한 성별을 의미했고, 나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의미했습니다. 성경에서의 기름은 풍요와 기쁨과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기름이 머리로부터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흘러내리는 모습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은총을 나타냈습니다.

둘째, 헐몬산 이슬이 내리는 축복으로 묘사합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해발 2,814m의 산’으로서 가나안 지경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요단강의 발원지입니다. 고지대로 올라가면 야간에 공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대기 중의 수분이 이슬로 변하기에 소리 없이 촉촉이 메마른 땅을 적시는 헐몬의 이슬은 생명의 에너지원이며, ‘백발의 산’이란 뜻인데 연중 흰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신명기 3:9 “헤르몬산을 시돈 사람은 시룐이라 부르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 불렀느니라”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때가 되면 이 눈이 녹아 흘러내려서 이스라엘 평원을 적십니다. 이스라엘은 비 한 방울 오지 않지만 헐몬의 눈이 물이 되어 이스라엘에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르몬의 이슬은 곧 생명의 에너지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마치 이스라엘 건기처럼 삭막하기 그지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저 하나님 나라의 그 풍성한 생명과 은혜로 날마다 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슬”이란 하나님의 은밀한 은총을 상징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했는데 이 역시 우리에게 주시는 천국의 풍성한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죽어서만 천국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했습니다. 진정 예수님과 연합하여 동거하는 곳에 천국의 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고 동거하려면 먼저 예수 믿고 하나님 잘 경외할 뿐 아니라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더 깊고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헐몬의 이슬은 소리 없이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로 자주 묘사됩니다.
 
시인은 형제의 연합하는 삶을 광대한 헐몬산의 이슬이 작은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것으로 묘사함으로 형제간의 연합은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겨줄 때 이뤄지고 그때 소리 없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도의 매력은 사람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연합해서 어울리는 공존의 삶에 있고 그때 영생 즉 구원의 복도 나타납니다. 복 중의 최고의 복인 영생을 사랑의 교제가 준다는 말씀은 사랑의 교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언제 가장 마음이 아픕니까? 자녀가 서로 싸울 때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프실 때도 성도들이 서로 싸울 때입니다. 반면에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고 동거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때 구원의 복을 비롯해서 수많은 복이 따라옵니다. 결국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형제가 서로 연합하고 동거하는 삶입니다.

한때 한국 교회에서 ‘제자’란 말이 유행했고 제자훈련 열풍도 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 프로그램에서 ‘몇 단계 공부’만 가지고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그 열기가 누그러졌습니다. 요새 교회에서는 ‘제자’란 용어만큼 ‘멘토’란 용어가 많이 사용됩니다. ‘좋은 제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멘토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리더십이 중시되면서 멘토의 중요성은 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멘토입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격려하는 좋은 멘토가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군가 좋은 멘토를 찾아 나서고 누군가의 좋은 멘토가 되어주십시오. 인생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면서 돌봐줄 멘토가 곁에 있어 준다면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하면 부한 대로, 있는 그대로 함께 동고동락하십시오. 옛날에 가난해서 끼니걱정을 했어도 서로 돕고 살려는 모습이 많았지만 지금은 옛날보다 잘살게 되었어도 더불어 살려는 모습은 오히려 더 줄었습니다. 그래서 삶이 각박해지고 스트레스는 커지고 있습니다. 이때 공동체 정신 회복에 힘써야 합니다. 그 회복을 남에게만 맡기지 말고 자신도 일정부분 맡겠다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교제를 헬라말로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삶 전체를 나누는 깊은 교제를 뜻하는 어휘입니다. 그 교제가 깨지지 않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느 조직에서든지 이익을 목적으로 인간관계를 하지 마십시오. 특히 돈거래가 없게 하십시오. 모든 모임이 사랑의 교제가 넘치게 함으로 이웃들이나 세상이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다!”라고 감탄하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향하게 하는 데 밑거름과 기초석이 되십시오.
 
관계(關係)는 복(福)의 통로(通路)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통해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생의 복을 명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생의 복을 명하셨습니다.(갈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알지어다. 갈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것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 거할 뿐만 아니라 이미 하늘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취가 하늘의 축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진실성은 그러한 축복의 표현입니다. 사랑과 화평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화평의 하나님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단법인 한국신문방송협회 산하 각 회원사와 유관기관들이 서로 서로 선하고 아름다운 연합 관계를 맺고 나아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지역사회와 그리고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사회에, 한국 교계에 영향력 있는 더 복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고 동거하려면 먼저 예수 믿고 하나님 잘 경외할 뿐 아니라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더 깊고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연합은 영생으로 가는 삶의 출발입니다, 동거는 영생으로 가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진행입니다. 연합과 동거는 영생을 열매로 가지게 되는 가장 완전한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연합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입니다. 예수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서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인생에, 여러분들의 가정에, 섬기는 교회와 사단법인 한국신문방송협회와 각 회원사 공동체 위에 보배로운 기름의 복과 이슬의 은총과 천국의 복이 풍성히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 말씀전하는 유영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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