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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목사

요즘 갑질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그리고 미투 운동으로 바람 잘 날 없다. 이전에는 없다가 갑자기 문제가 많이 생긴 건가? 아니다. 이전에는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계속 갑에게 억압되어 있었다. ‘너 하나 입다물면 모두가 편안해’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음지에 있던 분들이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언제나 “갑”과 “을”이 있다. 그러나 갑은 언제나 갑이 아니다. 갑 위에 또 갑이 있어 갑과 을의 위치는 늘 바뀐다. 대통령이 그 나라에서는 갑인 것 같지만, 국민 앞에서는 을이다. 경찰이 죄인 앞에서는 갑이지만, 국민 앞에서는 을이다. 그러고 보면 국민이라는 이름은 민주사회에서는 영원한 갑인 것 같은데, 가난한 사람은 돈 있는 사람 앞에서 을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갑이고 누구나 을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에서는 상점에서 고객이 소리를 높이면 그때부터 상대를 안 한다. 계속 방해하면 경찰을 부른다. 경찰이나 공무원을 상대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로 인식한다. 일본은 가난해도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천대하지 않는다. 미국은 돈이 많아도 안 되는 일이 많다. 그런데 한국은 부자들에게 가장 편한 국가이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그들만의 세상에서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힘으로, 돈으로, 혹은 권력으로 군림하고 갑질하는 사회는 후진사회이다. 이러한 후진성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치관,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품격이 되는 저질 자본주의와 관료주의가 불러온 병폐이다.



성경에도 갑질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갑질을 했다. 요셉을 노예로 판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도 요셉에게 갑질을 했다. 유혹해도 넘어오지 않자 성폭행 미수범으로 몰아 감옥에 갇히게 한다. 사울왕도 다윗에게 갑질을 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백성들의 환호에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창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다윗도 왕이 되어 갑질을 했다. 밧세바가 우리야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도 범한다. 아이가 생기자 은폐하려고 시도하고 급기야는 우리야를 이길 수 없는 전쟁터에 보내 죽게 한다.



라반도 야곱에게 갑질을 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라반에게 7년을 섬긴다. 첫날밤을 치른 야곱은 아침이 되어서야 자기 곁에 있는 여인이 레아임을 알았다.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어쩔 수 없이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더 봉사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반은 야곱을 20년 동안 일 시키면서 품삯을 열 번이나 자기 마음대로 변경했다. <창31:7> 노동력 착취였다. 인간의 숨길 수 없는 '갑질 본능'이 라반에게도 있었다. 라반이 처음부터 야곱을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카를 수단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라반은 먼데 있지 않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라반인지도 모른다.



갑의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를 가든지 위, 아래가 있다. 위계 질서가 있다. 그 위계 질서가 무너지면 안 된다. 성경에도 분명히 사람간에 계층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신 28:13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으며, 위가 있고 아래가 있다. 그러므로 갑질과 갑의 권리를 혼동하면 안 된다. 제품에 하자가 있어 컴플레인을 거는 것이 갑질인가? 그것은 갑의 권리이다. 마25장을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이윤을 남긴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한다. 그런데 땅에 감추었다가 가지고 온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며 있는 것 까지 빼앗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한다. 이것은 갑질이 아니라 주인의 권리이다.



식당을 하시는 분은 갑인 고객의 불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야곱이 성공한 것은 라반의 갑질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요셉이 성공 것도 형들과 주인의 아내의 갑질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았기에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자녀 교육이 중요하다.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한다. 부모는 자녀의 최고의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부모를 통해 배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분노로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세 모녀의 갑질을 보면서 '그 어미에 그 자식이다'라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소리지르는 것, 욕하는 것 똑같았다. 갑질의 대물림이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칭찬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배려가 몸에 밴 국민성 때문이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당시에 최고 갑질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변한다. 토색한 것 4배로 갚아주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갑질하던 사람이 배려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그 후 삭개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배운 사람, 가진 사람, 있는 사람이 더 겸손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공식이 깨져야 갑질도 멈출 것 같다. 갑질이 아닌 배려가 가득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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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25 12: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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