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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내렴의 성화 묵상-성 요셉의 꿈

- [금빛내렴의 성화 묵상-성 요셉의 꿈] 배려와 성실로 역사를 이루다

편집국|201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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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비분강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아는 게 전부인 양 정황을 파악하지 않고 쉽게 흥분해 법과 원칙을 외친다. 어제는 저러저러한 소문에 휩싸이고 오늘은 이러이러한 댓글들에 쏠려 다닌다. 우레 소리에 맞춰 덩달아 큰 소리 내는 이들이다.

요즘처럼 사람들을 매도하고 낙인찍고 모욕 주는 일이란 얼마나 더 순식간이겠는가.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2000년 전에도 사람들의 입소문은 천리를 갔을 것이다. 그 당시 한순간에 커다란 수치와 비난을 받고 공동체에서 삶을 유지하기 힘들 뻔 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을 배려하고 포용한 이도 있었다. 마태복음서 1장에 나오는 요셉이다.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약혼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임신을 한 것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당시의 관행대로라면 이건 공개적으로 알려서 가차 없는 법의 집행이 이뤄지게 해야 할 사건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약혼녀 마리아가 지닌 비밀을 알고 고민에 빠진 그는 상대방을 망신 주지 않기로 하고 가만히(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다(마 1:18~19).

요셉의 신중함과 성실함이 드러난 이 그림은 19세기 스위스의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의 것이다. 그의 그림은 효과 면에서 거의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장면을 포착한다. 치세리는 이 주제의 그림에서 여느 화가들과 달리 구도 속에 마리아를 등장시키지 않고, 요셉만을 풀샷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천사는 화면 윗부분에서 강한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 배경색과 섞이며 유사한 파스텔톤으로 부드럽게 처리된다. 그림 속의 남자가 목수임을 알 수 있는 것은 화면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살짝 보이는 목공 도구와 대팻밥들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요셉을 다룰 때 사용되는 도상적 장치가 반영된 것이다. 요셉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다가 피곤한 상태에서 앉은 채 잠들어 있다. 일하며 고민하며 잠든 그림 속 요셉에게 천사가 꿈에 나타나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마리아의 임신이 지닌 비밀과 심오한 의미를 그에게 짚어준다. 네게 벌어진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후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말한 대로” 상대방을 “맞아들였다”(마 1:24).

현실의 고민을 현실의 업무와 병행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베네딕트수도회가 ‘노동은 기도’라고 했는데 요셉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문제 해결도 노동 가운데 기도 가운데 삶의 현장 속에서 주어진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느닷없이 특별하게 개입된다. 역사는 요셉과 같은 이들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함으로써 상대방이 큰일을 하게 하는 이, 자기 책임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자신도 커다란 섭리와 역사에 동참하는 이는 결코 작은 자가 아니다. 조연의 조연일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드라마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도 요셉처럼 행동한다면 그 이름 뜻대로 ‘주께서 더하고 도우실 것이다.’ 성탄을 기다리며 맞이하며 이루며, 우리 모두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고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자(엡 4:2).

▲ 성 요셉의 꿈(1873~1875년경 작) 
▲ 안토니오 치세리(1821~1891), 캔버스에 유화, 188븇114㎝,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예배당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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