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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순교신앙 문준경 전도사

- 6·25전쟁때 총살 순교당해…기독교 민족지도자 열매로

편집국|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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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준경 전도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고 다니던 성경 말씀. /사진=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제공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매느니라.”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관장인 김헌곤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십자가의 길을 간 죽음을 초월한 신앙인이었다”며 “오늘날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문 전도사님의 순교신앙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참된 예배자가 되어 성령의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님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살지 않았다. 오직 그녀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됐다”며 “문 전도사님의 순교의 피가 한국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됐다. 실로 그녀는 기독교 지도자의 참다운 모습이 무엇인가를 말과 행동으로 잘 보여준 믿음의 영웅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교회 성도들은 문준경 전도사님의 살아 있는 영성을 배워야 한다. 나아가 문 전도사님의 믿음을 바라보고 감동으로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따라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고 당부했다.

문준경(1891∼1950) 전도사는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 씨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1908년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신랑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중매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 정근택은 결혼 첫날부터 문준경을 아내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남편 있는 생과부’라 부르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외롭고 힘든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시집살이에 유일한 위안과 희망이 돼 주셨던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시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른 후, 그녀는 20여년을 살던 신안군 증도를 떠나 목포로 이사를 했다.

극심한 절망으로 살 소망이 없었던 그녀는 전도를 받아 북교동성결교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당시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다.

▲ 1934년 문준경 전도사(뒷줄 왼쪽 두번째)가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 동기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제공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문 전도사는 신안군 증도로 돌아와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한 해에 고무신이 9켤레나 닳을 정도로 선교에 앞장선 문준경 전도사는 신안군에 100여 개 교회를 세우고,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민족 지도자들을 양성해 낸 사랑의 씨앗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 전도사는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아픈 이들을 치유해 주는 의사였고, 산모들을 위한 산파였으며, 신안군 섬 지방의 어머니였다.

문 전도사는 일제 말기 극악한 신사참배 강요 거부와 위안부 징집 반대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고 교회도 강제로 빼앗긴다. 해방후 처참한 6·25전쟁이 발발해 교회 성도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문 전도사는 증동리교회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목포에서 돛단배를 타고 신안군 증도로 돌아간다.

결국 새끼줄에 묶여 끌려가 발로 차이고 죽창에 찔리고 총대로 후려침을 당하고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는 죄명으로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문 전도사는 성도들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1950년 10월 5일 체포돼 인민군들에게 끝내 총살을 당한다.

문 전도사는 칠흑같이 어두운 증동리 앞 백사장 앞에서 “아버지여 저들에게 죄를 묻지 마시고, 죄 많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남기고 59세를 일기로 순교한다.

사도 바울이 1차전도여행, 2차전도여행를 했던 것처럼 문 전도사도 돛단배를 타고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며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했다. 섬과 섬을 오가는 교통수단은 작은 돛단배가 전부였다. 하루는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심했는데 증도에서 임자도로 가기 위해 무리하게 배를 띄우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거세지면서 무섭게 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배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위험에 빠졌다.

배에 탄 사람들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다. 순간 문 전도사는 사공이 놓아버린 노를 부여잡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불쌍한 우리 어린 양들은 누가 돌본단 말입니까? 저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전도자가 되었으니 죽어도 천국에 가지만 이제 막 개척한 교회에 나와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이대로 죽을 수가 없습니다. 남은 사명 끝까지 완수하고 죽을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말씀 한마디로 바람을 잔잔케 하신 살아계신 예수님. 이 파도와 바람을 잔잔케 하여 주옵소서! 주여! 믿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성경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어느 순간 기적처럼 바람이 잔잔해졌고 파도도 감쪽같이 멈춰버렸다. 문준경 전도사는 배 위에서 감사 찬송을 불렀다. 같이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넋이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함께 찬송을 따라 불렀다. 나중에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문준경 전도사의 시조카인 정태기 목사(크리스찬치유상담대학원대 총장)는 “신안군 증도가 복음화율이 높은 이유는 전적으로 문준경 전도사님 때문이다. 문준경 전도사님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섬 사람들은 미신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문준경 전도사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미신을 버리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고 김준곤 목사는 “내 삶과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 바로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님이다. 전도사님은 내가 초등학교시절 외롭게 사시던 어머니를 위해 나룻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찾아오시곤 했다”며 “한 아름의 과자선물과 함께 나를 껴안고 간절히 기도해 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문 전도사님이 특유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희망가’나 ‘천당가’를 부르면 동네 아낙들이 모두 모였고 이때부터 일장 전도가 시작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김종준 꽃동산교회 담임목사는 “문준경 전도사님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순교자의 삶을 살았다”며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믿음의 산 증인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문 전도사는 신안군 14개 읍·면을 다니며 20여년간 복음을 전하며 신안군내 150여 교회에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끼쳐 증도 주민 2400여명 가운데 목회자 160여명, 장로 80여명이 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故 김준곤 목사, 신복윤 전 합동신학대학원대 총장, 고재식 전 한신대 총장, 정태기 크리스찬치유상담대학원대 총장 등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문 전도사 또는 그가 세운 교회를 통해 열매를 맺었다.

故 김준곤 목사는 생전에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민족복음화를 주창했다.

한국교회를 이끌었거나 현재 이끌고 있는 지도자중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출신의 목회자들은 故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故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김인중 목사(안산동산교회), 주서택 목사(청주 주님의 교회), 서경석 목사(기독교 사회책임 공동대표), 유병근 목사(순천북부교회), 장석진 목사(광주 월산교회), 류호상 목사(화성 소망교회), 임호근 목사(대구 학복협 총무),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 등이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을 세운 故 정정섭 장로, 주수일 진새골가정사역원 원장과 두상달 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회장, 전용태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김철성 국민대 나노전자물리학과 교수(한국CCC교수선교회장), 탤런트 정영숙 권사, 민산웅 전 극동방송 사장, 이광자 전 서울여대 총장 등이 CCC 출신이다.

1958년 ‘오늘의 학원복음화는 내일의 민족복음화요 오늘의 민족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구호로 시작된 CCC는 지난 60여년간 40만여명의 대학생과 350만여명의 평신도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복음성가 사명(使命)과 같이 척박한 섬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 특별한 임무인 '복음'을 전했던 하나님의 사람 '문준경 전도사'.

그는 한 많았던 여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 위대한 전도사였다. 문 전도사가 뿌린 사랑의 씨앗과 헌신적인 순교이야기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한국교회 크리스천들에게 귀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전남 신안군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전경. /사진=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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