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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프리메이슨과 같은 비밀결사대가 존재하는가?

- 천헌옥 목사(편집인)

편집국|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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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헌옥 목사. 
우리는 비밀결사대라 하면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그야말로 모든 행동을 비밀리에 행하여야 했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결사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거대한 비밀결사대가 있고 지금의 정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 논쟁의 중심에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이 등장한다. 있다. 없다. 이 두 단체에 대한 설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가 싶다. 사실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나타난 것을 정리해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목적하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어도 대충은 알고는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프리메이슨이 일루미나티보다는 60년 앞서 결성되었기 때문에 먼저 프리메이슨을 알아보고 일루미나티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 우리가 경계하여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프리메이슨(freemason)

freemason은 이름 그대로 석공들의 자유로운 모임에서 시작한다. BC 1500년이 넘도록 로마 가톨릭의 어두운 시대가 계속되었고 1517년 루터가 95개조 의견서를 내놓으면서 시작한 종교개혁은 1536년 깔뱅이 기독교강요를 펴내며 제네바 개혁운동에 동참하면서 종교개혁은 절정에 이르고, 1620년 메이플라워호는 청교도들을 싣고 신대륙(미국)에 상륙, 청교도 개혁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금방 개신교로 급변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톨릭의 무게가 사회를 억누르고 있었다. 1717년 런던에 거주하는 의식 있는 석공 몇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작은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름을 로지(작은집)라고 불렀다. 그 로지가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유럽 각국과 미국에 까지 퍼지면서 대(大)로지가 되었다. 이때는 석공들뿐 아니라 각계각층과 중산층의 프로테스탄트들을 포함하는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계몽주의에 호응하여 세계시민주의적인 의식과 함께 자유주의, 합리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회원에는 계몽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 조직은 아니었지만 박애정신, 도덕성,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종교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톨릭과 가톨릭을 옹호하는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비밀리에 조직을 하고 활동을 하는 비밀결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프리메이슨은 정치와의 연관성을 떨쳐버리고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대(大) 로지 밑에 몇 개의 로지를 두는 식의 회원 상호간의 우호와 정신함양 및 타인에 대한 자선·박애 사업을 촉진하는 세계동포주의적·인도주의적인 단체를 표방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지부에서는 유대인과 가톨릭교 및 유색인종을 기피하는 편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절대자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믿는 성인 남자에게만 가입이 허용되는 조직으로 사회적 오락기구의 성격을 띠는 많은 부속조직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조직을 통해서 박애사업과 회원들 간의 우호를 증진한다. 영국의 조직들은 회원들이 다른 어떤 오락단체나 유사 조직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 회원자격을 박탈한다.

그러면 그 회원으로는 누가 있을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알려진 사람으로는 클라크 케이블, 마릴런 먼로, 존 웨인, 로이 로저스, 멜 블랑(배우 및 성우), 루이 암스트롱, 칼 레이믈, 잭 워너 삼형제, 루이 메이어, 대릴 자눅, 리처드 드레이퍼스,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냇킹 콜, 글랜 밀러, 듀크 엘링턴, 지미 로저스, 코닌 도일(뮤지션 및 작가), 조지 워싱턴, 테어도어 루즈벨트, 프랭크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미 대통령), 벤자민 프랭클린, 맥아더, 원스턴 처칠, 존 에드거 후버(정치인 등), 해리 후디니, 헨리 포드, 커널 생더스, 아놀드 파머(그 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요한 세바스티안, 모차르트, 하이든, 바그너(음악가), 로이 디즈니, 루디야드 키플링, 조너선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 알렉스 헤일리(작가), 볼테르, 빅터 휴고(시인), 괴테, 넬슨 제독, 에라스무스 다윈, 토머스 립톤, 콘래드 힐튼, 에버허드 파버, 나폴레옹, 라파예트, 볼리바르, 셔먼(전쟁 영웅들) 등이 알려진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등급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공개되어도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일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 등 많은 목사들도 프리메이슨 회원이라고 알려지고 있어 이들이 제대로 무엇을 알고 들어갔는지, 아니면 호기심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유명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같은 회원이었던 메클렌부르크 공(公)이 사망하자 애도하는 마음으로 “프리메이슨을 위한 장송음악 K.477”(원제: Frei maurerische Trauermusik K.477)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네 곡을 작곡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음악들은 프리메이슨의 집회에서 연주되는 의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참으로 자유롭고 일반적인 단체로 보이지만 여전히 이 단체에 대한 의문을 거두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단체가 일루미나티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일루미나티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이고 프리메이슨의 회원에는 등급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일루미나티는 무엇이며 등급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루미나티(illuminati)

계몽하다, 혹은 밝히다라는 뜻을 가진 일루미나티는 계몽주의 시대인 1776년에 독일 바이에른의 인골슈타트대학교 교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아 비밀결사를 조직한다. 한때 프리메이슨에 침투해 이를 통제할 정도로 강력했으며 목표가 뚜렷했던 일루미나티는 현대에 넘어와 미국을 통제하고 있는 CFR(미국외교협회), CFR의 유럽버전인 빌더버그 클럽, 록펠러 가문이 주도하는 삼각위원회로 이어지는 국제적인 3개 권력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는 그림자 정부의 최상위 조직으로 알려진다.

18세기 후반, 프리메이슨에 일루미나티가 주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루미나티 사상이 스며들면서 헤겔과 바이스하우프트의 철학이 프리메이슨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거나 "합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립되는 두 세력이 필요하다."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프리메이슨의 영국 그랜드 로지 입구에 쓰여 있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o ab Chao)는 일루미나티의 슬로건으로서 일반적으로 인간의 다양한 믿음과 철학이라는 혼돈에 지식이라는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 곧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돈을 창출한 다음에 질서를 갈망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루미나티가 새로운 세계 질서 수립(음모론적으로는 세계 지배)에만 혈안을 두고 있다면, 프리메이슨은 윤리, 교육, 형제애, 애국, 인본주의적 관심사에 몰두한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33등급 이상의 거물들은 메이슨들의 표현 그대로 비밀스럽고 존엄한 형제단으로 오로지 신성한 비밀에 전념한다. 이 신성한 비밀이 일루미나티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통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수립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요약해 보면 일루미나티는 새로운 세계 질서 수립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토대로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고, 프리메이슨은 자유석공 조합에 의해 형제애를 근본으로 하는 사교클럽으로 설립되었다. 일루미나티의 목표는 세상의 변화이지만, 프리메이슨의 목표는 기사도 정신, 명예, 형제애를 근본으로 하는 믿음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두 단체는 고도의 비밀단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프리메이슨이 일루미나티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는 두 단체의 겉으로 나타난 모습들만 열거했다. 설혹 그들 단체의 회원으로 등록되었어도 33단계까지 등급이 오르지 못하면 그 실체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한 가지는 오늘의 사회적 모든 문제의 근원은 헤겔이라는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어떤 사람인가?

맑시즘의 창시자 칼 맑스가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 헤겔이었고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 역시 헤겔 철학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것을 보면 헤겔은 대단한 철학가이다. 그렇다면 헤겔은 어떤 사람일까?

1770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831년에 사망한 헤겔은 절대적 관념론을 주창하였는데, 이는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 대립을 매개하여 통일한 것이며 이 두 입장을 관념론의 웅대한 하나의 철학체계로 종합ㆍ완성시켰다.

헤겔에게 있어 절대자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절대자를 한갓 무차별적(無差別的) 동일자(同一者)로서의 고정적인 실체로 파악한 셸링에 반대하고, 오히려 자기를 현실의 차별상(差別相)으로 분열시키고 발전시키는 자기활동(自己活動)의 주체로 파악할 것을 주장하여, 이것을 그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Geistes, 1807)이 수행해야 할 과제로 삼았다. 『정신현상학』은 절대자의 자기인식, 곧 절대자의 생성 과정의 역사를 기술한 책으로서 『정신현상학』의 성과는 헤겔이 그의 철학체계를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

사고와 존재의 완전한 동일성(同一性)의 주장, 곧 이성적인 것만이 진실로 현실적일 수 있으며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할 것이라는 근본적 전제 밑에서, 헤겔은 자립적인, 자기운동으로서의 절대자의 현실적인 운동과정의 인식을 대상으로 하는 절대이념의 철학을 확립하였다. 철학은 이성개념(절대자)의 체계이거니와, 이 이성개념은 정립ㆍ반정립ㆍ종합의 3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다. 이렇게 절대자가 자기를 자각하는 과정이 다름 아닌 변증법이고, 이 3단계의 변증법으로 구성된 것이 곧 그의 철학체계의 전체를 이룬다.

'현실'이 곧 '이성'이 되는 절대자가 영원한 로고스(logos)인 자기 자신에 있어서 전개하는 학(學)이 논리학이고, 그 절대자가 외적 존재의 형태로 자기를 외화(外化)하였을 때 이것은 자연이고 그 자연인식이 자연철학이 된다. 다시 이 절대자가 그 외화에서 자기로 돌아온 존재 양식을 전개한 것은 그의 정신철학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의 이론을 깊게 살펴보면 그는 인간사회에 하나님이 설 자리를 빼앗아 버리는 출구를 열어재쳤다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은 있되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 안에 없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의 유신론을 철학적 기독교라는 범신론으로 변조시키면서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상실 시켜 버렸다. 그의 철학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무신론의 유물론적 공산주의 이론을 창출하였고 키에르케고르는 각종 변증법적 유물론과 실존주의 이론을 등장시켰으며 더 나아가 니체에 이르러서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게 된다.

이러한 철학이 사상으로 발전 되고 그러한 물줄기는 도도하게 세상을 덮쳐 흘러 현재 온통 그 물결에 세상은 요동치고 있다. 휴머니즘의 가면을 덮어쓴 네오막시즘의 추종자들이 성적인 것의 자유로움을 주창하면서 동성애, 동성결혼을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국법으로 인정하면서 인간의 기본 윤리의식까지 허물며 기존의 질서를 깨어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대한민국의 헌법을 개정하려는 내용 중에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국민을 사람으로 헌법을 고치려 시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져야할 경계심

물론 어떤 이들은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을 부정하면서 그들의 세계단일국가음모론을 일축한다. 그것은 단지 말하기 좋아하는 음모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저들의 실체를 우리가 백분의 일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단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상하게도 그들의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시대에 어떤 경계심을 가져야 할까?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철학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거나 "합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립되는 두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으로 보면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해도 동기나 과정이 불순하면 불순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뒤집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목적을 이루면 정당화 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그러한 논리에 의하여 스탈린은 엄청난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구(舊) 소련 땅을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목적은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공산주의 실현이었다. 과연 오늘날은 이런 일들이 없는가? 경계해야 한다.

또한 합을 창출하기 위해 대립되는 두 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다가 새로운 카드를 내밀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뒤엎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인데 이제는 정말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돈에 빠진다. 자신들이 이전에 행하였던 모든 것들이 다 그른 것인 양 다가온다. 그때 구시대들을 척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꺼내든다. 지금 우리가 그 처지에 있지 아니한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는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사이에 놓여 갈등하고 있다. 두 세력이 갈등한다. 그러다가 현재 보수 우익은 지리멸렬하고 있다. 보수 우익이 만들어 온 기존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좌파와 진보는 뭔가 새로운 질서를 내놓을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굉장히 위험한 순간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동이 트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더 어둡다. 그 시간이 더 졸자 더 자자는 시간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막13:33)

첨언 <이 글을 쓰기 위해 네이버 지식백과, 나무위키, 개인 블로그 등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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