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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연재③ 피렌체의 사보나롤라

- 피렌체를 개혁해 신정국가로 만들려던 예언자적 설교자

편집국|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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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의 부패를 질타한 도미니쿠스회 수도사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한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이 그 불을 붙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 100여전부터 유럽의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교리와 신앙에의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비판되어 왔다.

그중에 한 사람이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의 기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la, 1452-1498)이다.

그는 도미니쿠스회 산 마르코 수도원장으로서 시대의 걸출한 설교가였다. 그는 그 세대의 도덕적 혼탁에 맞서서 예언자적 공의를 외친 종교개혁의 선구자이다.

사보나롤라는 1452년 9월21일 페라리에서 태어나 페라라 대학교에서 인문학부 과정을 마치고 의사가 되고자 의과대학에 들어갔으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글을 읽고 사화적 부패에 환명을 느끼고 23세 되던해 집을 나와 볼로냐에서 도미니쿠스회 수사가 되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한 후, 1481년 피렌체로 파견되어 산 마르코 수동원의 수도사가 되었다. 그 수도원은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 코시모 데 메디치가 재건한 건물이었다. 피렌체는 지금의 풀로랜스로 이탈리아 문예부흥과 예술의 중심지 였으며, 메디치가 후원을 힘입어 사치와 방탕의 도시였다. 동시에 피렌체는 자치도시의 모델이었으며, 카톨릭 신앙의 수호지였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를 기독교 도덕의 귀감이 되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는 신정국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서 ‘나는 네가 내말을 듣고 그것을 전파하도록 너를 이탈리아 한복판에 파수꾼으로 세웠노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불신아에 대한 진노를 설파했다.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전할 사자로 세움을 입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전한 메시지 가운데 1495년 3월에 그가 낙원을 방문할 때 받았다는 유명한 예화가 있다. 이것은 마치 후대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내용과도 흡사하다. 그가 여행을 나서기 전에 많은 여성들이 길동무가 되어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철학’과 ‘수사학’이라는 여성을 거절하고, ‘신앙’과 ‘단순함’과 ‘기도’와 ‘인내’라는 여성들을 길동무로 삼았다. 그는 노중에 수사의 복장을 하고 나타난 마귀를 만났다. 마귀는 그의 예언들이 지니는 초차연적 성경에 반론을 제기했다. 덕을 권장하고 악을 질책하는 선에서 끝내고 예언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며, 과연 사보나롤라 자신이 참 선지자들과 같은 높은 경지에 도달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당신의 에언이 한번이라도 성취된 적이 있었는지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했다.

▪ 교황 알렉산더의 설교 중지령

사보나롤라의 설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학개를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피렌체여, 하나님께서 옛 언약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셨듯이 이제는 그대의 유일한 왕이 되실 것이다.”라며 피렌체에 대한 신정정치를 예언했다. 사보나롤라의 피렌체는 그리스도가 우두머리인 이상적 신정국가의 수립이었다.

그러자 교황 알렉산더는 1495년7월25일 사보나롤라를 로마로 소환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미래의 사건들을 예언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자신의 건강상 이유를 들어 교황의 소환령에 거부의사를 통보했다. 이에 교황은 1495년9월9일에 사보나롤라에게 그가 이탈리라의 정세와 관련하여 드러낸 어리석음과, 스스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사자로 자임하는 행위를 단죄하고, 이어 10월16일에 세 번째 서신을 보내 공개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일절 설교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교황의 명령을 받은 사보나롤라는 다섯달 동안 수도원에서 초연하게 지냈다. 1496년2월17일 사순절 기간의 설교를 맡아달라는 시의회의 부탁을 받고 다시 강단에 섰다. 거기서 그는 교황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교황이 내게 기독교의 사랑의 법 곧 복음과 위배되는 어떤 일을 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런 명령을 한다면 나는 그에게 당신은 목자가 아니라고 말하겠습니다. 그 오류는 로마교회가 아닌 당신이 범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아모스 14장1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누가 사마리아 산지인 바산의 암소들입니까? 이탈리아와 로마의 궁정인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나는 말합니다.”라고 교황청의 부패를 신랄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피렌체의 청년들이 1497년 사육제 마지막날에 ‘헛된 것들’을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년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부자들의 장신구들과 외설스러운 책들, 주사위, 하프, 거울, 가면, 화장품, 미인도 등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해 시청광장에 쌓아놓고 사보나롤라의 미사가 끝난후 모두 불태웠다.

▪교황청의 파문

사보나롤라는 로마교회의 부패를 거칠게 비판했다.“꿇어 엎드린 교회여, 그대는 온 천하에 그대의 타락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탈리아에, 프랑스에, 스페인에, 세상 모든 땅에 그대의 음행을 퍼뜨렸다,. 성직매매로 성례들을 더럽혔다. 과거에는 사제들이 서자(庶子)를 부끄러워하여 조카라고 불렀는데, 요즈음은 노골적으로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로마의 모든 사제가 첩을 두고 산다고 비난했다.

이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교황청은 1497년 사보나롤라를 파문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교황의 파문장이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교황은 피렌체 시의회를 향해 “ 이 악한 자의 아들”을 로마로 압송하거나 투옥하지 않는다면 피렌체에 성무중지령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1498년 3월17일 시의회는 사보나롤라에게 설교를 중단할 것을 통보했다.

이후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사보나롤라는 두손이 뒤로 묶인 채 도르래를 통해 공중에 매달렸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고문을 하루에 열 네 번씩이나 받았다. 모진 고문 끝에 재판정에 끌려나온 사보나롤라는 결국 나는 예언자나 선지자가 아니라고 자백했다. 그를 따르는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교황이 파견한 위원회는 사보나롤라를 이단자로 단죄하여 사형을 언도했다. “사보나롤라가 설령 제2의 세례요한 일지라도 죽이라”고 선언했다.

▲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베키오 궁전, 그 왼쪽 측면에 넵튠분수대, 사보나롤라의 처형장

사보나롤라의 처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하고, 그 시체는 불태우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사보나롤라와 그의 동료들은 손을 결박당한채 맨발로 끌려가 시청 광장에 설치된 교수대에 섰다. 교황의 명을 받고 온 집행인은 그대를 전투의 교회와 승리의 교회에서 추방하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승리의 교회로부터 추방하는 것은 그대의 소관이 아니다라고 응수하고, 두명의 동료들이 사형대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사람의 시체는 완전히 불태워진 채로 만들어 아르노 강에 뿌려졌다. 오늘날 사보나롤라와 그의 동료들이 죽은 피렌체 시청 앞엔 그 자리에 표식을 남겨 그를 기리고 있다. /한국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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